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월간금강 연재
이계진의 책 읽어주는 남자2. 나무를 심은 사람
<삽화=배종훈>

늙은 양치기가 심은 건
자연과 인간을 향한 희망

3월이란 계절을 생각하니 마침 떠오르는 책이 있다. 장 지오노(1895~1970)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꽤 여러 해 전에 읽어서 책을 찾기 위해 서가를 뒤져봤으나 안 보였다. 아하, 누구에게 빌려 주었나본데 기억을 못하겠다. 나무를 심는 계절을 앞두었으니 이 책이 적당한데, 다시 살 수밖에.

차를 몰고 60km를 달려 서울 교보문고로 갔더니 재고가 바닥났단다. 그래서 주문을 하고 며칠을 기다려서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반가웠다. 이 반가움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책이 스테디셀러가 됐을 정도로 인기가 있어서 그 큰 서점에 재고가 없었을 때, 아니면 휴대폰 만화(웹툰)나 연예기사 ‘열독자’들에게 참패를 당해 출판사 물류창고에서 은둔 중이다가 나와 만났을 때다. 기왕이면 책이 없는 이유가 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책, 짧은 글이지만 향기와 감동이 있는 현대의 고전 <나무를 심은 사람>은 실제로 한 때 이 책을 권유받아 읽은 사람들이 그 큰 감동 때문에 자신도 책을 몇 권씩 사서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며 행복해 한 바 있다.

책의 내용을 읽어드리기 전에 우선 글머리에 적힌 장 지오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그 말은 이 책의 요약과도 갈은 장 지오노의 아포리즘(Aphorism, 경구)이기도하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말 때문에 처음에는 이 글이 실록(實錄)이라고 착각하며 글을 읽기도 했다. 아니,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의 어느 한 줄 기록을 보고 파란만장한 사극을 쓰는 드라마 작가의 상상력에 비하면, 정말 이 글은 가히 ‘실록’으로 봐야할 정도다. 장엄한 메시지가 있는 작은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실제로 장 지오노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고산지대를 여행하다가, 혼자 살면서 꾸준히 나무를 심고 가꾸는 양치기를 만난 일에서 비롯됐다. 그는 홀로 묵묵히 나무를 심어 자기의 소유지도 아닌 끝없이 펼쳐진 황폐한 땅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었다. 그때의 그 양치기가 소설 속 주인공의 모델이 됐고, 소설에서는 우직하게 일평생 나무를 심은 ‘엘제아르 부피에’로 환생한 것이다.

봄이 온다. 이 나라 이 강산은 지금 가는 곳마다 숲이 우거졌고 붉은 땅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지난 후 바로 전쟁을 겪었던 이 나라의 산하는 쓸 만한 나무는커녕, 홍수와 토사가 걱정일 정도로 나무가 없는 피폐한 민둥산 천지였다. 필자가 청소년기였던 40~50년 전까지도 그랬다. 그때 내가 들은 부끄러운 이야기는 ‘외국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올 때, 쿨쿨 잠을 자다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붉은 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코리아다!’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어린 내 마음에도 그 말은 몹시 부끄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민둥산과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푸르게 하려고 어른들은 물론 고사리 손의 초등학생이었던 우리들도 삽과 괭이를 들고 ‘메아리가 살게 시리 나무를 심자.’는 동요를 부르며 해마다 방방곡곡에서 식목행사를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올해 심어 놓으면 다음해 겨우 잎과 줄기가 퍼진 마을 뒷산의 그 어린 나무를 싹둑싹둑 베다가 불을 때는, 생각 없는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정말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시절 학교에서 배운 덴마크의 ‘엔리코 달가스’ 이야기는 잊을 수 없다. 발틱해의 세찬 바람이 부는 척박한 덴마크 땅에 나무를 심어 그의 조국을 푸르게 만들었다는 달가스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그 달가스를 연상하며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한 해전인 1913년, 작가 장 지오노는 주인공을 만난 곳의 환경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해발 1,200~1,300미터의 산악지대에 있는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로 먼 도보여행을 떠났다. 그곳엔 야생 라벤더 말고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6월의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러나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나무라고는 없는 땅 위로 견디기 어려울 만큼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몇 시간을 걸어도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좀처럼 말을 잘 하지 않는 50대 중반의 중년 양치기를 만난다. 그는 그곳에 있는, 오두막이 아닌 돌로 만든 제대로 된 집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드넓은 고원의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 위해 작정하고 자리를 잡은 모습을 의미한다.

