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호

<삽화=전병준>

한 영감이 한밤중에 혼자서 밤낚시를 갔더란다. 그날 밤 이상하게 고기들이 입질을 잘해주었다. 낚시를 던지면 물고, 그것을 끌어올려 구럭에 담고 또 던지면 물었다. 크기가 팔뚝만한 물고기들이었다. 어깨와 팔이 뻐근해지고 옆구리가 아리도록 고기를 끌어올렸다. 짐작에 한 아흔아홉 마리 잡은 듯싶었으므로, 잠시 허리를 펴고 쉬면서 고기구럭을 넘겨다보았다. 그런데 고기가 한 마리뿐이다. 영감은 깜짝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뱃머리에 걸터앉은 시꺼먼 도깨비가 히히히 웃었다. 순간 영감은 이때껏 도깨비한테 우롱을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마리 잡아 구럭에 담아 놓으면 그 고기를 슬쩍 가져다가 낚시에 꿰어주곤 한 것이다. 아흔 여덟 번이나 그 짓을 한 것이다. 도깨비는 팔다리가 한 없이 길다고 하지 않던가? 영감은 벌떡 일어나 도깨비한테 덤벼들며 말했다.

“너 이 자식 나한테 죽어봐라.”

도깨비가 달아나며 말했다.

“너무 화내지 마라, 그 동안 행복했지 않으냐? 한 마리나 아흔아홉 마리나 그것이 그것이니라.”

할아버지가 한 이야기 중 평생 동안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이 도깨비 이야기이다.

나는 이 내용을 이야기 시로 발표한 바 있다. 가끔 강연할 때 이 이야기를 인용하기도 한다. 나는 어린 시절에 동화 한 편 읽지 않았지만, 시인과 소설가가 된 것은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사랑방은 늘 마을 사람들과 이웃집 노인과 나그네가 들끓었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몰려들었고, 이웃집 노인은 잘 자리가 없어 오신 것이고, 나그네들은 뜨내기 품꾼들이거나 행려 장사들이었는데 하룻밤 묵어가려고 찾아온 이들이었다.

나는 그 틈에서 잠을 자곤 했다. 겨울철 내내 방은 설설 끓었다. 머슴이 소죽을 끓이는 김에 장작불을 깊이 지펴놓은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먼저 이야기 하나를 하고 나서 나그네들에게 이야기를 시켰다. 나는 잠들지 않고 귀를 쫑그리고 들었다. 밤 깊도록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한 젊은이가 과거를 보러가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인가를 찾아가야 하는데 지쳐 더 걸을 수 없었다.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있는데,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파르스름하게 깜박거리는 불빛이 있어 그곳으로 찾아갔다.

작은 초옥인데 하얀 소복차림의 젊은 여인이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다. 젊은이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 여인에게 간절하게 청했다.

“저는 과거를 보러가는 사람인데 하룻밤 묵어가도록 허락을 해 주십시오.”

뜻밖에도 소복한 여인은 젊은이에게 엎드려 절을 하고 나서 그를 방으로 들이고 말했다.

“그렇잖아도 제 시아버지께서 아무 날 아무 시에 한 젊고 준수한 과객이 오시리라 예언하시고 출타를 하셨사옵니다. 어서 오십시오, 나으리.”

여인은 발 씻을 물을 가져다주었고, 젊은이가 소세(梳洗)를 하고 발을 씻고 나자 밥상을 들여 주었다.

젊은이는 배가 고팠으므로 달게 먹었다. 여인은 아랫목에 젊은이의 잠자리를 펴주고 나서 자기는 윗목에 앉은 채 바느질을 했다. 피곤하던 차이므로 젊은이는 누었고, 오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잠결에 젊은이는 자기의 품속에 들어 있는 여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혼곤(昏困)한 김에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날이 밝았으므로 젊은이는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하룻밤 묵은 작은 초옥과 그와 사랑을 나눈 젊은 여인은 온 데 간 데 없고, 그는 자그마한 무덤 앞의 상석 옆에 누워 있었다.

요즘 들어서 나는 이야기의 힘을 생각한다.

내가 쓴 소설 중에 중편소설 <폐촌>이 있다. 엄혹한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쓴 소설이다. 당시 반미 감정을 드러낸 소설을 쓰면 반공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갔다. 한 소설가는 <분지>라는 소설을 썼다는 죄로 오랜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내 소설에는 밴강쉬와 미륵례라는 두 거구의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운명적으로 부부로 살아야 마땅한 거구들이다. 밴강쉬는 <변강쇠타령>에서 차용해온 인물인데, 아버지와 형들이 남로당에 가담했다가 죽었고, 미륵례는 오빠들이 경찰 노릇을 하다가 인민군에 의해 죽은 인물이다.

이념 대립과 갈등으로 서로 원수가 된 두 인물은 각기 다른 사람들과 결혼을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한다.

마침내 미륵례는 외지로 시집을 갔다가 소박을 맞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그녀는 커다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와서 산다. 밴강쉬는 둘 사이의 화해 요인인 그 개를 제거하고 미륵례하고 합방을 한다는 설정이다. 이 소설에서 개는 깊은 의미를 지니는 신화적이고 야만적인 설정이다.

이 소설은 비극적인 분단 상황과 그것의 극복과 화해 문제를 상징적 · 함축적으로 그렸다. 내가 지금 이야기 하려는 것은, 이 소설을 쓰는데 활용한 개를 어디에서 가져왔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가져왔다.

