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미륵존불 예경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국내에서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높이가 93.5㎝이다.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삼산반가사유상(三山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미륵불(彌勒佛)이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지금은 도솔천에서 미륵보살의 모습으로 수행을 하고 계신다. 즉, 현재는 보살의 상태이다. 미륵은 범어 ‘마이뜨레야(Maitreya)’의 음역이고, 자씨(慈氏)로 한역된다. 우리가 사랑을 언급할 때 ‘자비’ 또는 ‘대자대비’라고 하는데, 이때 자비의 ‘자(慈)’는 미륵보살을 지칭하고, 중생을 연민하는 ‘비(悲)’는 관세음보살을 지칭한다. 현재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명호 앞에 ‘대자대비’를 붙이고 있다. 하지만 ‘자비’의 어원을 감안할 때, 대자대비 역시 미륵보살과 관세음보살의 공능을 함께 담은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사랑과 연민[慈悲]은 대보살들의 중생 구제 원력인데,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연민의 관세음보살이 사랑의 미륵보살보다 조금 더 친숙하다보니, 관세음보살이 ‘자(慈)’와 ‘비(悲)’를 모두 포용한 형태의 관음신앙이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친숙한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보면 자와 비의 기능이 나눠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권으로 구성된 〈자비도량참법〉은 ‘양황참’이라고도 하는데, 독특한 구조 미학을 지니고 있다. 대개 이 참법은 첫째 엄도량(嚴道場), 둘째 정삼업(淨三業), 셋째 결계(結界), 넷째 수공양(修供養), 다섯째 청삼보제천(請三寶諸天), 여섯째 찬탄신성(讚歎申誠), 일곱째 작례(作禮), 여덟째 발원지주(發願持呪), 아홉째 참회(懺悔), 열째 수관문(修觀行)의 천수행법처럼 구성된다. 하지만 〈자비도량참법〉은 10권의 완결된 형식으로 참회 법문을 들려주고 참회하도록 하며, 중간 중간에 불보살명호를 외는 참회를 한다. 각 권에 서너 번씩 불보살명호 참회를 하는데, 어느 불보살명호를 칭명 예경할지라도 그 시작은 ‘자(慈)’의 미륵보살이고, 마지막은 ‘비(悲)’의 관세음보살이다. 이 두 보살을 불보살명호 예경의 처음과 끝에 배대했기에 〈자비도량참법〉이라고 칭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자(慈)’와 ‘비(悲)’의 상징보살인 미륵보살과 관세음보살 두 분 가운데 관세음보살에 국한해 ‘대자대비’라는 표현을 붙이며, 관세음보살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그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미륵보살은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우리를 연민하며 인도하는 관세음보살에게 그 역할의 무게를 지운 게 아닐까 한다.

두 분 보살님의 조상(造像)에서도 차이가 있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좌우 보처보살로 등장하며, 주로 좌상으로 모셔진다. 하지만 미륵부처님은 장차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라고 하여 서 있는 모습이나 반가사유의 좌식 형태로 모셔진다. 미래에 오실 분이다 보니 서 있는 모습도 실내가 아닌 야외에 모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보 323호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75)의 명으로 968년경 조각장 혜명(慧明) 스님이 제작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석불이다. 〈사진제공=문화재청〉

미래에 오실 부처님은 곧 현실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역할로 말미암아 미륵신앙은 정토왕생의 아미타신앙과 달리 역동적으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미래에 우리들을 구원하러 오신다는 메시아사상은 인류문화의 보편적 양상인데, 불교에서는 미륵불에 전형이 담겨 있다. 이로 인해 일부 그릇된 의식을 가진 정치가나 사이비교주들이 미륵불이라고 자칭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다. 후삼국시대의 궁예와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미래 구원사상은 대체로 산악지방보다 평지의 천신신앙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은진미륵불이나 중원의 미륵입상 등 중부지방의 미륵불 야외 입상이 그 예다.

미래에 오실 부처님, 도솔천의 미륵불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는 시기에 대해서는 미륵부처님의 성불과 하생의 인연을 설하고 있는 미륵경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대체로 56억 7천만년 이후 인간의 수명이 8만세가 되는 시기로, 십선이 행해지는 무렵이라고 한다.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출가하여 도를 닦고 화림원의 용화수 아래에 앉아 정등각을 이루고 전후 세 차례에 걸쳐 법을 설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45년 동안 수많은 법문을 통하여 중생을 제도하였지만 미륵불은 단 3회의 법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데, 그 숫자가 가히 천문학적이다. 〈보살처태경〉 권2 ‘삼세등품’에 의하면 용화삼회(龍華三會) 중에 제1회 설법으로 석존께 오계를 받은 96억 중생을 제도하고, 제2회에는 삼귀의계를 받은 94억을 제도하고, 제3회에는 나무불을 한 번 칭한 92억을 제도한다는 것이다. 삼회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데는 일곱 가지 재능이 가능해진다.

〈대지도론〉 권55에는 첫째 첩질변(捷疾辯), 둘째 이변(利辯), 셋째 부진변(不盡辯), 넷째 불가단변(不可斷辯), 다섯째 수응변(隨應辯), 여섯째 의변(義辯), 일곱째 일체세간최상변(一切世間最上辯)의 일곱 가지 변재가 언급되고 있다. 속히 대답을 들어주고, 이롭게 해주고, 다함이 없이 말해주고, 끊어지지 않게 말해지고, 근기에 따라 응해주고, 뜻을 잘 설명해주고, 일체세간의 최상의 언변으로 설법을 하니 단 3회의 설법으로 중생제도를 완수하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를 예견한 듯 적절한 비유로 공능을 설해놓았다. 이와 관련해 〈미륵상생경〉에는 다음의 게송이 나온다.

大士久成等正覺 대사께서는 오래 전에 정등각을 이루시고
成熟有情居兜率 유정들이 성숙할 동안 도솔천에 머무시네.
晝夜常轉不退輪 밤낮으로 항상 물러나지 않고 법륜 굴리시니
龍華三會度無極 용화회상 세 번 설법으로 중생을 건지시네.

앞에서 언급했지만 미륵부처님은 미륵전이나 용화전에 모시기도 하지만 야외에 단을 올려 석조입상으로 모시기도 한다. 만일 일순간에 미륵보살을 칭명하면 천이백겁 생사의 죄악을 제거하고, 단지 칭명을 듣고 합장하여 공경만 해도 오천겁 생사의 죄악을 제거하며, 만일 예경만 하면 백억 겁의 생사의 죄악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였다. 미륵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을 올리면, 최상의 예경이 되어 공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동국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계종 의례위원회 실무위원, 불교의례문화연구소 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동국대 · 금강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불교의례, 그 몸짓의 철학〉, 〈한국불교 의례체계 연구〉, 〈천수경, 의궤로 읽다〉, 〈삼밀시식행법해설〉(공저)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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