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道와 습합해 영욕의 역사, 독특한 ‘神佛 신앙’ 형성

교토 청수사의 일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절은 헤이안 시대에 창건됐다.현재 건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중건했다.

일본불교는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신앙형태를 지니고 있다. “태어나면 신사를 찾아가고, 결혼할 때는 교회나 성당을 찾고, 죽은 후에는 사찰을 찾는다.”는 말은 일본인의 종교관과 함께 생활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또 일본인들은 양력 설날에는 주로 신사와 사찰을 참배하지만 추석에는 주로 사찰을 찾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복합적인 종교문화는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신불습합(神佛習合)’이란 사상적인 융화현상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집안에 불단(佛壇)과 신단(神壇)을 모두 갖추어 놓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불교와 신도는 오랜 기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세의 행복은 주로 신도의 신에게 빌고, 사후는 부처님께 의지하여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왕생하겠다고 하는 독특한 ‘신불(神佛)신앙’을 탄생시켰다.

불교의 전래와 종파불교

도쿄 센소지에서 기도를 하는 일본 불자들.

일본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은 아스카시대(飛鳥時代, 538~710) 초기인 서력 538년으로 백제 성왕(聖王)이 킨메이천황(欽明天皇)에게 불상과 경전 등을 보냈다는 기록이 전한다. 하지만 민간에는 그 이전에 이미 불교가 전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식적으로 불교가 전래된 곳은 현재의 나라시(奈良市) 근교 아스카(明日香)지역, 아스카데라(飛鳥寺) 인근이다. 아스카데라가 위치한 마을의 위쪽 산 아래에는 옛 황궁터가 있고, 그 옆에는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 ?~626) 대신의 묘지석이 있다. 그리고 불교를 받아들이고 융성하도록 소가노 우마코에게 힘을 실어준 쇼토쿠 태자(聖徳太子)의 영향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쇼토쿠 태자는 고구려의 혜자(惠慈) 스님과 백제의 혜총(慧聰) 스님이 건너오자 혜자 스님을 스승으로 삼아 오계를 받고, 불교 교학과 계율을 확립하는 등 불교를 융성시켜 국가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 일본에는 토속종교이자 자연종교인 신도(神道)가 존재했다. 자연물을 신격화해 모시는 신도는 원래 교리나 사상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하지만 불교의 전래에 자극을 받아 사상으로, 종교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점차 불교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초기에는 외래 종교라 할 수 있는 불교가 신도에 접근해 균형관계를 형성했는데, 신사(神社)에 사찰이 세워지는 ‘신궁사(神宮寺)’와 신사에서 불경을 독송하는 ‘신전독경(神前讀經)’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런 초기 불교의 특징은 현대 일본인들의 사상 속에 ‘신불일체(神佛一體)’를 각인시키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일본 불자들이 행운을 기원하며 매달아놓은 소원지.

아스카시대부터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까지의 불교를 ‘나라(奈良)불교’ 혹은 ‘남도(南都)불교’라고 부른다. 이때 생겨난 종파가 ‘남도육종’으로, 구사종·성실종·율종·법상종·삼론종·화엄종이다. 이 가운데 삼론종은 고구려의 혜관(慧灌) 스님에 의해 625년에 전해진 일본불교 최초의 종파다. 이후 일본의 도쇼(道昭) 스님이 653년경 당나라에서 공부한 후 귀국해 법상종과 구사종을, 백제의 도장(道蔵) 스님이 성실종을 창종한다. 또 신라의 심상(審詳) 스님과 킨슈지(金種寺)의 료벤(良弁) 스님이 화엄종을 창종하고, 중국의 감진(鑒眞) 스님이 율종을 일본에 전한다. 이렇게 일본의 초기불교는 주로 한국불교의 영향을 받는데, 이때의 불교는 한 사찰 안에 다수의 종파가 공존하는 특징을 보인다.

나라시대의 불교가 ‘학문불교’라고 불리면서 복잡한 교학체계를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에 와서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직접 받아들여 새롭게 성립한 천태종과 진언종의 두 종파가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남도육종 가운데 법상종만이 큰 세력을 유지하면서 학문적으로 뛰어난 연구와 저술활동을 펼친다.

일본불교는 이렇게 나라시대-헤이안시대-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를 거치면서 현재 일본불교의 주축이 되는 8대 종단을 형성하게 된다. 헤이안시대에는 천태종과 진언종을 중심으로 일본 고유의 신도와 사상적으로 습합(習合)현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가마쿠라시대에는 선종인 임제종·조동종과 정토종  · 정토진종  · 진언종  · 시종 등의 거대 종단이 나타나면서 계율의 엄수  · 좌선정진  · 사회사업 등에 주력하게 된다.

