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유럽 최고의 부와 번영을 누렸던 겐트는 중세뿐만 아니라 19세기 후반의 건축물과 미학이 삶에자연스레 녹아 있는 고풍스러운 도시이다. 벨기에의 주요 대학도시이기도 해서 날씨가 좋으면 젊은이들이운하 주변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벨기에 첫 불교학연구소 개소
탄탄한 국제네트워크 통한
불교학 교류·공동 연구 뛰어나

겐트대학교(Ghent University)는 벨기에 플랜더스(Flanders, 네덜란드어에서 파생된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명문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생리학자 콜네이 헤이만스(Corneille Heymans, 1892~1968) 등 다수의 걸출한 학자를 배출한 바 있다. 각종 세계대학 순위평가기관의 지난 수년간 평가에 의하여 세계 100~150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4만 4,000여 명의 학생과 1만 5,000여 명의 교직원이 겐트대학교에 소속되어 있다. 11개의 학부에서 총 230개의 학위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겐트 도시 내에 여러 개의 캠퍼스가 나눠져 있고, 그 외 벨기에 곳곳에 세 개의 캠퍼스가 있으며, 인천 송도에도 국제캠퍼스가 있어서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대학이다.

겐트대학교 전경.

겐트대학교는 1817년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언어문화학부(Department of Languages and Cultures) 학부장 안 헤어만(Ann Heirman)에 의하면 그 전신은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세기 동안 주변국과 종교 전쟁을 겪으며 대학의 입지와 성격이 수차례 변했다고 하는데, 공식 기록상으로는 1817년 네덜란드의 오라녜공 빌렘 1세(William I, Prince of Orange, 1533~1584)에 의해 라틴어를 사용하는 국립대학으로 설립됐다고 전해진다. 1830년 벨기에가 독립한 이후 프랑스어가 새로운 학술 언어로 지정되었으나 1930년에 벨기에 최초로 네덜란드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대학이 되었다.

주로 대학원 특별 코스나 학회 등을 여는 겐트대학교 Het Pand 건물 전경.

불교학센터

언어 문화학부 학부장이자 불교학 센터장인 안 헤어만에 따르면 겐트대학교 불교학센터(Centre for Buddhist Studies)의 초대 센터장 초빙은 1898년에 이루어졌다. 이 불교학센터는 벨기에의 첫 불교학연구소이다. 2007년에 겐트대학교 언어문화학부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벨기에를 대표하는 저명한 인도불교학자 뿌생(Louis de La Vall e-Poussin, 1869~1938)의 학문적 자세와 연구를 기조로 연구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아비담마 불교·불교 계율·불교언어학·중국불교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학부생 수업이 많은 겐트대학교 주건물.

불교학센터에는 현재 총 여섯 명의 전임교수가 있는데 △돈황(敦煌)을 중심으로 한 중국불교 전문가 △자이니즘(Jainism, 자이나교)과 불교의 상관관계 전문가 △불교 철학과 역사기록학 전문가 △불교 계율 전문가와 함께 일본 현대불교를 문화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두 명의 교수가 그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다섯 명의 박사후연구원(Postdoc), 열다섯 명의 박사과정생이 불교학센터에 소속되어 있다. 중국불교 연구가 활발한 곳이다 보니 박사과정생의 절반 정도는 중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학생들이었다. 대부분 중국 정부 장학금을 받으며 연구하고 있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벨기에·네덜란드·러시아·브라질·태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학비를 충당하거나 플랜더스 연구 재단에서 학비 지원을 받고 있었다.

학부생 수업이 많은 겐트대학교 주건물의 내부.
불교학센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현재 벨기에 플랜더스 지역에서는 불교학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겐트대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마침 시험 기간이었다. 시험 방식을 알아보니 90여명의 학부생이 사흘에 거쳐 불교학과 관련해 구술시험을 치른다고 알려줬다. 또한 플랜더스 지역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불교 교과목을 추가하려고 구상 중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안 헤어만 교수는 “네덜란드어와 불교 용어가 1:1로 정확히 번역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자문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겐트대학교 불교학센터의 가장 큰 강점은 탄탄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한 활발한 학문적 교류와 공동연구이다. 나열해보면 하버드 대학교,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교(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로버트 샤프(Robert Sharf)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UC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동양 언어-문명연구소(Institut National des Langues et Civilisations Orientales), 대만의 중화불학연구소(中華佛學硏究所), 티앤주국제불교문화연구네트워크(天柱國際佛敎文化硏究網絡), 함부르크 대학교(Hamburg University) 등과 주기적인 학술 교류 및 공동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중국 중세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등 공동 연구 사업을 통하여 불교학 연구에 최신식 방법론을 적용하고, 그 결과물을 세계 학자들과 활발히 공유하고 있다.

세미나실로 향하는 복도.