서른 마리 쯤의 양은 양몰이 개에게 맡기고, 그는 틈만 나면 튼실한 도토리를 고르고 골라 그것을 황량한 고원 구릉지에 쇠막대기로 구멍을 내고 정성스럽게 심어나가는 작업을 계속한다. 10만개를 심으면 겨우 2만개 정도가 싹트고 그것조차 절반쯤은 죽어버리고 마는 힘겨운 도전이었다. 지난 날 그는 평지에서 농장을 하나 가지고 자신의 꿈을 꾸며 살았는데, 하나뿐인 아들이 죽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고독 속으로 물러나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겨 왔다고 한다.

“나는 그곳(도토리를 심는 땅)이 그의 땅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누구의 땅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를 만난 1년 후에 전쟁이 일어났고, 장 지오노는 5년 간 참전 후 전역했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던 그곳을 다시 찾았다. 처음 만났을 때 50대 중반이었던 그 양치기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토리를 심던 양치기는 여전히 아니 그동안에는 수종도 다양하게 연구해서 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뜯어먹는 양의 수도 줄이고, 이제는 양봉을 하며 그동안 꾸준히 숲을 가꾸었다. 이제 황량한 바람만 불던 그 땅은 자연생태로의 복원이 가능한 자생력을 갖추었다. 메말랐던 계곡에 물이 흐르고, 새가 날고, 다람쥐가 노닐고, 숲의 나무와 꽃들이 스스로 바람에 씨를 날리는 건강한 숲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노년’에 자그마한 땅을 가꾸며 산골에 산다. 어린 시절의 그 헐벗은 민둥산의 기억이 싫어서 해마다 봄이면 꽃나무든 과수든 그것이 무슨 나무든 상관 않고, 되는대로 나무를 심어왔다. 특히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은 후 그 감동이 가슴에 남아 우리 시골집 타인 소유의 뒷산에 산주인의 허락도 없이, 커다란 전나무 밑에 마구 싹터서 자라는 어린 묘목을 뽑아다가 마치 ‘엘제아르 부피에’가 된 심정으로 여기저기 옮겨 심곤 했다. 그것들이 지금은 벌써 내 키만큼 자랐다.

<삽화=배종훈>

최근 휴대폰 공간에서 본 ‘박목월’ 선생의 수필 ‘씨뿌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일부 소개하고 싶다.

조선시대 황흠(黃欽)이 80세에 고향으로 물러나 지낼 때, 종을 시켜 밤나무를 심게 했다. 이웃 사람이 웃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요?”

황흠이 대답했다.

“심심해서 그런 걸세. 자손에게 남겨준대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10년 뒤에도(90세까지 사셨다.) 황흠은 건강했고, 그때 심은 밤나무에 밤송이가 달렸다. 이웃을 불러 말했다.

“자네 이 밤 맛 좀 보게나. 후손을 위한 일이 날 위한 것이 돼 버렸군.”

장 지오노는 글의 끝을 이렇게 맺는다.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엘제아르 부피에,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해낸,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에게 크나큰 존경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마치 그가 실존 인물인 것처럼 이렇게 마무리했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봄이 가까이 왔다. 늦기 전에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이타(利他)의 마음으로 나무 한 그루 심어보면 어떨까?

이계진

방송인.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30년간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제17대, 18대 국회의원. 현재 국방FM 시사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고, 〈무소유〉 읽기 작은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저서로 〈아나운서 되기〉, 〈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딸꾹!〉, 소설 〈솔베이지의 노래〉, 〈바보화가 한인현 이야기〉, 〈이계진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똥꼬 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 〈3인 아나운서 이야기〉 등이 있다.

글 · 이계진  ggbn@ggbn.co.kr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글 · 이계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