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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불교인의 삶과 신앙8. 라오스
라오스 독립문인 빠뚜싸이(Patuxay). 대통령궁 앞에서부터 일직선으로 시원스레 쭉 뻗어 있는 도로는 란쌍대로(Thanon Lane Xang)로,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이라고 할 수 있다.

란쌍 왕조 이후
라오스인 일상에
불교 깊숙히 뿌리 내려

국민의 90% 이상이 불교 신자인 라오스에는 어느 곳을 가도 크고 작은 절이 있다. 길에서 한 무리의 스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또 다른 무리와 마주치게 된다. 나라 자체가 마치 커다란 법당 같다. 종교를 넘어 불교가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라오스를 소개한다.

삶의 질 낮지만 얼굴엔 온화한 미소

메콩강이 국토를 남북으로 크게 가로지르는 라오스의 공식 국명은 ‘라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다. 나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사회주의국가 중 하나다. 영국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연구소(EIU)가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167개국 중 151위를 차지한다.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또한 180개국 중 135위를 기록했다.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한 크기다. 북서쪽으로는 중국과 미얀마, 동쪽으로는 베트남, 남쪽으로는 태국과 캄보디아와 국경이 맞닿아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바다와 면한 곳이 없는 내륙국가로,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를 차지한다. 해마다 부는 아시아의 몬순(Monsoon, 계절풍)의 영향으로 11월부터 4월까지는 건기, 5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에 해당한다. 인구는 약 700만 명이며, 국민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한다. 다른 공산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임대해 건물을 짓고, 농사를 짓는다.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700달러 수준으로, IMF 기준으로는 후발발전도상국이다.

이와 같은 객관적 사실만 보면 삶의 질이 형편없이 낮아 불평불만으로 가득할 것만 같다. 하지만 정작 거리에서 마주치는 라오스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를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낯선 이방인을 향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하며 활기찬 어조로 ‘싸바이디(안녕하세요).’를 외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에세이 제목처럼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하는 의문이 생긴다.

미얀마 거리를 돌아보면 불교 관련 미술품을 손쉽게 볼 수 있다.

국가 행사, 민간 관혼상제도 불교식

최근 들어 라오스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메콩강변에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고, 젊은이들은 서구 문화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은둔의 땅’이라 불리던 라오스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라오스는 수도인 비엔티안(Vientiane)이나 중국의 계림을 닮은 방비엥(Vang Vieng), 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루앙프라방 정도가 잘 알려져 있다. 그중 비엔티안은 이방인이 라오스를 만나는 첫 관문이다. 1953년부터 행정수도의 기능을 수행해온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지만, 서울이나 뉴욕 · 도쿄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빠르게 변화하는 대도시는 아니다. 오히려 한 나라의 수도라기보다는 도시 전체가 커다란 사원 같다. 우리나라 서울의 사대문 안에 조선시대 궁궐과 종묘, 성곽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처럼 비엔티안 중심가에는 오래된 불교 유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대통령궁 앞에서부터 일직선으로 라오스 독립문인 빠뚜싸이(Patuxay)까지 란쌍대로(Thanon Lane Xang)가 시원스레 쭉 뻗어 있다. 이 길은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광화문 광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통령궁 바로 옆에는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왓 시 사켓(Wat Si saket)’이 있다. 사원 내부의 회랑에는 6,800여 개의 불상이 늘어서 있어 언뜻 불교박물관을 연상시킨다. 건너편에는 기원전 인도에서 만들어졌다는 에메랄드 불상인 프라깨우(Phra Kaew)를 모시는 ‘왓 호 파 케오(Wat Ho Phra Keo)’가 자리하고 있다. 1779년 침략해온 태국에게 이 에메랄드 불상을 빼앗겨 현재는 역사 · 종교적으로 가치가 있는 다른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건물 회랑은 항마촉지인을 한 불상과 섬세한 연꽃 장식으로 가득하다.

라오스 북쪽에 위치한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은 오래된 사원과 함께 탁발수행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을만큼 유명하다. 스님들의 탁발행렬.

