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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의 책 읽어주는 남자5 〈월든〉한 지성인의 청빈한 삶과 인간·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
<삽화=배종훈>

서정주 시인의 말처럼, 이제 곧 ‘저기 저산에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들까보다. 그곳 월든 호숫가에도 곧 단풍이 아름답게 들겠지? ‘그곳 월든(Walden) 호숫가’라는 표현이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내게는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 한 자락이 있다.

여러 해 전, 나는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1845년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월든’이라는 작은 호수가 너무나 보고 싶어 아내와 함께 미국 동북부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명작은 그 책을 들고 그 책의 배경이 된 곳에 가서 읽으면 특별한 감흥을 맛볼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하는데, 아내와 나는 <월든>을 읽은 후 언젠가 기회가 되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명작 <월든>의 무대인 월든 호수를 가보리라 생각했었고, 그 작정을 실현했던 것이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우리 부부에겐 약간의 거금을 들여서. 

요즘의 TV프로그램은 연예인 밥 먹고 수다 떠는 게 대세지만, 나는 오래전 TV프로그램 가운데 ‘명작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문학작품이나 음악 중에 그 작품의 배경이 되거나 혹은 작가의 삶이 녹아 있는 현장을 리포터가 찾아가서 취재하고, 그 이야기를 품격 있는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는 무척 향기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근세의 고전이라는 평을 듣는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82년 전 명문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후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걷는 세속적인 성공의 길을 마다하고, 육체노동으로 일을 하며 독특한 개성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이야기다. 그는 10여 년 뒤에 사람들과 어울려 살던 마을을 떠나 아주 인적이 드문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강가의 ‘월든’이라는 작은 호숫가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그곳에서 통나무를 베어 오두막을 짓고, 밭을 일구어 감자와 콩과 옥수수를 심고,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며 소박하고 원시적인 숲속 생활을 한다. 이번 회에는 소로우가 그 월든 호숫가에서 산 2년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월든>을 함께 읽어 보려한다. 

월든 호수는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지 않아서, 호수 이쪽에서 건너편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 알아들을 수 있을 듯했다. 그곳에서 시대의 지성 ‘소로우’는 자연을 벗하며, 그 자연 속에 동화되어 단순하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며 인간사와 인류문명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한다. 

당시 소로우가 살던 집은 그의 책과 삶이 조명되기 전에 이미 소멸되었지만, 글 속의 이야기를 참고해서 재현한 작은 오두막이 새로 지어져 있었다. 두어 평이나 될까? 단순한 침대 하나와 글을 쓰던 책상 하나 그리고 난로가 있는 공간이었다. 

소로우는 그 집을 짓는데 얼마의 돈이 들었을까? 판자 8달러 3.5센트(헌 자재를 산 듯), 지붕과 벽에 쓴 헌 널빤지 4달러, 욋가지 1달러 25센트, 유리가 달린 헌 창문 2개 2달러 43센트, 헌 벽돌 1,000개 4달러, 석회 2통 2달러 40센트(값이 비싼 편임), 석회 솜 31센트, 벽난로용 철제 틀 15센트, 못 3달러 90센트, 돌쩌귀 및 나사 못 14센트, 빗장 10센트, 백묵 1센트, 운반비 1달러 40센트. 소로우는 상당부분 자신이 ‘등짐’을 져서 날랐다고 밝혔다. 과연 그 다운 행동이다. 

이 말은 그의 ‘경제 철학’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소로우는 기차를 타고 가야할 거리를 갈 때도 기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다. 기차를 타기 위해 내는 삯을 벌기 위해, 힘들게 하루고 이틀이고 노동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하루 이틀 걸어가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집을 지을 때도 그런 생각으로 최소한의 낡은 자재를 샀을 것이며, 그 자재를 가급적 직접 등짐을 져 날라서 총 ‘28달러 12.5센트’의 돈으로 집을 지었다. 집은 그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면 족했기 때문이다. 

