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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의 알면 도움되는 노후준비5_불교철학과 수행
<삽화=박구원>

개똥철학이라도 있으면
노후가 허무하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게 부질없이 느껴진다. 좋아하던 여행도, 그토록 빠져들었던 취미생활도 나이가 들면 시들해진다. 슬픈 일도 과거처럼 슬프지 않고, 즐거운 일도 과거처럼 즐겁지 않다. 우리의 감각과 인지능력이 노화되면서 생기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돈도 부족하고 자식도 멀어지면 허무주의적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통계를 보면 많은 노인들이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

나만의 철학, 삶의 의욕 되찾아줘

젊은 시절, 돈의 위력으로 세상을 휘젓고 다니던 부자 노인도 죽음이 가까워지면 기가 죽고 우울해진다. 언젠가 나이든 부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다가 그들의 얼굴이 우울해보여 후배에게 그 느낌을 이야기했더니 “에이 선배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거예요. 늙고 나면 돈이 무슨 소용 있어요.” 하는 게 아닌가? 60이 넘은 내가 그 말을 듣고 섬뜩했던 적이 있었다. 죽음을 향해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 무엇인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어떤 사람이 60이 되어 은퇴하고, 이제 살면 얼마나 살까 싶어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대충 살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80이 되어서도 그는 건강했다. 그는 20년 동안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대충 살아온 세월이 크게 후회된다고 글에 적은 바 있다. 더 재미있는 사례도 있다. 80대의 대학원 지원자를 보고 교수가 물었다. ‘그 나이에 왜 대학원에 지원하셨습니까?’ 그러자 그 지원자는 ‘20년 전에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옆에서 살면 얼마나 산다고 대학원에 진학하느냐고 말렸는데, 지금 20년이 지났고 저는 아직도 건강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다.

한국인의 삶은 20대까지는 입시경쟁으로, 50대까지는 직장에서 혹사를 당하며 정신없이 지나간다. 60이 되도록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하다가 나이가 들어 갑자기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고 허무주의적으로 변해간다. 게다가 돈까지 충분하지 못하면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자식으로부터 외면당하면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보게 된다. 남자의 경우 젊은 시절에는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다가 은퇴 후에는 찍 소리 못하고 눈칫밥을 먹는다.

이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철학’이다. 하다못해 개똥철학이라도 있어야 삶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고, 허무주의와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다. ‘철학’이라고 하면 ‘웬 생뚱맞은 소리야?’라고 핀잔을 할지도 모르지만 철학이 없는 사람이 과연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고 즐겁게 노후를 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철학이 밥 먹여 주냐?’고 말할 수도 있다. 모든 게 부질없어 밥도 먹고 싶지 않은 노후에, 다시 삶의 의욕을 되찾고 밥을 먹고 싶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철학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어떤 엘리트 고위 공무원은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독일을 방문해 노조 간부들과 대화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노조 간부라고 해서 약간 우습게 여겼는데, 뜻밖에도 칸트와 헤겔을 운운하는데 조금도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이 공무원은 자신의 철학 빈곤에 기가 죽었단다. 그는 왜 노조가 철학에 그토록 매달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이유가 훤히 보였다. 철학이 없는 노조는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하기에, 밖으로 국민과 정치인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철학에 근거해야 노조의 주장에 정당성이 실리고 설득력을 갖는다. 철학이 있는 노조는 노조원을 잘 결속시킬 수 있다. 왜 노조가 특정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가를 노조원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밖으로 투쟁을 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아주 예외적인 일을 했다. 조직 내의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고 급기야는 와글와글했다.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 어떤 사람이 ‘겁도 없네. 철학도 없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해?’라고 말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다. 세상에는 철학이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다.

노후를 불교철학·수행으로 채색하자

사람이 법만 잘 지킨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다. 법을 잘 지켰을지라도 윤리·관행·제도·문화 등의 분야에도 유념해야 한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이탈을 하면 수군거리거나 와글와글한다. 살다보면 우리는 예외적인 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윤리·관행·제도·문화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일이 성공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지르는 수밖에 없다. 자기 철학이 분명하지 않을 때 우리의 행동은 왠지 자신이 없어지고 남 앞에 당당히 내세우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

수억 원이 넘는 초고가 벤츠 S클래스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팔리는 나라가 한국이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자기를 나타내는데 가장 열심인 민족이 한국인이다. 그러다보니 남과의 비교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죽지 않고 살려하다간 자칫 자신의 재정능력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게 된다. 로버트 프랭크라는 미국 학자가 중산층이 부채의 늪에 빠지는 원인을 조사한 결과, 부자의 소비패턴을 흉내 낸 게 가장 큰 원인임을 밝혀냈다. 오늘날 자신만의 철학이 없다면 자신만의 당당한 삶을 살기가 무척 어렵다.

어떤 나이든 사람이 노인정을 갔는데, 그곳 노인들이 하루 종일 자랑만해서 노인정 가기가 싫단다. 자식 자랑만 하는 노인이나 자기가 과거에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를 자랑하는 노인으로 가득하다고 하니 한 번 조사해볼 일이다. 자신만의 철학이 없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내세우려고 한다. 그렇게 몸부림쳐 봐도 삶은 허무하고, 가치와 의미는 찾을 수 없으며, 맛있는 것을 먹어도 맛이 없고, 여행을 가도 재미가 없다. 철학은 사람과의 교류와 대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음식과 여행을 맛깔나게 해주며, 자랑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도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인간은 사치스러운 동물이어서 가치와 의미가 없는, 돈과 소비만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철학이야 말로 가치와 의미라는 조미료를 우리의 삶에 듬뿍 뿌리는 요리기술이다.

새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고 허무주의와 우울증에 빠져 40년을 보내게 된다. 입시경쟁과 직장에서의 혹사로 보낸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철학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개똥철학이라도 있어야 모든 게 부질없는 인생 후반부를 견뎌낼 수 있다. 불교철학은 개똥철학과 비교할 수 없는 진주와 같다. 불교철학과 불교수행으로 노후를 채색하는 건 어떨까?

윤성식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고려대와 미국 오하이오대 졸업 후 일리노이대에서 석사, UC버클리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또 동국대에서 불교학 석 · 박사를 받았다. 2004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과 국회공직자윤리위원장, 미국 텍사스대학(오스틴) 경영대학원 교수를 맡은 바 있다. 저서로 〈부처님의 부자 수업〉·〈예측불가능한 시대에 행복하게 사는 법〉 등 다수가 있다.

글·윤성식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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