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자본주의 부정적
종단·불교학계 힘 모아
불교적 대안 제시하자

한국불교학회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뤄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대화’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 데 이어 다가오는 5월에는 ‘불교적 이상사회는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학술잔치를 연다. 학회는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위기를 기회로 삼자며 ‘희망의 빛’을 불교에서 찾으려는 문제의식을 밝혔다.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오해든 아니든 불교가 개인적 고통에만 집중해 젊은 세대로부터 멀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기에 더 그렇다.

한국 불교는 국제기구의 국가별 자살률과 출산율 통계를 누구보다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국제 통계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새로운 생명을 불러오길 가장 꺼려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청소년은 입시 경쟁에 내내 허덕이고 젊은이들 사이에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라는 말이 나돌며 심지어 ‘헬 조선’이라는 자조까지 퍼져 있다. 노인 빈곤은 물론이고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또한 대한민국이다.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연기법으로 개개인에게 삶의 고통을 불러오는 사회적 고통에 해법을 찾으려는 학문적 모색은 불교의 포교를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이다.

기실 붓다의 지혜가 필요한 곳은 한국만이 아니다. 불평등 심화는 세계적 현상이다. 2018년 8월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18세 이상 미국인 1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는 그 방증이다. 18~29세 젊은 층 가운데 사회주의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들이 51%에 이른 반면, 자본주의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이들은 45%에 그쳤다.

하지만 오늘의 문제를 마르크스 사상이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지닌 탐진치의 문제를 간과한 채 혁명을 낙관했다. ‘스탈린주의’로 상징되는 유혈 독재체제의 문제점은 혁명에 나선 사람들, 곧 인식주체가 지닌 한계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불교의 인식론과 인식주체의 수행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한국불교학회 김성철 회장은 진화 과정에서 인식 주체인 인간의 뇌가 ‘본능의 뇌’, ‘감성의 뇌’, ‘사고의 뇌’의 삼단계로 이루어졌다며 “탐욕, 분노, 우치(愚癡), 교만과 같은 번뇌 가운데 우치는 ‘사고의 뇌’와 관계되고 탐욕과 분노와 교만과 같은 정서는 ‘감성의 뇌’나 ‘본능의 뇌’와 관계된다.”고 분석했다. 불교의 깨달음은 그 번뇌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불교는 인식주체의 문제 못지않게 인식 대상인 사회 문제에도 혜안을 줄 수 있다. 불교는 ‘탐진치 체제’에서 경쟁으로 찌든 한국인에게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해가야 한다. 학계에선 이미 ‘수행하는 경제공동체’나 ‘구성원이 서로 낮춤과 나눔과 섬김과 자비를 실천하는 불교공동체’를 비롯한 여러 대안이 나와 있다.

하지만 담론이 아직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불교적 가치가 녹아든 사회를 구현할 학제적 연구와 그 대안을 현실화 할 주체를 형성하는 방안까지 연구과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한국 불교의 여러 종단과 스님들이 불교학계의 새로운 탐색에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법을 찾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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