라오스는 13세기 란쌍(Lanxang) 왕조가 나라를 통일한 이래 지금까지 수백 년에 걸쳐 고난과 굴곡의 역사가 이어졌다. 주변 국가에 비해 인구가 적고, 국력이 약해 샴(현재 태국), 버마(현재 미얀마), 베트남 등 인접 국가의 침략이 잦았다. 그리고 19세기에는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프랑스를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몰아내고서야 라오스는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이후 오랜 내전 끝에 1975년 공산당이 집권하였다. 정치세력이 바뀔 때마다 사회이념은 자주 흔들렸지만 종교만큼은 예외였다.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란쌍 왕조 이후 그 어떤 지도자도 불교를 탄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라오스에서는 국가적 행사나 민간의 관혼상제를 모두 불교식으로 행한다. 국민의 90%가 불교신자인 라오스에서 불교는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의 생활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다른 공산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임대해 건물을 짓고 농사를 짓는다. 모내기를 하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

3000개 사찰 2만여 스님 거주

라오스 사람들은 태국 · 미얀마 등 주변국과 마찬가지로 초기불교, 부처님 당시의 전통불교인 테라와다(Theravada Buddism, 남방불교) 전통을 따른다. 육바라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데 그중 ‘보시 바라밀’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보시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른 아침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은 라오스 사람들의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새벽 5시 30분, 스님들은 노란색과 갈색으로 생긴 발우를 한쪽 어깨에 메고 줄지어 탁발을 나선다. 이때 작은 벌레 하나라도 살생하지 않기 위해 맨발로 걷는다. 불자들은 길가에 나와 기다리다가 정중하게 공양을 올린 후 집으로 돌아간다. 스님들은 발우가 채워지면 탁발행렬을 따라다니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먼저 음식을 나눠준다. 특히 라오스 북쪽에 위치한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은 오래된 사원과 함께 탁발수행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을 만큼 유명하다. 이런 탁발 문화는 부처님 당시의 수행법을 잘 보존하고 지켜나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라오스에는 아무리 작은 마을도 사원이 최소 한 곳 이상 있다. 라오스 국민들은 사찰을 마을의 자산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을 어른들이 사찰을 관리하고, 대부분의 마을행사도 사찰에서 열린다. 라오스 전역에는 3,000여 개의 사찰이 있는데, 이곳에 2만여 명의 스님이 상주하고 있다.

라오스에서 스님의 지위는 대단히 높은 편이다. 가족 중에 스님이 있으면 대단히 명예롭게 여긴다. 단기출가를 제외한, 정식 스님은 누구나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님이 되려면 행정기관으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사찰에 새 출가자가 생기면 대나무에 긴 종이연을 매달아, 이를 널리 알리고 축하한다. 단, 라오스에서 스님은 남자만 될 수 있다. 라오스 말로 스님을 ‘야포어(Yaphor)’라고 하는데 ‘야’는 ‘위대하다’, ‘포어’는 ‘아버지’를 뜻한다. ‘위대한 아버지’라는 단어 자체가 남성을 국한하고 있다.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왓 시 사켓(WatSi saket)’ 사원 내부 회랑. 회랑에는 6,800여 개의 불상이 늘어서 있어 언뜻 불교박물관을 연상시킨다.

라오스 사람들은 국어 · 수학 · 역사 · 지리 등과 더불어 불교적 세계관에 기초하여 교육을 받는다. 남자의 경우 20세 성인이 되기 전에 단기출가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17세 미만의 소년이라면 부모의 허락만으로 쉽게 할 수 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3개월 정도 단기출가를 하는데, 이때는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복을 해준다. 여자도 단기출가는 가능하다. 스님처럼 삭발하지만 승복 대신 흰옷차림으로 사찰에서 생활하며, 비구니 스님과 마찬가지로 348계를 지키며 수행한다. 여성 출가자는 ‘매시(MaeCi)’라고 하는데 여기서 ‘매’는 ‘어머니’를, ‘시’는 ‘모든 걸 버린다.’는 의미이다. 남녀 모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단기출가를 하는데, 이는 <부모은중경>에 나온 것처럼 복덕을 닦으며 참회하고 부모님께 회향하며 그 은혜를 갚으려는 깊은 효심과 맞닿아 있다.

스님들에게 올리는 탁발 공양물은 종류가 다양하다.

佛心으로 하나 되는 라오스 축제

축제 역시 불교와 관련된 게 많다. 매년 4월 중순 행해지는 ‘피 마이 라오(Pi Mai Lao)’와 더불어 11월 치러지는 ‘분 파 탓 루앙(Bun Pha That Luang)’은 라오스의 중요한 명절이자 축제이다. 이때는 수수하고 얌전한 라오스 사람들도 경쾌하고 활기차게 변한다. 라오스 전역의 학교와 일터는 모두 일손을 멈추고, 즐거운 연휴를 보낸다.

