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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부처되기’와 ‘불국토 건설’
  •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8.2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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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깨달음과
불국토 건설 병행될 때
불교 바로 선다

“여기는 일등 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동구권의 사회주의가 무너지기 전에 그쪽의 학자가 했다는 말이다. 그 말은 사회주의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준다. 그것과 딱 비교되는 우리나라의 광고가 있다.

“이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바로 자본주의에서 이상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평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와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그 사회체제가 어떠냐에 따라 이상적인 인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우리 개인이 어떤 이상적인 인격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떤 사회를 전제로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어떤 이상을 꿈꾼다는 것은 참으로 허공에 삽질하는 것이라는 것도.

불자들을 기준으로 해서 말해보자. 혼자서 훌륭한 불자가 되고, 깨달음을 얻겠다고 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불국토라는 배경이 있어야만 불자가 빛이 나고, 불자가 행복할 수 있다. 아니 그런 배경 없이 훌륭한 불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전혀 불국토답지 않은 세상에 혼자 불자로 있다는 것은 크나큰 불행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불국토건설이라는 것과 부처를 이룬다는 것은 둘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나가는 과정의 궁극에 바로 부처가 있다. 그리고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은, 나 혼자만을 똑 떼어서 닦아나가는 것이 아니다.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는 나 홀로 독존한 적이 없다. 가정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조직의 일원으로 존재하며, 국가와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세계의 시민으로 존재한다. 내가 훌륭한 존재가 되어나간다는 것은 바로 훌륭한 가정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국가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바로 그런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불교는 어떤가? 현실의 불자들은 어떤가? 가장 단적인 예로 불자들의 정치의식을 들어보자. 신도 수에 비하여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적고, 정치적 의식이 가장 희박한 종교로 불교가 꼽히고 있다. 요즘 들어서 이런 점을 많이 벗어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수준은 여전이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사실에서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안심입명을 꾀하는 종교에서, 모든 중생이 행복해지는 큰 목표를 세우는 종교로 나가야 한다. 개인의 행복이라는 것이 그러한 큰 조건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통찰해야 한다. 아득한 목표로 공염불처럼 외우는 ‘불국토 건설’이 아니라, 나와 이웃과 사회와 국가가 보다 행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그 궁극이 곧 불국토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서야만 한다. 그래야만 허공에 삽질하는 ‘부처되기’와 ‘불국토 건설’을 벗어나 진정 나날이 훌륭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과 나날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서원행이 일치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되물어 보면서 또한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절실한 물음이 있을 때 나날이 불국토를 실현하는 대승보살의 길이 열리게 된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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