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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불교대학3.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옥스퍼드대학교 울프슨 컬리지.

동남아 방대한 불교문헌 기반
팔리 경전 연구 독보적 위치 올라

현재 옥스퍼드대학교의 불교학연구중심은 ‘The Oxford Centre for Buddhist Studies(OCBS, 옥스퍼드 대학 불교학센터)’이다. 이 센터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와 불교를 가르쳤던 리차드 곰브리치(Richard Gombrich) 교수가 2004년에 설립하였다. OCBS는 옥스퍼드대학이 인정한 독립센터로 매년 다양한 세미나와 강연을 주최하고 있다. 다수의 불교 전문 서적도 출간하고 있다. OCBS는 불교학 전공이 소속돼 있는 동양학부(The Faculty of Oriental Studies)와 가장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불교학전공은 동양학부에 소속돼 있는데, 강의는 주로 동양학연구소(The Oriental Institute)에서 이루어진다. 동양학부 내에는 세부전공으로 인도학   ·   중국학   ·   일본학  ·  한국학 등이 개설돼 있다. 필자가 유학한 시기(1993~1998)에는 중국학이 그 세력을 증가시키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전까지는 인도학이 가장 번성했기 때문에 별도의 ‘인도학도서관’이 존재하고 있다. 옥스퍼드대학의 도서관은 오래된 문헌에서부터 최신 연구 출판물 및 디지털 자료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불교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영국이 과거 인도와 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 지역을 지배할 때 행했던 불교에 관한 연구와 그 결과물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옥스퍼드대학교는 대략 40여 개의 컬리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울프슨 컬리지는 다른 컬리지와 달리 대학원생만 수용한다.

불교 서적은 세 곳의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중앙도서관에 소속돼 있는 인도학도서관에 주요한 모든 불교 서적이 비치되어 있다.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서적은 거의 모두 관외 대출이 되지 않는다. 동양학연구소 소속의 도서관에는 기본적인 불교 자료가 비치되어 있는데, 이곳의 서적은 관외 대출이 가능하다. 필자가 속해 있었던 울프슨 칼리지(Wolfson College)도 상당한 양의 불교 문헌을 소장하고 있다. 이 대학의 도서관에서는 도서 대출이 가능하고, 옥스퍼드대학 외에 있는 도서 및 논문의 주문도 가능하다.

불교학 연구의 출발지는 유럽

불교를 학문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곳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이다. 일본 불교학의 시초도 일군(一群)의 학자들이 영국 등 유럽으로 유학하면서부터다. 보다 늦은 한국의 불교학은 일본의 불교학을 수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나 일본과 달리 옥스퍼드대학에는 ‘불교학과’라는 독립된 학과는 없다. 동양학부 중에 ‘인도학’에서 불교공부를 할 수 있다.

옥스퍼드대학 울프슨 컬리지는 1965년 설립돼 2015년 50주년을 맞았다. 교내에 기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옥스퍼드대학에서의 불교학의 역사를 알려면, 인도학의 역사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기록상 인도에 대한 관심은 1579년 성공회의 선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국이 인도를 점령함에 따라 인도문화 전반에 관한 관심과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불교를 학문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즉 18세기 후반이다. 영국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아시아의 불교국가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처음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인도  ·  스리랑카  ·  네팔 등지에서 불교 문헌을 입수해 불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영국의 불교학은 팔리어 원전과 산스크리트 원전에 대한 문헌학적 접근과 연구에서 출발한다. 1881년 리즈 데이비스가 설립한 팔리어성전협회(Pali Text Society)는 불교학 연구의 기준을 세웠으며, 이곳에서는 현재까지도 팔리어 문헌의 영문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팔리 삼장(三藏)은 거의 영역(英譯)을 마쳤고, 지금은 주석서를 한 권씩 번역 · 출간하고 있다. 상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팔리 불교연구의 중심이라 말할 수 있다.

울프슨 컬리지의 도서관은 다수의 불교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옥스퍼드대학에서는 불교학 연구 초기에 산스크리트어를 전공하는 교수를 초빙해 인도 문헌을 연구하고 후진을 양성하도록 했다. 이 시기에 윌리엄 존스(William Jones)에 의해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이 처음으로 간행된다. 이어 종교학의 시조로 여겨지는 막스 뮐러(Max Muller)에 의해 불교 문헌을 포함한 〈동방성서(東方聖書, The Sacred Books of the East, 1879)〉가 번역되기도 한다. 이후 영국의 인도 지배가 끝날 때까지 인도학은 수많은 서적을 갖춘 인도연구소(The Indian Institute)가 독립적으로 운영됐을 정도로 융성했다. 하지만 이후 인도학은 동양학부에 편입되어 이전만큼의 지위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보니 인도학 흐름에서 불교학은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연구되지 못했다. 불교학 연구가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는 곰브리치(Gombrich) 교수의 역할이 컸다. 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불교문헌, 특히 팔리어 경전을 강의해 불교학이 명실상부하게 자리 잡도록 기여했다. 필자가 유학한 1990년대 중반, 동양학부 내 인도학전공은 두 명의 교수와 한 명의 전임강사로 구성돼 있었다. 전임강사는 산스크리트어를 주로 가르쳤고, 두 교수 중 한 명은 힌두교의 탄트리즘과 그와 관련된 밀교를 가르쳤다. 나머지 한 명의 교수는 팔리어와 초기불교를 가르치고 있었다.

