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호

머슴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쪽 눈이 장애였다. 어머니를 통해 그가 한쪽 눈을 잃은 내력을 들었다. 
대밭 옆집의 여덟 살과 여섯 살짜리 두 형제는 대나무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가지고 놀다가 특별한 놀이 하나를 발견했다. 원통처럼 말아놓은 까만 어둠 담긴 멍석의 구멍 이쪽에서 형이 쏘면 동생은 저쪽 구멍 앞에서 기다렸다가 춤추며 날아오는 화살촉을 주워 형에게 건네는 놀이였다. 그 놀이를 하다가 문득 동생이 저쪽 구멍에 얼굴을 대고 “성아, 화살이 어떻게 날아오는지 여기서 보께 쏘아봐.”라고 해서 형이 쏘았는데 동생의 한쪽 눈이 날아오는 화살촉을 먹었고, 그 이후 많은 아픔의 세월을 애꾸로 살게 된 것이었다. 
그 동생이 우리 집 머슴이었는데 그의 형은 천연두로 죽었다. 그에게 그 화살촉은 무엇이었을까? 한 마리 새였을까? 꿈틀대며 날아다니는 한 줄기 무지갯빛이었을까?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내 눈에는 자꾸 허공에서 알 수 없는 화살촉이 날아오고, 내 눈은 그것을 삼키는데, 그 순간 나는 진저리쳐지고 가슴이 아리고 쓰렸다. 

머슴의 피리젓대

머슴은 영특했다.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많이 알고 있었다. 애꾸인 그는 대나무의 매듭이 긴 부분을 잘라서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우리 마을에서 피리를 불 줄 아는 이는 우리 집 머슴이 유일했다. 아랫입술을 맨 위쪽의 큰 구멍 언저리에 대고 윗입술을 살짝 열고 가슴에 담긴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그 피리젓대[大笒]였다. 부는 구멍이 하나이고, 종이를 붙여 떨리게 하는 구멍이 하나이고, 두 손의 손가락들을 이용해 막았다가 텄다가 하여 연주하는 구멍이 여섯 개였다. 
나는 그것을 불어보고 싶어 환장하겠는데 그는 피리를 만져보지도 못하게 했다. 아버지와 함께 그가 바다로 김을 뜯으러 갈 때나 건장에서 김 너는 일을 할 때는 쇠죽 쑤는 사랑채 부엌의 천정 짚더미 속에 그것을 감추어 두었다. 나는 그가 피리젓대 숨겨놓은 짚더미 속을 정확하게 보아두었다. 그렇다는 것을 안 그는 나에게 말했다.
“절대로 나 없을 때 불지 마라. 나는 내 피리를 누가 손대면 금방 안다. 냄새가 나거든.”
그렇지만 나는 그가 없을 때, 그것을 꺼내 불곤 했다. 그가 어떻게 소리를 내고 어떻게 연주하는가를 나는 잘 살펴두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소리마저도 낼 수가 없었지만, 몇 차례 시도를 하자 소리가 났다. 그가 곧잘 불곤 하는 ‘고향생각’과 ‘노들강변’과 ‘목포의 눈물’의 곡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한 번 불고 또 다시 불면 그 곡조가 나의 모든 감각기관과 기억창고에 각인되곤 했던 것이다. 
소리구멍을 통해 소리를 내고 나자 먼저 ‘고향생각’을 연주하기로 했다. 나의 연주 의지에 따라 신통하게도 그 노래가 연주되었다. 지나가던 누님이 안을 들여다보고 “누가 부는가 했더니, 너로구나. 우리 동생 피리 잘 부는 것 봐라.”하고 탄성을 질렀다. 
나는 누님의 칭찬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머슴의 피리에 손댄 것이 들통 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겁부터 났다. 나는 재빨리 피리를 짚더미 속에 감추었다. 돌아서다가 그의 말이 떠올랐다. “절대로 나 없을 때 불지 마라. 나는 내 피리를 누가 손대면 금방 안다. 냄새가 나거든.” 
나는 피리를 가지고 뒤란 옹달샘으로 갔다. 바가지로 물을 떠서 피리 속과 바깥을 속속들이 씻었다. 힘껏 물기를 뿌려버리고 사랑채 부엌으로 가지고 가서 짚더미 속에 숨겨 놓았다. 머슴은 들일을 마치고 들어오자마자 짚더미 속에서 피리부터 꺼내 보았다. 그는 대번에 나를 노려보았다. 피리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후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나를 노려보면서도 꾸짖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다. 나는 죄인처럼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못했다. 저녁밥을 먹고 아랫마을 머슴들의 사랑방으로 자러 가다가 내 옆으로 다가온 그는 내 귀에 대고 “도둑괭이!”하고 빈정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없을 때면 그의 피리를 훔쳐 불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도둑처럼 짚더미 속에서 꺼내 불었다. 그 소리와 내가 하나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 소리를 타고 내가 하늘나라로 둥둥 떠서 날아가는 듯싶었다. 불고 또 불었다. 오래지 않아 나는 그에 못지않은 피리연주자가 되었다. 
머슴은 물론 내가 훔쳐 불었다는 것을 그때마다 알아차리고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묵묵히 견디었다. 머슴은 피리를 다른 곳에 감추었지만 나는 귀신 같이 그것을 찾아내었다. 측간 위의 짚뭇(짚단)을 보관하는 더그매(지붕과 천장 사이의 빈 공간)에서도 찾아내 실컷 불었다. 