겐트대학교 재학생들도 불교학센터의 넓은 국제 네트워크와 활발한 공동연구를 가장 큰 장점으로 평가했다. 국제 네트워크와 자매결연 대학과의 연계프로그램 덕분에 매년 두 차례 정도는 옥스퍼드 대학 등 해외 대학에 머무르며, 저명한 불교학자의 지도를 받거나 불교 국가를 직접 방문해 학회나 워크숍에 참여하는 기회가 생긴다고 한다. 넓은 시야로 불교를 연구하고 활발한 네트워크를 통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이런 연계프로그램은 학위과정을 마친 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세미나 참관

유럽의 영국·프랑스·독일 등 29개국은 1999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모여 2010년까지 단일한 고등교육제도를 설립해 유럽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높이자고 선언한다.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 출범 이후 유럽권역 내 교육계 유동성을 도모하고, 대학교육 체제를 통일하려는 노력 아래 통합학점제도인 ‘ECTS(European Credit Transfer System)’를 도입했으나 이탈리아의 일부 대학을 제외하면 ECTS는 학부나 석사과정생에게 필요하고, 박사 과정생은 학점 없이 학위논문을 마치면 졸업한다. 이렇게 서유럽의 고등교육체제는 북미식 대학체제를 모델로 한 한국과는 달리 박사과정생의 경우 매학기 정해진 시간에 강의를 듣는 경우가 드물다.

세미나실. 원래 13세기에 지어진 도미니코회 수도원이었던 것을 겐트대학교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오래된 건물이라 조명등과자연광을 이용하고 현대인들에게 더 익숙한 백열등은 쓰지 않는다.

인문학의 경우 과거에는 대부분 도제식(徒弟式)이었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지도교수와의 1:1 지도를 통한 전형적 도제식 박사과정에서 벗어나 주기적 콜로키움이나 세미나 등을 통해 연구자간 교류를 도모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Input]을 얻어 연구 역량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 추세이다. 겐트대학교 불교학센터에서 만난 박사과정생들의 경우, 역시 강의 수강은 졸업을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2018년부터 매년 2회 불교학센터에서 주관하는 집중세미나에는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2018년 집중세미나에서 다루어진 주제는 ‘중세 중국 실크 문화 속 불교(Buddhism in Medieval Chinese Silk Culture)’와 ‘중세 중국의 글과 사전학(Chinese Writing and Lexicography in Medieval China)’이었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한 기간 중 상반기 세미나 ‘중국 불교의 여성과 여승(Women and Nuns in Chinese Buddhism)’이 열렸으며, 하반기에 ‘디지털 인문학적 시각에서 중국 불교 사료(Chinese Buddhist Historical Records in the Context of Digital Humanities)’가 주제로 다루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세미나에서 토론하는 모습.

불교학센터의 집중세미나 기간에 센터를 방문하여 세미나를 참관할 수 있었다. ‘중국 현대불교의 여성과 여승’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네 명의 교수와 박사과정생, 박사후연구원 등 20여 명이 다양한 세부 논제를 가지고 활발하게 토론하는 자리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주일 간 지속되었는데, 불교한문 강독을 하거나 특정 주제에 대한 교수의 강의가 끝난 후 모두 함께 토론을 하기도 했다. 또 학생의 발표 후 코멘트 및 질의응답이 이어지기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현대불교’라는 주제가 중국의 정치적 입장과 맞닿아 있는 주제이다 보니 중국의 종교 규제와 관련 정책에 대한 논의, 승려교육기관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어 중국불교 부흥, 비구니 팔경계(八敬戒), 대만불교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 등 다양한 세부 논제가 다루어졌다. 특히 중국이 표면적으로는 종교계에 호의적이지 않지만 제도적으로 불교 부흥에 호응하고 있음이 잘 드러나는 최신 연구결과 발표가 몇 가지 있어서 흥미로웠다. 평소 접하기 힘든 중국 현대불교에 대한 최신 연구 경향을 살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2세미나실 가는 길에 있는 겐트대학교 소장 장서들. 19세기경의 책이며, 더 오래된 책들은 다른 건물 지하에 엄격한 관리 하에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불교학을 문헌학·언어학·역사학·인류학·문학적·정치학·문화학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모여서 불교학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적인 어려움을 공유하고 서로 조언을 해주는 시간도 마련돼 있었다. 다양한 학제적 접근법을 함께 토론하고 불교학의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문 경전강독 훈련을 철저하게 함으로써 탄탄한 기본을 갖추되, 간학문적(間學文的) 연구와 최신식 방법론을 도입하는 현대적 불교연구의 조류에 뒤쳐지지 않도록 연구자들에게 꾸준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겐트대학교 불교학센터의 강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는 소속 교수들의 헌신과 타 연구기관과의 교류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 그리고 기초학문에 대한 정부의 꾸준한 지원의 결과일 것이다. 이번 세미나 참석은 독일에서 학업 중인 필자에게 독일의 학문적 전통과 플랜더스의 전통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한국의 불교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혜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불교를 공부하고,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수학중이다. 불교와 전쟁, 불교와 국가의 관계, 불교개념의 제도화 과정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 외 세계의 비전통적 고등교육기관에도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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