유학 당시 10여 명의 학생이 불교학을 전공했다. 필자를 포함해 세 명의 한국인, 세 명의 영국인, 두 명의 대만 비구니 스님, 한 명의 스리랑카인, 한 명의 일본인 등이었다. 영국 본토 학생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 학생이 유학하고 있다는 사실은 영국불교학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또 이곳은 다수의 평범한 학자보다 특출한 소수의 학자에 의한 연구성과가 훨씬 돋보인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래서일까? 옥스퍼드대학이 배출한 불교학자는 영국 및 다른 나라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티브 콜린즈(Steve Collins)가 저술한 〈무아적 인간(Selfless Person)〉은 불교학계에서 고전으로 불리고 있다.

문헌학 · 언어학은 불교연구 토대

입학식과 졸업식은 셸도니언(Sheldonian) 극장에서
라틴어로 진행한다.

옥스퍼드대학에서 발간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유명세에서 알 수 있듯이 옥스퍼드대학의 인문학은 문헌학과 함께 언어학에 강한 전통을 보이고 있다. 불교학 연구도 이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물론 순수철학적인 논문도 있지만, 옥스퍼드대학에서 불교학 연구는 언어와 문헌에 관한 충분한 이해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대학의 거의 모든 교수들은 고전어를 포함해 대여섯 개의 외국어를 알고 있다. 필자의 지도교수였던 곰브리치도 10개 남짓의 외국어를 구사했다.

학생들은 경전에 근거해 치밀하게, 그리고 깊게 주제를 논의하도록 교수들로부터 훈련받는다. 그러므로 경전을 정확하게 해독할 수 있는 원전 언어 학습이 무엇보다 중요시된다. 또한 특정 문헌이나 주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세부적으로 깊게 논의하도록 배운다. 이런 과정에서 주제에 대한 자기 나름의 통찰력이나 이해력을 보여주도록 한다.

서양의 학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불교의 어떤 주제를 자기 나름대로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했기에 가능한 모습으로 여겨진다. 자기 목소리가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를 가진 학자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따라서 토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발전시키고 수정하는 과정이 쉽게 이뤄진다. 반면 동양의 학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뚜렷하게 표현하지 않고, 논쟁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상징 중 하나인 빨간색 이층버스가 옥스퍼드대학교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옥스퍼드대학의 학풍은 토론을 매우 중시하는 특징을 보인다. 토론을 할 때는 논리성과 개방성을 강조한다. 대학자가 어떠한 주장을 했을 때, 그의 주장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는 일은 없다. 물론 그의 학설은 존중하지만, 언제든 새로운 학설을 주장해 반박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때문에 특정 주제를 두고 벌어지는 학자 간의 논쟁은 흔하게 볼 수 있다.

필자의 박사학위 취득 과정

1992년 SK그룹에서 지원하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된 후 본격적인 유학준비를 시작했다. 박사과정 5년간 소요되는 일체의 경비(등록금과 생활비)를 이곳에서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어서 영국문화원을 방문해 팔리어와 불교를 배울 수 있는 지도교수를 찾아보았다. 옥스퍼드대학의 곰브리치 교수를 발견할 수 있었고, 편지를 보냈다.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으니, 그때 면접을 보자는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울프슨 컬리지 옆에 있는 강에서 보트를 즐기는 학생들.

그런데 정작 면접에서 필자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 필자의 은사이신 호진 스님(당시 동국대 교수)께서 곰브리치 교수와 대담을 나누었기에 그냥 옆에 앉아 있기만 했다. 두 분은 주로 불어로 대화했고, 간혹 영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필자의 영어실력은 책 읽기만 가능했고, 말하고 듣기가 안 되었는데도 한 가지만은 굉장히 뚜렷하게 들렸다. 곰브리치 교수가 팔리성전협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는데, 팔리어와 영어에 능통한 번역자가 없어 일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내가 팔리어를 배워서 그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걸 느꼈다. 이 다짐은 2002년 〈the Buddha’s Last Days〉를 팔리성전협회에서 출간하는 걸로 결실을 맺었다.