<삽화=전병준>

아득한 옛날 산적의 괴수가 부하들을 이용하여, 한 나라의 권력 실세인 정승의 아리따운 무남독녀 딸을 납치해갔다.

정승은 포졸들을 풀어 산적을 공격하고 딸을 구해내려고 들었다. 산적 괴수는 지략이 출중하고 무술에 능할 뿐 아니라 신출귀몰 했다. 또 날쌔고 힘이 세고, 칼 잘 쓰는 부하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어서, 포졸들은 산에 들어가면 다 죽어 돌아오지 않았다. 정승은 마침내 임금에게 고하고, 군졸들을 산으로 들여보냈다. 군졸들은 한 달여를 산적들과 싸웠지만 패했고, 나라가 기울 지경이 되었다. 그렇지만 정승은 딸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방문(榜文)을 붙였다.

“산적의 괴수에게서 내 딸을 구해온 자에게는 내 재산의 절반을 주고 사위로 삼겠다.”

그런지 오래지 않아 납치되었던 딸이 돌아왔다. 수척하기는 했지만 몸이 상하지는 않은 듯싶었다. 그런데 수상했다. 딸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송아지만한 개 한 마리가 치마를 물고 온 것이었다. 개는 당시의 재래종이 아니고, 요즘의 셰퍼드 모양새였는데, 털 색깔이 거무스레하고 다리가 길었다.

정승은 집사에게 명했다.

“저 개에게 고기와 밥을 넉넉히 주어 보내라.”

집사는 하인들을 시켜 개를 융숭하게 대접했다. 개는 주는 밥을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고 정승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집사가 하인을 시켜 개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지만 개는 옴짝달싹도 하지 않은 채 서서히 꼬리만 흔들고 있었다.

개의 얼굴에는 미묘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집사는 하인들에게 몽둥이를 들고 개를 쫓아 보내라고 명했다. 하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며 몰아내려고 들었는데, 개는 간단히 껑충 뛰어 피하고 하인들이 몽둥이를 놓치게 했고, 다시 미묘한 웃음을 지은 채 꼬리를 흔들어댔다.

집사는 정승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정승은 문제의 개가 보통 개가 아니란 사실을 알아챘다. 산적의 괴수를 물어죽이고 딸을 구해온 개가 아닌가? 그 개는 ‘산적에게서 내 딸을 구해온 자에게는 내 재산을 반분하고 사위로 삼겠다.’는 방문을 보고 딸을 구해 온 것은 아닐까?

며칠 고심한 끝에 정승은 개를 딸의 방으로 들여보냈다.

개와 딸은 아무런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정답게 잘 지냈다. 딸의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고, 개의 낑낑거리는 소리도 새어 나왔다.

그런 지 한 달포 뒤에 딸에게는 태기가 있었고, 여러 달 뒤에 순산을 했다.

그 아기는 남자 아이였는데, 머리털과 눈동자는 놀놀하고, 코는 매부리코였고, 키가 헌칠했다.

“그 사람이 바로 서양 사람들의 시조였단다.”

하고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150센티가 채 안될 만큼 몸이 왜소하고 허약했으므로 글만 읽었고,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일찍이 홀아비가 되었는데 농사도 모르고 장사도 몰랐다.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인 나의 할아버지에게 살림살이를 물려주지 않고, 당신의 손자인 내 아버지에게 물려주었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젊어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서당훈장 노릇을 하고, 늙어서는 벗들하고 어울려 풍월(風月)만 읊고 살았다. 시 짓고 술 마시고 노래하듯이 글 암송하고…….

나의 증조할아버지에게서 살림살이를 물려받은 아버지는 농사도 짓고, 어업도 하고, 장사도 하여 살림을 늘렸다. 나의 할아버지는 어려서는 어머니 ·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타 썼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들에게 용돈을 타서 쓰고, 사랑방에서 서당을 열어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살았다.

아버지는 현실적이고, 할아버지는 비현실적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현실적인 삶과 비현실적인 삶 사이에 놓여 있었다.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삶과 비현실적인 삶 사이에 놓여 있는 시인과 소설가의 삶에 대해 그리스의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는 이렇게 말했다.

“한심한 영혼아, 너는 돈을 주고 빵과 고기와 포도주를 사 먹지 않고, 하얀 종이를 꺼내 빵 · 고기 · 포도주라고 쓰고 그 종이를 먹는구나.”

할아버지는 종이에 모든 것을 써서 먹고 마시는, 그렇게 비현실적인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잘 했다. ‘토끼전’, ‘심청전’, ‘춘향전’, 〈삼국지〉, ‘호랑이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지네 귀신 이야기’, ‘간사한 여우 이야기’, ‘토끼와 두꺼비와 거북이 이야기’, ‘과거 보러가다가 여자 귀신한테 홀린 남자의 이야기’ …….

비현실적인 삶을 사신 그 할아버지께서 들려준 이야기들은 지금도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한승원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소설 원효〉, 〈초의〉, 〈다산〉 등 다수의 소설을 쓴 이 시대의 대표 소설가다. 고향 율산마을에서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한 작품을 써오고 있다. 현대문학상 · 한국문학작가상 · 이상문학상 · 대한민국문학상 · 한국소설문학상 · 한국해양문학상 ·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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