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열매가 무성한 향긋한 봄날, 부처님은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당시 마야 왕비는 아이를 낳기 위해 카필라 왕궁을 떠나 친정이 있는 데와다하로 가는 도중 두 도시의 중간지점인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습니다. 온갖 꽃이 만발한 룸비니 무우수(無憂樹) 그늘 아래에서 마야 왕비는 갑자기 산기(産氣)를 느끼고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에 의하면 이때 아기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카필라 왕궁의 왕자로 태어난 아기는 고타마 싯다르타라 불렸습니다. 왕자는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일찍부터 왕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을 통해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했고 무예에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부왕 슛도다나는 왕자의 총명함과 정직함, 그리고 매사 뛰어난 성취력을 보이는 왕자의 열의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왕자가 날로 발전하며 성장해 갈 때 부왕은 한 가지 걱정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왕자가 어릴 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아니라 출가하여 위대한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아시타 선인의 예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왕은 어떻게 해서든 왕자의 출가를 막으려 이웃나라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을 시켰으며 세속의 탐닉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사계절의 궁전을 만들어 왕자에게 매일매일 유흥의 삶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부왕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끝내 출가를 단행하게 됩니다.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아들까지 태어났지만 그의 출가를 막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출가에 장애가 된다고 하여 탄식한 장애라는 말의 ‘라훌라’가 아들의 이름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런 후 왕자의 나이 28세 음력 2월 8일 늦은 밤 마부 찬다카를 깨워 말을 타고 마침내 궁성을 뛰어나와 어두컴컴한 깊은 숲 속으로 고행의 출가를 단행하였습니다.

오늘은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로 불자여러분과 함께 지극정성 찬탄합니다. 부처님의 출가기를 장황하게 언급한 이유는 중생에 대한 부처님의 연민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중생에 대한 연민이 없었으면 출가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불교라는 종교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연민(憐愍)’의 사전적 의미는 ‘불쌍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상대에 대한 애처로움이 없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 또한 부족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상대가 애처롭고 가련하면 그를 보듬으려는 사랑은 커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사랑을 일러 자비(慈悲)라 합니다. 따라서 연민은 자비의 시원(始原)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지닌 연민은 12세 왕자 때 확연하게 표현됩니다. 부왕을 따라 성문을 나와 농사를 짓고 있는 광경을 보던 왕자는 한 장면에서 연민으로 미어질 것 같은 충동을 받습니다. 쟁기가 지나며 파헤쳐진 흙에서 기어 나온 벌레들, 이를 새들이 다투며 날아와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왕자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게 비춰졌겠지만 왕자는 가엾게만 느껴져 눈물을 흘렸습니다.

왕자의 연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늙고 쇠약한 노인의 모습, 절망적인 상황에서 전염병을 앓고 있는 사람, 죽은 이의 장례 행렬 등을 보고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록 헤진 옷일지언정 안온한 표정의 출가 수행자를 보고 ‘반드시 출가하여 생로병사로부터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부처님을 깨달음의 완성으로 이끈 것은 이처럼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연민 때문이었습니다. 연민은 환락의 빛에서 어둠의 숲 속으로 당신을 이끌었고, 가족과 국가마저 초탈하여 온중생의 사랑으로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와 아들 라훌라에게도 왜 연민이 없었겠습니까? 부처님의 연민은 사람이라는 어느 특정대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각종 고통과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가 늙고 병들어 끝내 죽음의 고통에 이르는 중생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들에게 영원한 행복과 자유와 안락을 안겨주기 위한 구도의 길을 떠난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후 읊은 게송은 중생들이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자신이 태어나기 마련이면서, 늙기 마련이면서, 병들기 마련이면서, 슬퍼하기 마련이면서….

(중략)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증득했다. 내게는 지(智)와 견(見)이 생겼다.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지와 견은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바세계에 오신 참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다시 한 번 찬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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