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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복사터 추정지서 쌍탑 유구 확인

조사지역 근경. <사진제공=문화재청>

금동불입상․금동판불 등 700여 점 출토

경주 낭산(사적 제 163호) 소재 황복사(皇福寺)터 추정지에서 동ㆍ서 쌍탑지, 금당지, 회랑지 등 황복사터 건물지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5월 15일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이 3차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경주 낭산 일원에서 황복사의 금당지, 동․서 목탑지ㆍ중문지․회랑지 등으로 추정되는 유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이 터에서 통일신라 이후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과 함께 조성된 대석단(大石壇) 기단과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회랑지도 확인했다. 아울러 금동입불상ㆍ금동판불ㆍ비석 조각ㆍ치미ㆍ녹유전 등 700여 점의 유물도 발굴했다.

3차 발굴조사에서는 1금당-2탑-중문으로 추정되는 사찰 건물지가 남북 방향으로 난 일직선에 배치된 형태가 확인됐다. 금당지는 정면 7칸, 옆면 4칸이며, 동서 28m, 남북 16m에 이른다. 탑지는 동․서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6×6m의 규모로 2기가 확인됐으며, 목탑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목탑지의 규모가 작고 주변에 비각이 있으며, 중문지와 가까이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후에 축조된 종묘와 관련된 제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문지는 정면 3칸, 옆면 2칸으로, 초축 연대는 중문지 적심과 추정 목탑지에서 출토된 짧은다리굽다리접시 등 토기와 연꽃무늬 수막새 형식으로 볼 때, 6세기 후반에 건립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신라 제32대 효소왕(692~702) 때는 황복사지 삼층석탑이 조영되면서 왕실사원으로서 종묘의 기능을 담당한 동서 방향의 대석단 기단 건물이 만들어졌다. 1호 대석단 기단은 현재 남아있는 길이가 남북으로 30m, 2호 대석단은 남북으로 길이 57.5m다.

가장자리에는 단랑(單廊, 들보 사이가 한 칸으로 된)의 회랑을 돌렸다. 1호 대석단의 상단에는 삼층석탑이, 2호 대석단의 대회랑 내부에는 비각만이 존재하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된 것으로 보아 신라 왕실의 종묘 기능을 담당한 특수 시설로 판단하고 있다.

2017년 2차 발굴조사 당시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에서는 동쪽에서 묘(卯, 토끼),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가 조각된 4구가 확인됐었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북쪽에서 축(丑, 소), 자(子, 쥐), 해(亥, 돼지), 술(戌, 개) 4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황복사는 654년(진덕여왕 8년)에 의상(義湘)대사(625~702)가 29세에 출가한 사찰이다. 194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확인된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 명문을 통해 종묘의 기능을 한 왕실사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목탑지. <사진제공=문화재청>
서목탑지. <사진제공=문화재청>
금동입불상. <사진제공=문화재청>
금동판불. <사진제공=문화재청>
십이지신상 중 토끼상. <사진제공=문화재청>
조사지역 유구분포도. <사진제공=문화재청>

이강식 기자  lks97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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