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려야 문 열리듯 아이디어 있다면 도전해야"

(주)에이엔티홀딩스 대표이자 (재)홍합밸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고경환 씨. ‘홍합밸리’를 상징하는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현선 기자>

흔히 세월을 유수(流水)와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첨단 기술의 발전은 이보다 더 빠른 듯하다. 아날로그 세상이 순식간에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었고, 스마트폰 보급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이젠 LTE 시대조차 넘어 5G 시대다. 첨단 산업분야 종사자들은 이럴 때 잠시라도 한 눈을 팔았다간 시대의 트렌드를 놓쳐버리게 되고, 트렌드를 읽지 못한 책임은 생존의 위협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번 호의 주인공은 치열한 IT분야에서 아이디어로 벤처기업을 일궈낸 청년사업가 고경환(39) 씨다.

 

벤처기업(venture business)은 첨단 기술과 아이디어로 사업에 도전하는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을 말한다. 여기에서 ‘Venture’는 ‘모험’이란 뜻을 갖고 있다. 즉, 벤처기업은 위험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과감히 사업에 도전하는 소기업을 의미한다. 고경환 씨가 설립한 벤처기업은 ‘Art and Technology  Holdings’다. 그는 창업을 지원하는 비영리 재단법인 홍합밸리 이사장도 맡고 있다. 

|   탐험가를 꿈꾸던 소년

1980년대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어드벤처 영화의 대명사였다. 중절모를 눌러쓴 고고학자 존스 박사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고대 유적과 보물을 찾아 모험한다. 어린 고경환은 이 영화에 푹 빠져 존스 박사 같은 탐험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어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도전하는 행위는 그에게 가슴 설레는 모험이었다. 
무역업을 하던 부모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두 형제를 데리고 국내 이곳저곳을 누볐다. 부모와 함께 한 일종의 ‘체험학습’이었다. 해외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40여 개국, 100여 도시를 여행했다. 낯선 세계와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일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덕분에 그는 ‘역마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처음 접해보는 일이나 경험을 좋아해요. 그래서 경직된 분위기의 직장생활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지금의 일이 더 즐거워요.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고민하고 서로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구요. 그런 점에서 어릴 적 탐험가의 꿈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의 형태가 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그는 해외봉사·라틴 댄스 모임 등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태권도 유단자인 고 대표(윗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2003년 베트남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

그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일은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사립초등학교에 합격했지만 공립초등학교를 보내달라고 부모님에게 떼를 썼다. 당시 사립초등학교 등록금은 공립초등학교보다 10배 이상 비쌌지만, 그 돈으로 음악이나 운동 등 다른 걸 배우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부모님 역시 경험이 최고의 자산이라고 여겼던 터라 쉽게 허락해주었다. 이후 그는 피아노·기타·테니스·쇼트트랙·아이스하키·유도·검도 등 그 나이 대에서 해볼 수 있는 예체능을 거의 섭렵했다. 
경험은 자신감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12년 간 줄곧 반장을 놓치지 않았고, 전교회장을 도맡아 할 만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속된 말로 ‘엄친아’였다. 주변에서는 당연히 그가 서울대학교를 지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엉뚱했다. 대학 지원을 앞두고 ‘이쪽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고민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세종대학교 호텔경영학과를 지원했다. 학교의 명성보다는 자신의 꿈과 실리를 좇은 셈이다.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행정고시·외교관 대비반·해외봉사·라틴 댄스 모임 등에 가입했다. 그는 생일 때마다 친구들을 초대해 일정의 입장료를 받고 파티를 열었다. 이 파티는 각기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하는 문화·예술의 축제였다. 이런 모임을 10여 년 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고 사람과의 교감과 소통을 중시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던 건 아니에요. 부모님은 초등학생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신문을 읽게 했어요.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길 때는 이해를 하든 못하든 두꺼운 대학교재까지도 읽어두라고 하셨어요. 특히 글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전달하는 능력이 안 되면 어떤 일을 해도 어렵다면서 글쓰기와 웅변을 배우게도 하셨어요.”

그는 지금까지 40여 개국 100여 도시를 누비며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 2017년, 트레킹으로 유명한 네팔을 찾았다.

세계 곳곳을 누벼본 경험 덕분일까?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호텔 사장이 되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호텔경영학과는 호텔매니저를 육성하는 학과였다. 고작 한 학기를 다니고 학업을 그만둘까 고민하던 찰나, 교양수업으로 인연이 된 교수님의 권유로 기술혁신연구소에 연구멤버로 들어가게 됐다. 정기적인 스터디 모임을 하며 공동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의 인생을 한 순간에 바꿔놓았다. 
당시는 IT산업이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IT관련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 때 지인 10명에게 500만원씩 투자받아 자본금 5,000만원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했다. 컴퓨터 두 대로 인터넷 주식을 거래하는 회사였는데, 저녁마다 외신(外信)을 읽으며 주식을 사고팔았다. 금방 몇 억까지 불어났지만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더 이상 수익률을 높이지 못했다. 