일본 후쿠오카 구시다 신사의 금줄 앞에서 불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불자들의 연례행사

일본에서는 새해 첫날 사찰이나 신사를 참배하는 걸 ‘하츠모데(初詣, 정초참배)’라고 부른다. 양력 정월 초하루에 일본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사찰과 신사라 말할 수 있다. 전국의 주요 사찰과 신사에는 전날 저녁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는데, 자정 무렵에는 수천에서 수만 명이 운집한다. 그리고 새해를 알리는 자정을 기해 사찰에서 범종을 울리면 이때부터 법당이나 신사를 참배하며 소원을 빈다.

일본의 전체인구가 1억 2,500만 명 정도인데, 신년에 사찰이나 신사를 찾아 하츠모데에 참여하는 인구가 8,0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하츠모데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유명 사찰과 신사는 하츠모데에 앞서 텔레비전 광고를 하기도 한다. 전국에서 참배객이 가장 많은 사찰은 나리타산(成田山)의 신쇼지(新勝寺)와 가와사키다이시(川崎大師)의 헤이겐지(平間寺)를 꼽을 수 있다. 이들 사찰에는 평균 300만 명이 넘는 참배객들이 정월 초하루부터 초삼일 사이에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제지선을 설치해 순서대로 입장을 시키는데 질서정연한 모습이 이채롭다. 신사 중에는 도쿄 중심에 있는 메이지신궁이 사람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하다.

정초에 일본인 가정을 방문하면 대문 앞에 ‘카도마츠(門松)’라고 부르는 소나무장식을 볼 수 있다. 또 현관에는 ‘시메나와(注連縄, 잡귀를 예방하는 표시)’가 걸려있다. 집안에 들어서면 거실 상단에 신을 대접하기 위해 차려 놓은 찹쌀떡인 ‘카가미모치(鏡餅)’가 놓여있다. 이런 풍경은 집집마다 비슷하다. 새해 첫날 신을 맞이해 축복을 받으려는 의례인데, 그만큼 일본인들의 일상 속에는 신도(神道)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부처님오신날(양력 4월 8일)에 열리는 관불회(灌佛会)인 ‘하나마츠리(花祭)’는 우리나라의 부처님오신날 행사와 큰 차이는 없는데, 다만 고승의 강론을 듣는 법회가 열리는 게 특징이다. 봄과 가을로 춘분과 추분을 전후해 7일 간 열리는 법회 ‘피안회(彼岸会)’는 정토세계를 떠올리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행사이다.

나라 동대사의 모습.

조상을 모시는 행사인 ‘오봉(お盆)’도 일본불교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이다. ‘오봉’은 일반적으로 양력 8월 13일부터 15일 혹은 16일까지 열리는데, 조상 영가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행사이다. 한국불교의 우란분절(盂蘭盆節)과 같은 날이다. ‘분(盆)’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일본인은 영혼신앙의 전통이 뿌리 깊다. 그래서 조상숭배는 불교뿐만 아니라 신도 등 다른 종교와 일상생활 전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도덕적인 규범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 외 대도시부터 지방과 산골짜기에 이르기까지 지장신앙이 민간에 넓게 퍼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장보살을 일상에 받아들여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한 마을에도 몇 군데씩 조성되어 있는 지장보살상은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부터 사후의 구제까지 포용하는,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존재다.

또한 일본인들은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신사를 참배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엄마와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신사를 참배하며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이를 ‘오미야마이리(お宮詣り)’라고 한다. 세 살(남녀공통)  · 다섯 살(남아)  · 일곱 살(여아)이 되는 해의 11월 15일에도 신사를 참배하는데 이런 관습을 ‘시치고산(七五三) 축하연’이라 부른다.

일본의 가정에는 보통 불단(佛壇)이나 신단(神壇)이 설치되어 있다. 불단과 신단을 함께 모셔 놓기도 한다. 이곳에 일종의 부적을 봉안해 놓고 아침마다 참배를 한다. 그들은 가정에서 모시는 각각의 신과 조상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며 하루의 안녕을 기원한다. 입학이나 졸업  · 취업 등이 있을 때에도 일본의 많은 가정에서는 신단 앞에서 두 손을 모으며 감사와 축원을 올린다.

나라 동대사 본당의 청동대불. 무게가 500톤에 달한다.