내가 만든 피리젓대

어느 날 나는 매듭이 긴 대나무 한 토막을 잘라서 피리를 만들기로 작정했다. 그때부터 피리젓대 만들기에 알맞은 대나무를 찾아 헤매었다. 미친 듯이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그 대나무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다의 김발에 쓰려고 구해놓은 띠대(물속의 김발을 적당하게 떠오르게 하는 긴 대)의 묶음 속에 들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 모르게 그 묶음을 풀고 내가 노린 대 하나를 뽑아냈다. 줄톱을 가져다가 한 토막을 잘라냈다. 머슴이 날을 예리하게 세워놓은 낫으로, 서툰 톱질로 인해 우둘투둘한 부분을 곱게 다듬었다.
이제는 피리구멍 뚫을 궁리를 했다. 물론 머슴의 피리젓대를 앞에 놓고 본떠 만들었다. 바지락 까는 칼로 구멍을 뚫으려 했지만 쉬 뚫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궁리를 한 끝에 대장간의 풀무질로 달구어지던 쇠꼬챙이를 생각했다. 화로에 숯불을 일으키고 거기에 송곳을 빨갛게 달구어 구멍을 뚫자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화로를 툇마루로 내왔다. 소나무 낙엽에 불을 지피고, 숯 가마니에서 숯을 꺼내다가 넣고 부채로 부쳤다. 낫의 자루를 뽑아버리고, 송곳처럼 뾰족한 부분을 이글거리는 숯불 속에 넣어 달구었다. 그것이 빨갛게 달구어질 때까지 부지런히 부채질을 했다. 그것이 달구어졌을 때, 걸레로 낫 궁둥이를 감싸 쥐고 연필로 표시해둔 자리에 구멍을 뚫었다. 대나무는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뚫렸다. 그런데 하나 뚫고 나면 송곳이 식어버렸으므로 나는 다시 숯불에 열심히 부채질을 하여 달구어야 했다. 힘이 드는 일이었으므로 내 얼굴에서는 땀이 흘렀다. 이마의 땀방울이 대나무 위로 떨어졌다. 
그때 작은 집 아기업개[保姆] 순이가 아기를 업은 채 왔는데, 분주한 내 작업을 궁금해 하며 들여다보다가 잠든 아기를 할아버지 방에 재워놓고, 숯불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나보다 일곱 살 위인 순이의 도움으로 나는 쉽게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 
순이는 나의 콧등과 이마에 송송 달려 있는 땀방울을 흰 저고리 소매 끝으로 훔쳐 주었다. 나는 바지락 까는 작은 칼끝을 숫돌에 날카롭게 갈아서 꺼멓게 탄 구멍 가장자리를 깎아냈다. 마지막으로 부는 구멍의 안쪽 가장자리를 조금씩 깎아 키웠다. 할아버지 방에서 참종이 한쪽 끝을 잘라다가 떨림 구멍에 붙이고 시험 연주를 해보았다. 신통하게 소리가 났다. 화로·자루 뽑힌 낫·바지락 까는 칼·부채 따위를 치우려고 하지도 않고 나는 시험 취주(吹奏)에만 열정을 쏟았다. 순이는 내가 피리 부는 것을 신통해 하며 보고 있다가 찬탄했다. 
“아이고 너는 피리도 잘 분다!”
순이의 칭찬까지 받고 나자 나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황홀했다.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싶었다. 순이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오더니 나를 덥석 끌어안고 내 땀범벅인 얼굴 여기저기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순이의 가슴은 둥둥하게 부풀어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피리를 보물처럼 간직했다. 소를 뜯기러 가거나 꼴을 베러 갈 때는 구럭 속에 넣어 가지고 산에 가서 쪽빛바다를 내려다보며 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곡조를 다 불었다. 피리소리는 이 산골짜기에서 저 산골짜기로 메아리를 일으키며 날아다녔다.     

