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 동아일보는 ‘광복절 62주년 특별기획' 기사로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의 결과를 두 면에 걸쳐 대서특필하였다. 첫 면의 제목은 “‘직장 선택기준은 안정성' 한국 57%로 1위(34개국 중)”이었고, 다음 면의 제목은 “한국 ‘행복지수' 28위(37개국 중)… 베트남보다 낮아”였다.

첫 면의 내용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한국인은 중요한 국가발전목표로 ‘경제안정'을 선택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의 75%가 ‘경제 안정', ‘인간적인 사회로 발전', ‘돈보다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사회로의 발전', ‘범죄소탕' 중 ‘경제안정'을 꼽았는데, 이는 34개 국가 중 ‘3위'였다. 반면에 두 번째 면의 주요내용은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65.93점으로 세계평균(69점)에도 못 미쳤다. 순위는 37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28위'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위는 지난 10년 전보다도 오히려 낮은 순위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물론 동아일보는 이에 대한 논평기사를 별도로 싣지 않았다. 그러나 두 면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결론은 금방 도출된다. 한국인은 ‘경제'를 매우 중시하고 또 그것을 추구하고 있는데 별로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결론은 한마디로 “행복은 ‘돈지갑'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05년 2월 28일, 미국의 대표적 주간지로 알려진 ‘TIME'지도 이와 유사한 기사를 실은 바 있다. ‘행복의 과학'이란 제하의 커버스토리(표지 이야기)는 “ ‘왜 낙관적인 사람들이 더 장수하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불교와 행복에 관하여'”등 세 가지 소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소주제의 결론은 낙관적인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살기 때문에 장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행복하게 사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두 번째 소주제에서 자세하게 논의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동아일보의 기획기사처럼 세계 각국의 행복지수(The GDP of Happiness)를 비교해 보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한국의 행복지수는 멕시코, 콜롬비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그리고 심지어는 나이지리아보다도 낮게 나타났다. 게다가 이들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일본인, 프랑스인보다도 높게 나타났고 미국, 독일, 스위스 등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물론 결론은 세 번째 소주제에서 내려진다. “행복은 ‘돈지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최근의 몇 가지 사회지표 즉 세계 최고 수준에 육박하는 한국인의 자살률뿐만 아니라 노인자살률 1위, 스트레스성 암발생률 1위, 이혼율 1위, 1인당 알코올소비량 1위 등과 같은 사회지표는, 오늘날 한국인의 내적·정신적 고통지표에 다름 아니다. ‘10년 전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고 있는 오늘날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10년 전보다 그리고 나이지리아보다' 낮다는 사실은, 오늘날 한국인의 ‘마음의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비록 우리가 고통의 존재조건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탐·진·치(삼독)로부터 자유롭다면 바로 그만큼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사람의 행복은 그가 처한 물질적·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자신의 정신적·내적 상태로부터 유래한다. 행복의 샘은 그렇게 가까운 곳, 바로 자신에게 내재해 있다. 그리고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행복의 샘을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류승무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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