일본불교의 큰 축 ‘단가제도’

일본불교와 불자들의 신앙생활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이 바로 ‘단가(檀家)제도’이다. ‘단가’란 ‘어떤 사찰에 신자로 이름을 올려 보시를 하는 불자 가정’을 의미한다. 단가제도는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7)의 임제종 승려인 이신스덴(以心崇伝, 1569~1633)의 제청에 의해 시행됐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부름을 받아 막부정권에 참여한 인물로 막부의 법률을 입안했고, 외교와 종교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신스덴 스님은 기독교 전래 초기에 금교령(禁教令)을 제청하는 한편, 전국 사찰을 기반으로 행정시스템을 구축했다. ‘본사-말사 제도’를 확립해 불교의 통제를 도모하면서 ‘단가사청제도(檀家寺請制度)’를 통해 사찰의 행정기구화를 도모한 것이다. 이 제도가 바로 현대 일본불교 행정체계의 기원이 된다. 이것은 오늘날 호적제도와 유사하다. 특정사찰에 신자의 가족에 대한 출생과 사망날짜를 기록하고 관리하도록 한 후 거주지를 옮길 때에는 사찰에서 발행하는 증명서를 지참하도록 했다.

이 제도는 백성들의 동향을 조사  · 파악하기 위해 시행된 조치였는데, 결과적으로 일본인의 생활을 사찰과 밀접하게 만들었다. 사찰에 출생과 사망을 신고하다보니 집안의 장례와 제사를 사찰이 사실상 독점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에도시대의 미술  · 문학  · 건축  · 사상 등 문화 전반에 미친 불교의 영향은 지대했다고 볼 수 있다.

교토 지온 지구의 좁은 거리에 있는 불교식 사당. 만(卍)자는불교의 상징이며, 이런 사당은 주로 사찰 근처에 세워진다.

당시 단가제도는 전국 12만개의 사찰에 막강한 부(富)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메이지(明治)정권은 에도시대의 불교 중시정책을 부정하고, 신도(神道)의 국교화를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신사의 불교적 색채를 배제하고자 ‘신불분리정책’을 편다. 불교가 전래된 후 1,000여 년을 이어오던 신도와 불교의 신불습합은 1868년 ‘신불(神佛)분리정책’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일반 민중 사이에서는 여전히 신불일체(神佛一體)의 신앙이 유지되었다. 이후 불교는 에도시대의 유학자와 국학자들에 의해 사상 유래가 없는 박해를 받는다. 신관(神官)으로 조직된 신위대(神威隊)는 사찰운영권을 빼앗고 불상을 불태웠고, 스님에게는 신관으로 전직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불교는 귀족불교에서 민중불교로 거듭나게 된다.

메이지 6년(1873) 그리스도교 금교령은 해제되고, 단가제도의 법적근거도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의식에는 쇼와시대(昭和時代, 1926~1989)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불일체’의 각인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2016년 12월 31일 도쿄의 한 사원에 새해 전야를 즐기려는 불자들이 모여들고 있다.불자들은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치유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일본인에게 불교란?

현재 일본은 사찰이 7만 5,000개, 승려 수는 18만 명, 신도 수는 9,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9,000만 명에는 신도와 불교를 중복 신앙하는 불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인은 보통 선조 대대로 이어지는 정령(精靈)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특정 사찰을 정해 놓거나, 신사에서 조상신을 모시기도 한다. 모두 신불습합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통계교리연구소(統計敎理硏究所)가 5년마다 20세 이상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민성조사(國民性調査)’에 따르면 종교 신앙과 관련해 ‘믿고 있다.’는 응답자가 1958년에는 35%, 1963년에는 31%, 1968년에는 30%, 1974년에는 25%로 점차 하강선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믿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 가운데에서 ‘그래도 종교심은 중요하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47% → 53 % → 53% → 52%로 대체로 50%선에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믿고 있다.’고 답한 사람 중에 ‘종교심은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82% → 84% → 83% → 77%로 높게 나타났다.

결국 10명 중 7명 정도가 ‘종교에 대한 믿음’에 부정적이었음에도 10명 중 8명 정도가 ‘종교심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셈이다. 믿음에 대한 신념은 약하지만 사찰이나 신사 참배는 정성을 쏟는 일본불자들. 그들은 오늘도 사찰이나 집안에 모셔진 불단에서 가족의 무병장수  · 재난소멸  ·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굳건한 신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신앙생활을 하는 게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광준

현 일본 류코쿠대학(龍谷大学) 세계불교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원.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후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学)에서 박사학위(심리학)를 받았다 한림성심대학 교수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외국인 연구원(교수)을 역임했다. <카운셀링에 있어서의 선심리학적 연구>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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