아기업개 순이

작은 집 아기업개 순이는 머슴의 여동생이었다. 순이는 체구가 오동통했고 얼굴 살갗에 주근깨가 드문드문 있었는데, 그것은 붉은 나리꽃 속에 박힌 점처럼 약간 불그죽죽해보였다. 속눈썹이 길게 휘어진 그녀는 누님하고도 다르고, 어머니와도 다르고, 제 오빠인 머슴하고도 다른 알 수 없는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누님은 누님대로 나를 예뻐해 주지만, 순이는 그들과 전혀 다르게 나를 예뻐했다. 
어른들이 모두 들일을 나가고, 할아버지가 벗들과 풍월을 하러 가시고, 누님과 형이 학교에 간 다음, 집이 텅 비면, 순이는 아기를 할아버지 방에 잠재워두고 나하고 숨바꼭질을 하곤 했다. 뒤란 옹달샘 근처에는 머위와 뱀딸기풀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거기에서 멀지않은 양지바른 곳에서 각시놀이를 했는데, 순이는 각시가 되고 나는 서방이 되었다.

숨바꼭질을 하던 순이와 나는 배가 고팠다. 주위에는 지천인 뱀딸기풀이 우듬지(나무 꼭대지 줄기)에 빨간 뱀딸기들을 달고 있었다. 엄마의 젖꼭지에 빨간 물을 들여놓은 듯한 그것.  
‘뱀딸기는 눈썹을 하나 뽑고 나서 따 묵으면 된단다.’
순이는 자기 눈썹을 한 개 낚아채 뽑고 그걸 따먹었는데, 나는 내 눈썹을 뽑지 못하여 따먹지 못했다. 순이가 빈 입맛만 다시고 있는 내 눈썹을 뽑아주겠다고 해서 눈을 딱 감고 기다렸다. 내 망막에는 진한 하늘색의 어둠이 흘러갔는데, 그녀가 갑자기 나를 그녀의 둥둥한 가슴으로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진저리치다가 내 눈꺼풀에 코끝을 비비고 내 입술을 쪽 빨고 난 뒤에 숨을 가쁘게 쉬며 말했다.
“니 눈이 너무 이뻐서 못 뽑겠다. 내 눈썹을 니 것 대신 뽑아주께 따 묵어라.” 
약간 쌉쓰름한 듯하면서도 뒷맛이 배릿하고 달콤한 뱀딸기였는데, 순이는 자꾸 자기 눈썹을 뽑아댔고, 우리는 눈썹의 개수에 따라 그것을 따 먹고 또 따 먹었다. 배고픈 기가 가시게 따 먹었는데, 갑자기 속이 매슥거려 토악질을 했다. 순이도 피처럼 빨간 즙을 토해냈다. 
내가 6학년 되던 해에 순이는 검은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고 작은 옷 보따리 하나 가슴에 보듬고, (한 낯선 아주머니를 따라) 먼데 산골마을로 시집을 가게 됐다. 나는 책보자기를 가새질러 짊어지고 학교로 달려가다가 가슴이 쓰라려 울었다. 순이는 길에서 만난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는데, 그게 그녀와 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한승원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소설 원효〉·〈초의〉·〈다산〉 등 다수의 소설을 쓴 이 시대의 대표 소설가다. 고향 율산마을에서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한 작품을 써오고 있다. 현대문학상 · 한국문학작가상 · 이상문학상 · 대한민국문학상 · 한국소설문학상 · 한국해양문학상 · 한국불교문학상 ·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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