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스님이 만년을 보내며 독립운동을 펼친 서울 성북동 심우장 전경. <사진제공=문화재청>

문화재청 “독립운동 정신 기리는 장소”
독립운동가 유물 등록문화재 지정 예고도

만해 한용운 스님이 짓고 만년을 보내며 항일독립운동을 펼친 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이 사적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2월 12일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문화유산인 ‘만해 한용운 심우장’을 사적으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심우장은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이 1933년에 건립해 만년을 보낸 한옥이다. 문화재청은 “심우장은 한용운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과 애국지사들과의 교류 등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측면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심우(尋牛)’는 소를 사람에 비유해 ‘잃어버린 나를 찾자’라는 의미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심우장은 집의 좌향(坐向, 집이나 묘가 자리하고 있는 방향)을 총독부 방향을 피해 동북방향으로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만해 스님의 독립의지를 엿볼 수 있는 집으로, 전반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문화재청은 또 이봉창 의사(1900~1932)와 관련된 유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백범 김구 선생에게 보낸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 3건을 등록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처단하고자 하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선서문으로 이봉창 의사의 대표적인 항일투쟁 유물이다. 이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에 김구 선생이 이봉창 의사를 안중근 의사의 아우인 안공근(安恭根) 집으로 데려가 선서식을 거행하고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는 1931년 12월 24일에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한 것으로, 의거실행을 ‘물품이 팔린다’라는 대체 용어로 약속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1931년 12월 28일에 김구 선생이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도쿄에 있는 이봉창 의사에게 의거자금 100엔을 보낸 송금증서다. 이는 이봉창 의사가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일본 국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의거의 전개과정과 항일독립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봉창 의사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에 기폭제가 됐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독립운동 전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역사적인 사건이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ㆍ등록할 예정이다.

한편 ‘인제성당’과 ‘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춘천수련소’는 이번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봉창 의사 선언문. <사진제공=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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