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좋아하던 소년, 역사 전시하는 청년이 되다

하나의 전시회가 열리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시 기획은 어떻게 구상하고, 어떤 유물을 어떻게 전시할지, 공간은 어떻게 디자인하고 설치할지, 효과적으로 전시회를 홍보할 방법은 무엇인지……. 이 과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전시를 설명해주는 큐레이터를 비롯해 전시품 설치자 · 홍보담당자 · 보존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송영춘 학예연구원은 고등학생 때 지리 동아리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역사와 현장이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사진=정현선 기자>

이번 호의 주인공도 이 분야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송영춘(33) 학예연구원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최전선에서 전시업무 지원과 전시를 위한 자료 · 조사연구 등을 보조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역사’와의 운명적 만남

고고학을 좋아하는 송영춘 씨는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어머니가 출판사에서 잠깐 근무하셨기 때문인지 집안에는 〈한국의 역사〉, 〈세계의 역사〉 등 어린이용 전집이 많았다. 특히 총 70권으로 구성된 전집 〈비쥬얼 박물관〉의 ‘세계국기’편과 ‘화폐’편은 책 모서리가 닳도록 보고 또 봤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신문을 읽으셨는데, 그런 모습은 은연 중에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아버지 옆에서 자연스레 신문을 따라 읽다보니 어느 순간 활자 속 한문이 읽히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신문에 한자가 많았을 때였다. 부모님이 책을 읽도록 만들어준 환경 덕분에 어린 나이에 위인전을 독파했다. 중학생이 되어 시험공부를 하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읽었던 위인전의 주인공이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지리 동아리’에 가입했다. 학교 근처로 지리조사를 위한 답사를 다녀오기도 하고, 지형을 보느라 하루를 자고 오기도 했다.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그때 처음으로 ‘역사와 현장이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뭣 모르고 읽은 책들이 선행학습이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국어·영어·수학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한국사는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자신 있었어요. 지금도 자료를 찾을 때면 어릴 적 읽었던 내용들이 기억 속에 퍼즐처럼 맞춰지곤 합니다.”

결국 그는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사학(史學)을 전공하기로 했다. 진주 경상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한 후 학과활동으로 답사준비위원회 답사부장을 맡아 봄과 가을이면 유적지·절·탑·무덤·성곽 등으로 답사를 다녀오곤 했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동아리에서 주최하는 법회나 불교 캠프에도 많이 참석했다.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모여 소통하면 마음이 편했다.

지난 2015년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 나라(奈良)시에 있는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에 답사를 다녀왔다.사진은 동대사 본당인 대불전 앞에서.

국립대구박물관 입사

사학과 4학년 때 그는 교내 박물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전시 안내를 도왔다. 2012년 8월에는 전시 기획하는 일을 배우기 위해 불교박람회 사무국에 지원해 근무했으나, 사람을 상대하며 영업을 하고 마케팅을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박람회 일을 그만 두던 차에 경상대 박물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학예사와의 인연으로 다시 교내 박물관에서 1년 반 정도 유물 정리와 전시 안내 및 전시실 방호업무를 도왔다. 2014년에는 2년 간 진주박물관에서 소장품 등록관리 외 전시업무를 보조하며 본격적인 학예연구원의 길에 들어섰다.

국립대구박물관에는 2016년 9월, 기간제 근로자 학예연구원으로 오게 됐다. 그는 대구박물관에서 ‘미등록 유물 정리·등록’ 일을 맡으며,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0여 개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는 지난 전시회를 돌이켜보면서 특별전 ‘깨달음을 찾는 소리, 소리로 찾은 진리’를 가장 재미있었던 전시회로 꼽았다.

“불교사와 불교미술사에 관심이 있어 공부를 하고 있던 터였어요. 박물관에서 관련 전시회를 개최한다기에 앞뒤 가리지 않고 지원해 전시 준비에 참여했죠. 전시 진행에 열정적으로 임해서인지 칭찬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2017년 9월부터 약 3개월간 ‘프랑스 단추’전, ‘삼국유사’전 등도 진행했다. 그 중 2018년 상반기에 금호강과 그 주변에 형성된 고대문화의 특징을 조명한 ‘금호강과 길’ 특별전은 공무직이 된 후 맡은 첫 전시회여서 유독 애착이 갔다.

“고고 유물과 고고학은 박물관에서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분야였어요. 당시 전시 도록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료를 찾고 연구했던 과정들은 학예사가 되는 과정에 있는 저에게 많은 공부가 된 소중한 기회였어요. 서툴지만 많은 연구원 선생님과 조율하고 협력해 나가는 방법도 배웠고요. 물론 원하는 방향대로 모두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배우기도 했어요.”

