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에 만족하는
소욕지족의 미니멀리즘
생활 속 ‘해탈’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사람은 죽어서 무얼 남길까?

원효 스님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는 이도 있고, 이완용이나 히틀러처럼 오명을 남기는 이도 있지만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죽어서 쓰레기를 남긴다. 미안하지만, 어쩌면 당신도 그럴 것이다.

우린 대체 무얼 그리 쌓아두고 있는 것일까. 방방마다 쌓여 있는 물건들, 그게 언제부터 내 집 안에 있었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만지거나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온갖 너저분한 잡동사니들을 사 모으느라 시간과 돈을 쓰고, 그걸 정리하느라 힘을 쓰는 바람에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을 품을 여력도 사라진다.

우리 정말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자체를 보기 보다는 그가 입고 신고 들고 쓰고 있는 물건들로 그를 판단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들이 먼저 보여 정말 소중한 사람 자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마련하느라 일하고 카드빚을 지고 쌓아두느라 집안이 비좁아져 더 넓은 곳을 구하느라 은행대출을 받고….

현대인들이 가난한 이유는 구조적인 불합리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게 타당하겠지만, 끝없이 무엇인가를 모으고 쌓느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바라보며 정리하지 못해 쌓이는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까지도 가난해져 가는 중이다.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이게 정말 내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이걸 가지고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현대사회를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뒤흔들고 있는 미니멀리즘은 이런 자각과 반성에서 시작됐다.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는 삶. 서구에서 예술 사조로 떠오르던 미니멀리즘이 생활 전반에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간소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런데 미니멀리즘의 원조는 “마치 새가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가듯” 무소유를 몸으로 살다간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아니었을까. 수백 만 원의 이사비용을 써야 하는 요즘, 새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곳으로 날아가기에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안고 지고 이고 살고 있다.

버리면 된다지만 그게 쉽지 않다. 그 물건들을 향한 집착이란 정말 지독하게 은근하고 끈질겨서 잡동사니를 정리하다보면 몸살을 앓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몸살을 앓아가다 보면 집착이란 번뇌가 보이고, 소유욕에서 내 자신이 조금씩 풀려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감히 말하건대 해탈이란 말, 이럴 때 써도 좋지 않을까. 주변을 돌아보면 해탈의 경지에 오른 미니멀리스트들이 종종 등장한다. 어쭙잖게 미니멀리즘을 실천해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야 말로 대단함 그 자체다.

사는 게 지옥 같고 다람쥐 쳇바퀴 같다고 느껴진다면, 가진 것을 줄여보자. 엄두가 나지 않으면 경전에서 부처님이 숱하게 들려주는 이 말을 떠올리자.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자기가 먹을 만큼의 음식 양을 안다.”

‘충분해!’라고 선언하는 일, 소욕지족이 바로 미니멀리즘 아니던가. 이제 내 삶에서 그걸 한 번 실천하면 그 어렵다는 ‘해탈’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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