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신문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지상설법
<지상설법> 앙굴리마라에게서 얻는 교훈
  • 천태종 도원 종의회의장
  • 승인 2019.07.30 10:15
  • 댓글 0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있었던 일입니다. 맨해튼의 한 슈퍼마켓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여성이 음식을 훔쳐 나오다 들켜 경찰에 신고 되었습니다. 이날 점심 무렵 유니온스퀘어 홀푸드에서 한 여성이 계산을 하지 않고 음식을 가방에 담아 매장을 빠져나오다 경비원에게 적발됐습니다. 경비원은 곧바로 뉴욕시경(NYPD)에 신고했지만 때마침 점심을 사러 나온 뉴욕시경 경찰 3명이 이 여성을 체포하는 대신 음식값을 대신 지불하고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며칠을 굶은 여성의 딱한 사정을 들은 경찰은 처벌 대신 관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현재 인류 사회는 전세계적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빈부의 양극화, 가족해체, 지역사회 갈등과 같은 사회해체 현상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로 인해 범죄율 증가는 물론 약물과 도박 중독 등 개인일탈현상이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에 대처하는 방식이 일관적이지 않아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범죄를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전히 처벌과 통제를 내세우고 있는가 하면 의료와 적응을 내세운 모델로 이들을 교화해야 한다는 방법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어느 방식이 됐든 중요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성이 보호돼야 합니다. 상황과 해석에 따라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이 위협받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는 반드시 보호되고 지켜져야 할 존엄성이 무시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범죄를 줄이려는 노력은 어느 사회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어떻게 쓰느냐의 차이는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옵니다. 노르웨이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재소자가 75명으로 미국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그 이유는 사회화의 수용 과정에서 ‘포용’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밖으로 밀쳐내지 않고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존엄한 하나의 인격체로 다루려는 노력이 범죄율을 낮추고 있는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노르웨이의 한적한 섬 하나가 ‘바스토이 교도소’인데 재소자들의 천국이라 불립니다. 이곳엔 다른 교도소처럼 높은 담장이나 철문이 없습니다. 심지어 교도관들은 어떤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재소자들은 별장처럼 꾸며진 숙소에서 2~6명이 함께 사는데 섬 밖으로 나가는 일 외엔 모든 자유가 보장되며 어떠한 감시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옥시도가 거의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과 개인의 심리적응 훈련 등이 주효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랄 일은 이곳에 들어오는 재소자들은 중범죄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살인과 마약, 그리고 악질 경제사범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진심으로 참회하게 만드는 바스토이 교도소의 힘은 바로 ‘포용’에 있었습니다. ‘포용’의 힘은 그들로 하여금 다시 사회에서의 재활을 꿈꾸게 만들었습니다.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유명한 살인마 앙굴리마라의 교화도 이 포용의 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교도의 수제자로 있던 앙굴리마라는 스승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의 무분별한 살인은 살벌했고 처참했습니다. 이러한 현장에 나타난 부처님은 앙굴리마라의 살기를 진정시키며 죽음과 공포 속에 홀로 서있는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였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 앙굴리마라가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자 부처님은 그의 손을 잡아 이끌어 기원정사로 데리고 왔고 그의 머리를 깎아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때 프라세나짓 국왕이 병사를 데리고 살인마를 국법대로 처단하겠다며 기원정사로 찾아와 앙굴리마라를 내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부처님은 프라세나짓 국왕에게 앙굴리마라가 출가해 사문이 되었음을 밝히며 “국법(國法)이 버리는 자라도 불법(佛法)은 넉넉히 포용한다.”고 대응하였습니다. 이에 국왕은 발을 돌려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앙굴리마라는 다른 수행자처럼 거리로 나가 탁발을 하며 공양을 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탁발을 나온 앙굴리마라를 향해 욕을 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앙굴리마라는 전날 자신의 행위를 진정으로 참회하며 사문으로서의 위의(威儀)가 무너지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더욱 단단히 하였습니다. 훗날 앙굴리마라가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게 됐다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처님은 실로 대양(大洋)과 같고 대지(大地)와 같다.”면서 칭송하였습니다.

죄(罪)에 대한 교화는 단순히 처벌과 징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노르웨이의 바스토이 교도소는 일찍이 부처님이 앙굴리마라에게 행했던 교화의 방법을 적용하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은 이처럼 포용이 이루어져야 지켜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합의 사회화에서 포용은 핵심적인 ‘키워드’라 하겠습니다. 포용을 불교용어로는 섭수(攝受)라고 합니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더럽고를 분별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는 것처럼 차별을 두지 않고 포용하는 정신을 일컫습니다. 섭수의 정신이 널리 확산된다면 인류의 삶은 보다 행복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천태종 도원 종의회의장  ggbn@ggbn.co.kr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천태종 도원 종의회의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