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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으로 불릴까?관세음보살님은 왜? 2(277호)
금동십일면천수관음보살좌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생 보듬는 눈·귀 갖겠다’
불순 왕자 서원에서 비롯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아주 커다란 행운이요 그보다 더 큰 행운은 부처님이 살아계시는 시절에 태어나서 가르침을 직접 듣고, 출가 수행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이 딱 그랬습니다. 이 행운을 전부 다 누린 분이지요. 그런데 부처님을 따라 수행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그대는 장차 부처가 될 것이다.”라는 예언까지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대의 이름을 관세음으로 하리라.”는 말씀까지 들었을 정도입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이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리던 왕이 있었습니다. 왕에게는 아주 현명한 대신이 있었는데 이 대신에게 아들이 태어났지요. 그런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공경했고, 심지어 하늘의 신들도 아기에게 공손하게 절을 올리며 갖가지 귀한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복을 타고 난 아이에게 보물창고라는 뜻을 지닌 ‘보장(寶藏)’이란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대신의 아들 보장은 출가해서 부처가 되었는데 세속 이름 그대로 ‘보장부처님’이라 불렸습니다.

보장부처님은 세상 곳곳을 다니며 교화하시다가 자신의 고향에 이르렀습니다. 보장부처님이 오셨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술렁거렸습니다. 현명한 대신은 왕을 부처님이 계신 숲으로 인도했습니다.

왕에게는 착하고 현명한 아들이 천 명이나 있었는데 왕과 천 명의 아들들은 부처님을 뵙고 기쁜 마음에 절을 올리고 온갖 귀한 것을 공양 올렸지요. 이들은 먼저 석 달 동안 공양을 올리겠다고 약속을 했고, 석 달의 공양을 마친 뒤에는 다시 7년의 공양을 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일은 아주 큰 복을 짓는 일입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보시하면 언젠가는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는 큰 연(緣)을 맺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왕과 천 명의 왕자들이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는 모습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현명한 대신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공양을 올리는데 이들은 어떤 과보를 바라고 있는 걸까?’

그리하여 깊은 선정에 들어 저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토록 마음을 다해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면서도 바라는 바는 고작해야 다시 왕이 되고 싶다거나, 큰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음 생에도 왕이 되거나 천상의 신이 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생이 끝나면 그 다음 생은 또 어찌될까요? 대신은 다시 깊은 선정에 들어서 왕과 왕자들의 다음 생, 그 다음 생, 또 그 다음 생을 살펴봤습니다. 대신은 경악했습니다. 어쩌다 좋은 곳에 태어나더라도 욕심과 성냄의 그물에 걸려서 죽고 죽이고 괴로움과 원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기만을 바라겠습니까?

그 좋은 곳도 결국은 무상(無常)하기 짝이 없는데 말이지요.

왕과 천 명의 왕자들은 그런 무상함의 이치를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다음 생에도 좋은 곳에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서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정에서 깨어난 대신은 왕과 왕자들에게 간곡하게 요청했습니다.

“모쪼록 덧없는 목숨을 자꾸 받으려 하지 말고, 가장 훌륭한 과보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겠다는 마음을 내셔야 합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부처님의 완전한 지혜[正等覺]를 가리킵니다. 착한 일을 할 때면 당연히 어떤 과보가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이 선업으로 제가 훗날 부처님의 지혜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바람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천태종 인천 황룡사 보문전에 모셔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왕은 대신의 권유를 받고서 말했습니다.

“대신이여, 그대의 말대로 하겠소. 나는 이 선업으로 먼 훗날 부처님의 지혜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싶소.”

그러자 대신이 다시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그렇다면 어떤 부처님 나라를 세우시겠습니까?”

참 이상하지요? 갑자기 부처님 나라를 세운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부처님이 되겠다는 말은 자기가 나라 하나를 세우겠다는 말과 통합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 나라, 즉 불국토를 세워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과 동물들을 모두 교화해서 그들도 부처님이 되겠다는 마음을 내도록 인도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왕은 어떤 나라를 세워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대신에게 말했지요.