<삽화=배종훈>

집을 채 다 짓기 전에 그는 무슨 정직하고도 기분에 맞는 방법으로 10달러나 12달러쯤 벌어 임시비용을 충당할 생각으로 집 근처의 빌린 땅 2에이커 반쯤 되는 모래땅에 강낭콩을 심었다. 

내가 첫해 농사에 들인 비용은 용구 및 종자 값과 품삯 등 모두 14달러 72.5센트였다. 옥수수 씨앗은 그냥 얻었다. 내가 얻은 수확은 강낭콩이 12부셀(미국의 계량 단위로 약 27킬로그램), 감자가 18부셀, 그리고 약간의 완두콩과 옥수수였다. 이렇게 해서 내가 농사로 얻은 수입은 모두 23달러 44센트였다. 즉 수입 23달러 44센트에 지출 14달러 72.5센트를 제하면 순이익이 8달러 71.5센트였다.

소로우는 이 첫해 농사를 결산하며 그해 콩코드의 어느 농부보다도 성공적이었음을 확신한다고 했다. 드넓은 땅에 거칠게 농사를 지으며 김을 맨 적이 없다고도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이 부분, 영농 결산 이야기가 가장 유쾌했다. 내가 20여 년 산골에 살며 농사를 지어 수확할 때마다 이 부분이 떠올라 유쾌할 때가 더 많았다. 내가 소로우보다 영악한 농부라는 생각에.        

다시 ‘집’ 이야기를 이어 마무리하겠다. 책 속의 ‘집’에 대한 그의 생각이 들어 있는 부분이 있다. 

미개인들은 저마다 최상의 주택에 못지않은 집을 한 채씩 가지고 있고, 이 집은 단순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하늘을 나는 새는 둥지를 가지고 있고 여우는 굴을 가지고 있으며 미개인들은 오두막을 가지고 있건만, 현대의 문명사회에서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가정은 반수도 안 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이다. 

그는 그의 작은 오두막에 만족한 것이다. 그럼, 그 작은 집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소로우는 그곳에서 생존에 필요한 경작을 하며 그곳의 대지와 물과 숲에 사는 생물들의 생태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기록을 했는데, 자연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전에 서리가 내린 아침 길을 걷다가 뱀을 여러 번 만났는데, 이 뱀은 추위에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한 채 햇빛이 자신의 몸을 녹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초하룻날에는 비가 내리면서 호수의 얼음이 녹았다. 그날 아침은 매우 짙은 안개가 끼었는데 외톨이가 된 기러기 한 마리가 더듬듯이 호수 위를 날면서 길을 잃은 것처럼 또는 안개의 정령이라도 된 것처럼 끼룩끼룩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서의 오두막 생활만으로 폐칩(廢蟄)하거나 편식하듯 살지는 않았다. 날마다 또는 하루걸러 한번쯤 그는 세상 이야기를 들으러 1마일쯤 떨어진 마을로 산책을 나갔다. 마을에서는 사람들에게서 귀동냥을 하거나, 이 신문 저 신문을(아마도 얻어 읽었을 듯) 보며 세상 이야기를 들었다. 하버드를 나온 지성인인 그는 이미 어마어마한 양의 독서를 했음을 책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소로우’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는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비록 구빈원(救貧員)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고무적이며, 멋진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밝게 비친다.

이 얼마나 멋진 삶에 대한 성찰인가. 책 읽는 이를 위해 사족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러니, 삶이 아무리 가난하고 고달프더라도 여러분은 힘내시라!”
소로우는 1847년 9월 6일, 2년여 만에 월든 호수를 떠난다. 그리고 1862년 봄, 결핵으로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이 명작을 남기고. 


이계진

 

방송인.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30년간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제17대, 18대 국회의원. 현재 국방FM 시사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고, 〈무소유〉 읽기 작은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저서로 〈아나운서 되기〉·〈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딸꾹!〉·소설 〈솔베이지의 노래〉·〈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이계진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똥꼬 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3인 아나운서 이야기〉 등이 있다.  

글·이계진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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