이후 대구박물관이 복식특성화 박물관이 되면서 낯설지만 계속 도전해보고 싶은 전시회들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기획전시 ‘이영희 기증 복식 새바람’과 지난 전시 ‘여성 한복, 근대를 만나다’가 그 중 하나다.

그렇다보니 전시관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배우고 있다. 유물의 재질에 따라 전시실 환경이나 디자인, 조명 등을 다르게 연출해야 하는데, 낯선 복식전시를 진행하면서 그에 맞는 새로운 방식을 배우게 됐다.

전시실마다 인테리어와 그래픽 효과, 공간 구조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보면,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도 조명이나 인테리어만 살피게 된다.

송영춘 연구원은 요즘 예정전시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전시회가 열리고 난 후에도 미진한 부분을 수정·보완해야 하는 일이 많지만 전시회를 열기 전에 준비하는 것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물론 박물관 일이 힘들고 고되기도 하지만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 궁금한 자료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거든요. 일하면서 수많은 책과 자료를 마음껏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힘들어도 충분히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어요.”

2008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여름대회 입재식 날, 당시 경남지부 대표로 대불련 3대 강령 선서문을 낭독 하고 있다.(왼쪽)2009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여름대회 때 활동 모습.

박물관에서의 일과

보통 박물관의 역할은 크게 유물 수집·보존·연구·전시·교육 등으로 나뉜다. 각 부서는 학예연구관·학예연구사·학예연구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학예연구사가 전시 기획에 관한 실질적인 업무를 맡는다면, 학예연구원은 학예연구사와 한 팀이 되어 업무를 지원하고 보조한다.

대개 박물관의 전시 운영은 1년 내내 열리는 상설전시와 특정기간에만 열리는 기획전시가 있다. 기획전시는 주제와 유물의 양 등 여러 가지 여건에 따라 규모의 차이가 있는데, 올 12월까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영주 금강사 터에서 만난 보물’이 그 예다.

송영춘 학예연구원은 이 전시의 기획 단계부터 전시실 구성까지의 업무를 함께했다.

그가 출근 후 하는 일은 어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면 전시실을 둘러보는 것이 첫 번째 일과다. 관람객이 오기 전 전시실 설치 영상이 잘 돌아가는지, 유물 이름표가 삐뚤어지진 않았는지 등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 후 조치를 취한다.

전시를 기획하는 단계라면 유물 목록을 작성해 필요한 물품을 확인하거나 관련 문헌을 조사하는 등의 전시 자료를 미리 준비한다. 전시 기간이 임박하면 전시실에 유물을 옮기고 유물을 보관하는 수장고를 정리한다. 전시회를 개최하기 전에 미진한 부분이 확인되면 조치를 취해야하는데, 전시장 문을 열고 유물을 만져야 하는 일은 각별한 주의를 요하기 때문에 항상 학예연구사와 함께 움직인다.

대부분의 박물관은 주로 월요일 날 휴관하는 경우가 많다. 박물관이 휴관이라고 해서 직원들이 출근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람객들이 없는 월요일에는 더 바빠진다. 박물관에 관람객이 없을 때 유물 교체나 전시 안내 설명판을 수정하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의 하루일과는 정해져 있지 않다. 전시계획에 따라 종일 엑셀파일을 봐야 하는가하면, 전시 자료집만 보기도 한다. 그러다 일이 한꺼번에 몰리기라도 하면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관람객을 전시실로 맞이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디어·기획·구성·디자인 등 A부터 Z까지 학예사 선생님들과 업무를 공유하다보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모여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한 권이 완성될 때까지 ‘어떻게 하면 더 관람객에게 전시품을 잘 소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송영춘 연구원이 전시실을 둘러보며 조명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정현선 기자>

유물 아름다움 전하는 사람 되고파

그가 지금껏 몸으로 경험하고 깨달은 문화·예술에 관한 관심과 열정은 학예연구원이 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궁극적으로 우리 유물이 가진 멋과 아름다움을 지키고, 알리려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러기위해서는 학예연구사가 되는 게 1차 목표다.

“박물관은 문화예술의 공간이자, 문화향유의 공간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전통 유물이나 역사를 보존해나가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런 중요한 공간에서 한 부분을 맡고 있다는 점이 뿌듯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하루빨리 제 손으로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 멋진 전시를 기획해 보고 싶어요.”

전시 유물을 바라보며 감동을 느끼는 관람객의 뒷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송영춘 씨. 박물관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사명감이 있기에, 그는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스스로의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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