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만세 운동
불교도가 당당 주체
오늘날 제 역할 찾자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삼일절 노래/ 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

오늘이 ‘3·1만세운동’ 100주년이고,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데, 우리 절집은 이렇게 적막하고 우리 불교도들은 아무른 감흥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무심히 ‘삼일절 공휴일’로 넘기는 것일까? 전국의 수천 개 사찰 가운데 몇 곳에서나 이 날을 기념하고 있을까? 기념법회를 열어 33인을 비롯한 선열들과 동포들을 추모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찬탄하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수호 결의를 다짐하고 있을까? 이날만이라도 절도량에 태극기를 드높이 게양하면 안 될까?

우리는 우선 명칭부터 분명히 하고 의의(意義)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흔히 ‘삼일절’이라 칭하고 ‘3·1독립운동’이라 규정하고 있다. 최근에서는 망국적인 좌우 진영논리가 횡횡하는 가운데 ‘3·1운동’을 ‘혁명’운운하면서 계급적 운동으로 규정하려는 일부 시도도 엿보이고 있다. 그러나 삼일독립운동은 본질적으로 삼천만 동포들이 순수일념으로 일어선 ‘만세운동’이다. ‘대한독립만세’로 시작해서 ‘대한독립만세’로 번져가고 ‘대한독립만세’로 회향된 평화적인 ‘3·1만세운동’이다.

이후에 각처에서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무장 독립군전쟁으로도 발전했지만 ‘3·1만세운동’ 그 자체는 비폭력(非暴力) 평화운동으로 전개된 것이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쓴 ‘독립선언문’ 말미에 만해 한용운 스님이 직접 쓴 ‘공약삼장’에서 ‘어디까지나 질서를 존중하고 폭력으로 치닫지 말 것’을 명확히 선포하고 있다.

‘3·1만세운동’은 우리 불교도가 당당 주체였다. 결코 추종자가 아니었다. 33인 가운데 천도교, 기독교 인물이 다수고 불교는 만해ㆍ용성 스님 두 분만 외롭게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소수의 추종자라고 판단하면 큰 착각이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만세운동을 실제로 기획하고 준비한 실무자는 천도교의 최린 선생과 만해 스님이다. 두 분은 동경 유학 때부터 친구로서 뜻을 같이해왔고, 이런 인연으로 천도교가 후원하는 만세운동에서 발로 뛰면서 전국을 다니면서 유교, 기독교 인사들을 섭외하고 뜻을 함께 모은 것이다.

천주교는 일제와 협력하는 로마 교황청의 지시로 일체 외면했고, 이상재 선생을 비롯한 서울 기독교계가 독자적 행보를 내세워 참여하지 않자, 만해 스님이 평양 이승훈 선생을 찾아가 서북지방의 기독교계가 대거 참여하게 된 것이다.

만세운동 당일, 태화관에서 33인을 대표하여 기념사를 한 것도 만해 스님이다. 용성 스님도 도장만 맡기고 따라 간 것이 아니고, 만세운동의 불교계 전파에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평생을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만해 스님, 용성 스님이 그립다. 좌파·우파 진영싸움으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져 온 국민이 혼란 속에 있는데, 진영을 드나들며 한 동포로, 한 나라로 화해시킬 수 있는 것은 우리 불교뿐인데, 지금 우리 불교도는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하여 고민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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