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둘레길을 가다

산능선 전망대 가는 길. 5월 중순 이후에는 초록으로 물든다.

임진강은 남북 오가고
겸재의 ‘웅연계람’은 그대로

일명 ‘통일이음길’로 불리는 평화누리길 12코스는 경기도 연천 군남홍수조절댐부터 신탄리역을 지나 역고드름 터널에 이르는 28km 구간이다. 서쪽으로 개성직할시 장풍군을 두고 있으니, 경기도 최북단 트레킹 코스인 셈이다. 연천군은 평화누리길 12코스 중에 두루미테마파크에서 돌무지무덤까지의 구간을 3개 코스로 세분해, ‘연강나룻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겸재 정선의 ‘웅연계람’. 1742년 비단에 수묵 담채. 35.5×96.6cm

‘연강(漣江)’은 ‘연천 지역에 흐르는 임진강’이란 뜻으로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작품집 중 하나인 〈연강임술첩〉에도 나오는 명칭이다. 이 책은 1742년 임술년에 경기도관찰사 홍경보가 연천현감 신유한과 함께 양천군수(현 서울 양천구)로 있던 겸재 정선을 초대해 임진강에서 뱃놀이를 한 후 그린 작품집으로,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을 수록하고 있다.

개안마루에서 본 임진강.

이국적 여울길  ·  임진강 절경 개안마루

연강나룻길은 평화누리길에 비해 임진강에 조금 더 가깝다. 그 중에서도 두루미테마파크-산능선 전망대 - 옥녀봉 - 현무암지대 - 개안마루 - 두루미테마파크로 이어지는 A코스는 임진강을 왼쪽에 끼고 걷는 구간이다. 낮은 구릉과 들판이 반복되는 8.7km를 종주하면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출발지인 두루미테마파크는 2013년 홍수조절용으로 건설한 군남댐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겨울철에 북녘에서 두루미가 임진강을 따라 내려오는데, 이 모습을 남과 북을 이어주는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 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을 왼편에 두고,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금세 A코스 출발점이다.

연강나룻길 출발지인 두루미테마파크.

산능선 전망대로 향하는 길가에는 금계국이 반긴다고 하는데, 시기가 이른 탓에 앙상한 나무들만 늘어서 있다. 6월은 돼야 활짝 핀 노란 국화가 반길 듯하다. 군남댐을 옆에 두고 얼마 걷지 않아 산능선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는 서쪽을 향해 세워져 있는데, 북쪽 여울길 방향 구릉에는 아직 초록빛을 찾아보기 어렵다. 북위 37도선인 연천에는 봄이 늦는 듯하다.

전망대에서 1km 남짓 떨어진 여울길을 향할 때는 왼편 임진강 방향으로도 갈 수 있고, 오른쪽 산능선을 따라 돌아갈 수도 있다. 왼편이 조금 더 가까우니, 돌아올 때 다른 방향을 선택해도 좋다. ‘여울’은 ‘강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말한다. 이곳 여울길 역시 임진강이 굽어지며 생긴 곳이다. 그런데 여울길 표지판에서 전방을 내려다보면 농사를 짓는 밭이 펼쳐질 뿐이다. 너른 밭 사이로 얕은 개울물이 임진강을 향해 흐른다.

여울길에서 개안마루로 가는 길목.

북녘 철책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

이국적인 여울길을 지나면 옥녀봉과 개안마루의 갈림길이 나온다. 그런데 하필이면 인근 군부대에서 사격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결국 옥녀봉 그리팅맨(Greetingman, 인사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유보한 채 개안마루로 향했다. 사격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들으며 도착한 개안마루는 굽이쳐 흐르는 임진강 물줄기가 일품이다. 이곳은 군부대 전망대를 제외하고는 연천에서 북녘 땅이 가장 잘 보이는 곳 중 하나다.

옥녀봉 그리팅맨 우측 아래로 군부대 사격장이 보인다.

개안마루에서 보는 임진강은 예부터 절경으로 손꼽혔다. 겸재 정선이 벗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웅연계람(熊淵繫纜)’을 그린 장소이기도 하다. 300여 년이 흐른 만큼 그림과는 차이가 있지만, 전망 데크에 세워진 복제화와 비교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개안마루를 지나면 곧바로 현무암지대다. 화산이 분출한 흔적이라고는 하지만 검은 색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보이는 것 말고는 이곳이 현무암지대란 걸 느끼기 어렵다.

사격훈련은 오후 5시가 돼서야 종료됐다. 한참을 기다려 로하스파크에서 출발해 옥녀봉에 올랐다. 항공기에게 북위 37도를 경고하는 입간판을 지나 포장된 군사도로를 조금 더 오르면 살며시 머리와 허리를 숙인 그리팅맨을 만날 수 있다. 2016년 유영호 작가가 설치한 10m 높이의 이 조형물은 북녘과 약 4km 떨어진 옥녀봉 정상에 세워져 있다. 북서쪽을 바라보고 인사하는 모습인데, 연천지역 철책이 북서방향으로 비스듬히 늘어서 있는 걸 감안한 조치라 짐작된다.

사실 옥녀봉은 삼국시대 때부터 한국전쟁까지 치열한 전투가 끊이지 않았던 전략적 요충지다. 지금도 군부대 시설물이 주위에 흩어져 있다. 긴장된 땅 위의 풍경과는 달리, 하늘 위 흰구름은 북서쪽 개성직할시 하늘과 남쪽 연천 하늘 위를 산들바람을 타고 오가고 있었다.

해질 무렵 옥녀봉 정상 그리팅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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