옥스퍼드대학은 1년이 3학기로 구성돼 있다. 필자는 입학한 후 두 학기 동안은 산스크리트어를 집중적으로 학습했다. 산스크리트 문법을 배우는 것과 동시에 산스크리트 고전을 강독하도록 훈련받았다. 문법은 독해를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강의가 진행되면서 문법보다는 유명한 산스크리트 전적(典籍)을 읽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두 학기 동안 배운 분량은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었다. 두 번째 학기를 마치자마자 시험을 보았다. 시험은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총 여섯 시간에 걸쳐 치렀다. 오전에는 산스크리트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시험이었고, 오후에는 반대로 영문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는 시험이었다. 원래 이 시험은 학부생들이 치러야하는 시험 중 하나이다.

산스크리트어 시험을 통과한 후에도 팔리어 학습에 집중했다. 수업은 산스크리트어 학습 때와 마찬가지로 팔리어 문법과 팔리어 경전강독으로 이뤄졌다. 팔리어 학습은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쉽게 진행되었다. 학위논문을 제출하는 날까지 각종 팔리어 경전과 주석서를 지도교수의 지도하에 읽었다. 수업시간에는 필자를 포함한 서너 명의 학생이 둘러앉아 차례대로 경전을 읽고 해석했다. 우리가 읽고 해석하면 지도교수가 틀린 부분을 바로 잡아 주곤 했다.

지도교수인 곰브리치(Gombrich)와 필자 부부가 밸리올 컬리지(Balliol college) 식당에서.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열반경(涅槃經)〉’과 그 주석서의 ‘불타관(佛陀觀)’ 및 ‘열반관(涅槃觀)’으로 정했다. 유학 이전 한국에서 불교 공부를 할 때부터 왠지 모르게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을 담고 있는 경전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 내용을 담고 있는 한역(漢譯) 〈유행경(遊行經)〉을 틈틈이 읽었다. 부처님의 입멸이라는 사건을 통해 부처님의 본질을 규명해 보고 싶었다. 결국 지도교수와 상의해 〈열반경〉 주석서를 번역하기로 했다. 〈열반경〉은 중요한 경전이기에 몇 차례 번역되었지만, 붓다고사(Buddhaghosa)가 쓴 〈열반경〉 주석서는 한 번도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기에 학술적 가치가 충분했다.

박사과정을 밟을 때는 학생(student)이라기보다 연구원(researcher)에 가깝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은 없다. 그러나 지도교수의 요구가 있으면 그 요구에 응해야 한다. 입학한 지 대략 1년이 지나면 정식 박사과정에 진급하기 위해 학위논문 주제를 정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필자의 경우,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진급 시험을 치렀다. 박사과정 진급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지금까지 공부한 연구물을 심사 받아야 한다.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연구를 하고 있음을 확인받는 과정이다.

최종적으로 논문이 완성되어 대학에 제출하면, 두 명의 심사위원이 심사한다. 심사에는 자신의 지도교수는 참여하지 못한다. 심사는 매우 객관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친분 등 여타 외적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온 팔리어 문법 전문가와 초기불교의 여러 주제, 특히 부처님의 사후 문제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한 교수가 심사를 맡았다. 그리고 필자가 소속한 학과의 전임강사가 참관했다. 심사 앞부분에 두 심사관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기에 끝날 때까지 비교적 편안하게 질의응답을 할 수 있었다. 심사 말미에는 논문의 출판도 제안 받아 기쁨이 더했다.

알바 금지, 장학제도 빈약해

옥스퍼드대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전거를 이용하여 강의실과 도서관 등으로 이동한다.

20여 년 전의 유학생활을 회고해 보니 부처님의 은혜가 느껴진다. 지금 다시 박사학위 논문을 읽어보면 ‘어떻게 저런 논문을 쓸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보이지 않는, 부처님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무사히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일본 동경대에 1년 간 머물며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것도, 팔리어성전협회에서 책을 출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부처님의 가피다.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장소와 물건은 도서관과 중고자전거다. 도서관을 떠올린 건 5년간 옥스퍼드 생활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사전을 뒤적이며 번역과 참고문헌을 찾느라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고, 자전거는 영국의 교통비와 생활비가 워낙 비싸서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낡은 자전거로 중국 상점을 오갔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의 아르바이트를 금지하고 있다. 장학제도도 거의 없어서 반드시 유학비를 지원해주는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 1998년 국내에 IMF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다행히도 ‘Max Muller Memorial Foundation’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기도 했었다.

옥스퍼드대학이 있는 옥스퍼드시의 전경.

교수 신분으로 대학에서 불교를 강의하는 교수의 수는 영국의 전 대학을 통틀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역할은 전 세계 불교학계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다만, 안타깝게도 영국의 대학에서 불교전공 교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영국 불교학계는 소수의 뛰어난 학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최근 옥스퍼드대학 의과대학 정신의학과(Department of Psychiatry)에서 ‘옥스퍼드 알아차림 센터(Oxford Mindfulness Center)’를 설립했고, 관련 석사학위 과정에서 우울증 환자들을 위해 불교명상을 이용한 프로그램(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 MBCT)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로 불교문화대학장과 불교문화대학원장을 겸하고 있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글 · 안양규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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