|   여행지에서 발견한 사업아이템

첫 사업을 함께 했던 친구 네 명과 시작한 두 번째 사업은 주말 아침마다 고기를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였다. 신선한 고기를 집에서 바로 받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아이템이었는데, 2003년경 패밀리레스토랑의 선풍적인 인기에 밀려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외식 산업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이었다.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만큼 소중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저에게 도전과 경험은 중요한 자산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호텔경영학이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대학에서 여행·관광·외식 등 의식주와 관련한 다양성에 대해 배운 점은 현장에서 사업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의 세 번째 창업은 2008년, 우연히 떠난 일본여행에서 착안했다. 일본의 한 거리에서 여행 책자와 지도 한 장을 들고 길을 헤매다가 한 일본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 일본인은 아이폰으로 지하철 노선도를 보여주며 “디지털카메라로 찍어가라.”고 했다. 당시 국내에 스마트폰이라고는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옴니아’가 유일했다. 한 일본인의 아이폰 활용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앞서 방문했을 때만 해도 지하철에서 만화책이나 신문을 읽던 사람들이 이젠 스마트폰으로 웹툰이나 뉴스를 보고 있었다.

고 대표는 중소기업청장 표창, IT융합기업인상, IT 이노베이션대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주)에이엔티홀딩스는 소프트웨어 업계 최초로 모바일 기반 수출 유망 중소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사진=정현선 기자>

한국으로 돌아와 그는 모바일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모바일 산업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고 대표는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않았다. 두드리지 않으면 절대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바일 앱 개발 전문기업 ‘Art and Technology  Holdings’ 창업과 함께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의식주 관련 서비스에 기반을 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2009년 시작한 그의 세 번째 사업은 제법 순탄하게 진행됐다. 그는 호텔예약 결제 앱 ‘호텔엔조이’를 시작으로 ‘레드힐스’, ‘엘르 엣진’, ‘택배고’ 등 다양한 앱을 개발했다. 지금까지 개발한 앱만 100여 개에 달한다. 현재는 해외사업팀을 꾸려 해외에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고 대표는 자신만의 사업에서 그치지 않고 청년창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신촌-홍대-합정 지역의 청년창업과 소상공인·문화예술분야 활성화를 위해 설립한 재단법인 ‘홍합밸리’가 바로 그 결실이다. 2012년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위한 실리콘 밸리를 만들자는 큰 뜻을 품고 설립한 홍합밸리는 지역의 커뮤니티 기지 역할 뿐만 아니라 창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 창작자와 예술가의 지원을 돕고 있다. 

고경환 홍합밸리 이사장은 2018년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소외 계층을 지원하는 기업 발굴 및 증진 프로젝트’ 약정식을 맺고 스타트업을 지원해온 노하우를 공유했다.

고경환 대표는 막연히 생각했던 계획을 눈앞에 현실화 했을 때가 가장 뿌듯하다. 사람들에게 실효성을 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그 결과를 주변에서 인정해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일이 잘되고 못되는 건 차후의 문제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상상했던 것을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 그 자체다.  

“사업을 하는데 고비가 없을 수 있나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릴 때 본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존스 박사를 떠올려요.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오면 ‘아르헨티나로 훌쩍 떠나 탱고를 배우고, 다음에는 쿠바에서 살사댄스를 추며, 아이슬란드에 누워 오로라를 보는’ 상상을 하곤 해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세계일주를 하는 상상만으로도 어려움을 이겨낼 에너지가 생겨나거든요.” 

|   결정 지지해주는 부모님 큰 힘

고경환 대표는 스무 살에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대학등록금은 물론 집에서 용돈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그를 믿고 자율성을 부여해준 탓에 웬만한 장애에 부딪쳐도 스스로 자립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루는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와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휴대폰을 싸게 살 수 있냐고 부탁하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 그가 하는 사업이 휴대폰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어떤 부모가 자식이 무한 경쟁사회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기를 바랄까?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이 안정적인 직장에서 스트레스 덜 받고, 소박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그의 부모도 다르지 않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사업을 하는 아들이 염려 될 때면 마음을 다스리며 부처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며 지지해준 부모님의 믿음과 신뢰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고 대표는 지난해부터 ‘유전자 기반 분석 서비스 앱’을 개발 중이다. 그의 부모님이 그에게 해주었듯,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자율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개인 맞춤형 커리큘럼을 추천해 주는 분석 기술이다. 이 앱의 성공여부를 떠나 그는 10년 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후학양성 비영리 아카데미를 설립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부분을 학습할 수 있는 ‘프리스쿨’을 운영하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도 사람과 공존하고 소통하면서 혁신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고경환 대표. 마지막으로 그에게 선배 창업가로써 동일 업종을 꿈꾸거나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아이디어를 아이디어로 끝내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설계만하고 집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평생 집을 짓는 성취감을 모르고 살겠죠. 무슨 일을 하든 열정을 다해보세요. 뛰어난 기술이 없어도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있다면,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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