“잠시 궁궐에 가서 고민해보겠소. 그러고 나서 부처님께 말씀드리겠소.”

대신은 이어 첫째 왕자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첫째 왕자의 이름은 ‘불순(不眴)’입니다. 이 이름은 눈을 깜박이지 않는다는 뜻인데, 부처님을 우러러볼 때 너무나 깊이 존경하는 까닭에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부처님을 응시한다는 뜻입니다.

첫째 왕자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얻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냈습니다. 그리고 부왕처럼 자신도 장차 어떤 부처님 나라를 세울 것인지는 궁궐로 돌아가 조금 더 생각해보고 말하겠다고 했지요. 둘째 왕자, 셋째 왕자 …… 천 번째 왕자까지, 그리고 그밖에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며칠이 흐른 뒤 왕과 천 명의 왕자들은 다시 대신의 안내를 받아 보장부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부처님, 앞으로 제가 세울 부처님 나라는 늘 즐겁고 행복한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은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니 제가 장차 부처님이 되어 세울 나라는 그런 괴로움이 하나도 없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이뤄지고 사람들 심성도 맑고 깨끗한 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맑고 깨끗한 나라에서 중생들을 교화하겠다는 바람을 말씀드렸는데 단 한 사람, 첫 번째 왕자 불순은 달랐습니다. 그는 뜻밖에도 이렇게 서원을 말했습니다.

“부처님, 제가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보니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인간과 하늘에 살고 있는 중생들은 그만큼의 괴로움은 없지만 마음이 어지럽고 번뇌가 많아 자주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중생들이 그릇된 사람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바른 이치에서 멀어지고 착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째 왕자는 거듭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이제 제가 서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쌓았거나 지금 쌓고 있거나 앞으로 쌓을 온갖 복으로 저는 부처님 지혜를 얻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살이 되어 수행할 때 괴롭거나 두렵거나 의지할 이 없고 기댈 곳 없어 힘들어 하는 누군가가 저를 생각하고 제 이름을 부른다면, 제가 하늘의 귀[天耳]로 듣고 하늘의 눈[天眼]으로 살펴서 그의 괴로움을 없애 주겠습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저는 부처님 지혜를 얻지 않겠습니다.”

첫째 왕자의 서원을 들은 부처님은 이렇게 답하셨지요.

“그대가 세상을 향해 커다란 슬픔을 일으켜서 온 생명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번뇌를 끊어주고 그들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하겠다고 말하였구나. 이제 그대 이름을 ‘관세음’이라고 하리라.”(<비화경(悲華經)>)

이렇게 해서 첫째 왕자는 ‘세상의 소리[世音]를 살펴본다[觀]’는 의미를 담은 ‘관세음’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는 온갖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즐거움에 젖어 유쾌하게 터트리는 웃음소리가 있는가 하면 힘들어서 내지르는 비명소리, 너무 힘들어 제대로 지르지도 못하는 신음소리도 있습니다. 첫째 왕자 불순은 그 모든 소리를 듣고 그런 세상을 살펴서 그들을 구해주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마음을 갸륵하게 여겨 붙여준 이름이 바로 ‘관세음’인 것이지요.

밀양 표충사 천수천안관음보살도. 1930년 작.

너무 힘들 때 참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힘들다고 해봤자 누가 도와주겠느냐’고 지레 포기하거나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너무 힘들 때 기억해야 할 이름 하나만 붙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두루두루 세상을 살피신다는 관세음보살님.

그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잘 기억했다가 힘들 때면 불러보십시오. 괴로움도 두려움도 번뇌도 사라지고 평안과 행복을 얻고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고 <비화경>에서는 일러주고 있으니까요.

이미령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 북 칼럼니스트이다. 현재 BBS불교방송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이미령의 명작산책> 등이 있다. 또 <직지>, <대당서역기> 등 많은 번역서가 있다.

글 · 이미령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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