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구름’ 이야기

하늘나라의 임금님인 옥황상제의 막내 공주는 늘 인간들이 사는 땅나라가 그리웠다. 구름 아래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이며 강이며, 바다가 못 견디게 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하늘나라 사람들은 옥황상제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땅나라로 내려갈 수 없었다. 갈 수 없는 곳은 더 가고 싶어지는 법, 그 중 막내공주는 공주들 중에서 가장 어렸지만 가장 모험심이 많았다.

공주는 기어이 옥황상제 몰래 땅나라로 내려오고 말았다.

그곳에서 공주는 소나무왕을 만났다.

소나무왕은 햇볕이 내리쬘 때는 햇볕을 가려주었고, 비가 올 때는 비를 가려주었다. 공주는 낮에는 맛있는 열매를 따 먹고, 밤에는 소나무왕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그러다보니 서로 사랑이 깊어갔다. 결국 공주와 소나무왕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공주와 소나무왕의 아들은 ‘하얀 구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하얀 구름은 공주와 소나무왕의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막내 공주가 땅나라로 내려가 혼인까지 한 것을 옥황상제가 알게 됐고, 공주를 벌하기 위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공주가 하늘나라로 올라올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공주는 어쩔 수 없이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공주가 하늘나라로 올라가며 비는 멈췄지만 이미 땅나라는 물 천지였다. 꽃도, 나무도, 짐승도 둥둥 떠다녔다. 하얀 구름은 모든 동물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하얀 구름은 커다란 잎사귀를 타고 오는 개미들을 만났다.

“왕자님, 저희들 좀 살려주세요. 이 잎사귀가 크다고는 하지만 언제 뒤집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제발 우리도 대왕님의 나무에 탈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얀 구름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얼른 개미를 소나무왕의 가지에 태웠다.

“고맙습니다. 왕자님.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 때 또 어디선가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모기떼였다. 모기들은 울면서 사정을 하였다.

“온 세상이 전부 물뿐이라 우리가 머물 곳이 없습니다.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저 모기떼는 어떻게 할까?”

하얀 구름은 개미 가족에게 물었다.

“모기는 항상 남의 피만 빨아먹고 사는 나쁜 것들이지만, 그 처지가 딱하니 태워주기로 하지요. 그렇지만 모기가 왕자님께 해가 되면, 우리가 즉시 내쫓겠습니다.”

하얀 구름은 곧이어 조그만 토막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하얀 구름은 너무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라 두 말 하지 않고 태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인 소나무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의 탈을 썼다고 해서 개미나 모기보다 더 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개미 가족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왕자님, 이 세상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동물이 바로 사람입니다. 참으로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나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얀 구름은 언젠가 엄마가 한 말을 기억했다.‘누구든 믿지 않고 속지 않는 것보다, 믿고 속는 것이 훨씬 낫단다.’ 하얀 구름은 결국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소년을 태웠다.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드디어 하얀 구름 일행은 높은 산에 닿았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개미 가족과 모기까지 모두 떠나자 아버지가 말했다.

“때가 되면 헤어지고, 때가 되면 만나는 것이 삼라만상의 법칙, 그것으로 하여 울거나 슬퍼하지 마라. 좋은 일은 나쁜 일의 씨앗이 되고, 나쁜 일은 좋은 일의 거름이 될 수도 있다.”

하얀 구름은 소년과 함께 산 속을 헤매다가 내려와 조그만 오두막집에 찾아들게 되었다. 그 집은 늙은 할머니 혼자 사는 집이었다. 그런데 눈치 빠른 소년이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할머니, 제가 저 아이를 구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게 한 마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저 아이는 사람의 자식이 아닌 듯 하니 여러 가지 시험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할머니는 재빨리 하얀 구름을 훑어보았다.

“사람의 자식이 아닌 사람을 우리 집에 들일 수는 없지. 일단 저 아이를 밖에서 재우도록 하자.”

하얀 구름은 아무 말도 못하고 바깥에서 자게 되었다. 오두막집은 산 끝자락에 있어서 집 바깥은 무서운 짐승들이 많았다. 하얀 구름을 잡아먹기 위해 늑대가 제일 먼저 덤벼들었다.

“얼마 전에 하찮은 개미나 모기들은 살려주면서 우리는 못 본 체 했지. 우린 여기까지 떠내려 오면서 많은 가족을 잃었다. 이제 그 원수를 갚아야겠다.”

바로 그 때였다.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모기떼들이 하얀 구름을 동그랗게 감싸고 돌았다. 얼마 전에 살려준 모기 가족들이었다. 그 사이 모기 가족은 몇 배나 숫자가 불어 있었다.

늑대들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대장 모기가 늑대들에게 말했다.

“누구라도 왕자님을 건드리면 이 자리에서 바로 몸속에 있는 모든 피를 우리가 빨아먹고 말겠다. 자, 몸속에 있는 피를 모두 빨리고도 살 수 있는 늑대는 덤벼라!”

늑대들은 배가 고팠지만 당장 모기떼에게 피를 빨려 비참하게 죽고 싶은 늑대는 한 마리도 없었다. 늑대들은 이를 갈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하얀 구름이 집안으로 들어오자 소년은 화가 치밀었다.

“할머니. 어제는 저 아이가 사람의 자식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농사꾼의 자식 같습니다.”

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 하얀 구름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여기서 함께 살려면 밭을 잘 가는 사람이 필요하지. 너는 해 지기 전에 밭을 갈지 못하면 우리 집에서 쫓겨나게 될 거야.”

그리고 할머니는 나무로 만든 곡괭이 하나를 훌쩍 던졌다.

하얀 구름은 여태까지 한 번도 밭을 갈아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일구라고 한 밭은 하루가 아니라 열흘이 걸려도 갈지 못할 정도로 넓었다.

“아, 이제 짐승들에게 죽는 일만 남았구나!”

하얀 구름이 그렇게 울며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수많은 개미떼가 나타났다. 개미들은 온 밭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개미 대장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왕자님 덕분에 우리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우리가 밭을 모두 갈아드리겠습니다.”

수많은 개미들이 그 너른 밭을 가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개미들은 하얀 구름을 향해 손을 흔들며 떠났다. 해님이 하늘 한가운데 떠 있을 때 하얀 구름은 곡괭이를 들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소년과 할머니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년은 그제야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용서를 빌며 한없이 울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거짓말을 한 소년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 때 하얀 구름이 나섰다.

“할머니, 한 번만 더 속아주세요. 우리를 속인다고 그런 사람들을 다 내쫓으면 우리는 누구와 같이 살 수 있나요?”

하얀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던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구름의 용서로 할머니의 오두막에서 쫓겨나지 않게 되자, 소년이 다가와 하얀 구름에게 안겼다.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마운 친구, 내 앞으로 죽는 한이 있어도 자네와의 약속을 지키겠네. 날 용서해주게.”

하얀 구름은 소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진정한 친구는 서로에게 용서라는 말을 하지 않네. 다만 기다릴 뿐이지. 그가 돌아올 때까지.”

그들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도 행복했고, 저녁에도 행복했다. 달이 뜨면 행복했고, 별이 져도 행복했다.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사는 우리의 마음 안에는 따사로운 자비심보다 각박함이 점점 커져만 갑니다.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아기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며, 하찮은 미물에게 조차도 대자대비심으로 보듬어주는 불자가 됩시다.

우봉규 작가는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2001년과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