탓 루앙(That Luang)은 ‘위대한 탑’이라는 이름처럼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국가 기념물이다. 라오스 지폐에서도 볼 수 있다. 45미터 높이의 웅장한 황금 탑은 연꽃봉우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무지(無知)를 벗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

건기가 끝날 즈음 치러지는 물의 축제 ‘피 마이’는 깨끗한 물로 주변뿐 아니라 마음까지 말끔히 씻어내는 라오스의 새해맞이 축제이다. 올해의 경우는 주말이 끼어 있어 4월 14일부터 18일까지 총 5일이 연휴로 지정되었다. 라오스 사람들은 ‘피 마이’ 첫째 날은 ‘낡은 해가 떠나는 날’이라고 여겨 대개 집안을 말끔하게 청소한다. 대부분의 집에는 대문 옆에 불상을 모신 제단이 있는데, 가족이 모두 모여 제단에 모셔두었던 불상을 꺼내 함께 물을 붓는다. 승려들은 물을 담은 사발에 라오스 국화(國花)인 짬파꽃을 띄워놓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새로운 해가 오는 날’이라고 하여 가장 중요한 의식을 치른다. 이날 라오스 사람들은 아홉 곳의 절을 방문해 불상에 물을 뿌리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는 ‘9’가 가장 높은 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축제가 이어지는 기간 동안 집집마다 풍성하게 차린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고, 밤낮없이 서로에게 물을 부으며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건 이웃이건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물의 축복은 공평하게 이뤄진다. 분명한 것은 물세례를 맞은 누구 하나 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을 뚝뚝 흘리며 “속 디 피 마이(Sok dii pi mai,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환하게 웃을 뿐이다. 단, 젊은이는 어른들을 존경하는 의미로 ‘합장한 손’에만 물을 부어야 한다. 불교신자인 라오스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모두 알고 있겠지만, 관광객들은 그저 물을 끼얹으며 노는 날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아쉽다.

라오스 국화인 짬파꽃.

‘탓 루앙’ 축제는 덥고 습한 우기가 끝나는 11월에 성대하게 열린다. 탓 루앙은 ‘위대한 탑’이라는 이름처럼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국가기념물이다. 라오스 지폐에서도 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승려들이 이곳에 탑을 짓고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가슴뼈를 봉안했다고 전한다. 45미터 높이의 웅장한 황금 탑은 연꽃봉우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무지(無知)를 벗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 탑 입구의 동상은 라오스를 통일하여 비엔티안을 건설한 란쌍 왕조의 세타티랏(Setthathirath) 왕이다. 당시에는 탓 루앙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사원이 건립되었는데, 오늘날에는 북쪽과 남쪽 두 개의 사원만 남아 있다. 그중 북쪽 사원 왓 탓 루앙 너아(Wat That Luang Neua)에는 라오스 불교 최고지도자[Sangkharat 종정]가 거주하며, 남쪽 사원에는 거대한 와불(臥佛)이 모셔져 있다.

루앙프라방의 탁발행렬.

탓 루앙 축제는 세타티랏 왕이 과거 라오스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엔으로 천도한 것을 기념하고자 만든 축제로, 라오스 사람이라면 평생에 한 번은 참여해야 한다고 여길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 11월 보름을 중심으로 일주일 동안 열리는데, 라오스 전역에서 찾아온 수많은 인파로 커다란 광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이 기간에는 전국의 큰 사찰에서 올라온 스님들이 대규모 탁발 행렬을 펼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탑 모양의 꽃다발을 들고 탓 루앙을 세 번 도는 탑돌이는 축제의 백미이다. 사원 외부에서 3번, 내부에서 3번 탑돌이가 진행되는데, 누구나 행렬에 참여할 수 있어 이방인들도 탓 루앙에 꽃을 헌화하며 소원을 빈다.

필자는 20대 중반 첫 방문 이후 라오스를 자주 찾았다. 라오스에 가면 실컷 자고, 배불리 먹고, 절에 가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휴식의 시간이자 충전의 시간인 셈이다.

라오스에 며칠만 머물러보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던진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도, 왜 이곳을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라고 부르는지도 저절로 깨닫게 된다.

매년 4월 중순 행해지는 ‘피 마이 라오(Pi Mai Lao)’ 축제는 깨끗한 물로 주변뿐 아니라 마음까지 말끔히 씻어내는 라오스의 새해맞이 축제다. 대부분의 집에는 불상을 모신 제단이 있는데 불상에 가족들이 모여 물을 부으며 행운과 건강을 기원한다.

이리

여행작가. 본명은 이계선. 크고 작은 잡지사에서 일했고, 여전히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이십대에 인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물가 저렴하고 인심 좋은 나라에서 오랜 시간 머물다 돌아온다. 라오스는 20대 중반부터 꾸준히 찾던 곳이다. 저서로 <Hello 라오스>(북웨이), 어린이 인문학 동화 <이순신 장군은 추석에 무얼했을까?>(우리동네) 등이 있다.

글 · 사진 이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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