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시대에
가장 큰 덕목은
용서·인내하는 ‘포용’

인간 사회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요즘 뉴노멀(New Normal), 즉 새로운 정상이란 개념이 등장하였다. 그동안의 정상은 비정상과 대치되는 개념이었다면, 지금의 뉴노멀은 상상력이 발동되는 무한ㆍ무경계ㆍ무제한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제약이 있는 것이 뉴노멀의 반대어인 셈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호킹은 인류의 미래는 상상력에 달려있다고 했다. 지구는 자원이 고갈되어 땅을 파도 해저를 아무리 뒤져도 얻을 것이 없다. 이제 노동력으로 자본을 만들던 시대는 가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90% 이상의 잠재력으로 무장된 두뇌를 써야 자본이 확보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과학의 힘으로 세상을 점점 크게 확장시켜왔다. 그래서 결국 우주 중심의 시대까지 이르렀다. 새해 벽두에 중국 달 탐사선이 달 뒷면 착륙에 성공하여 앞으로 우주 시대가 빠르게 전개될 전망인데, 이 우주 시대를 연 우주 과학의 역사 속에 장애인 과학자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우주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담긴 인공위성 발사에서 소련이 미국을 앞지를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의 시각장애인 수학자 폰트랴긴이 최적제어 이론을 연구해냈기 때문이다. 이것을 로켓제어 이론으로 발전시켜 실패 없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폰트랴긴의 연구는 1952년에 완성되었는데 미국은 1960년대 후반에야 이 최적제어 이론에 기반한 제어기법으로 아폴로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우주 탐험의 단초를 마련한 과학자는 러시아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로, 그는 청각장애인이었다. 1865년에 발표된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읽고 우주여행을 꿈꾼 소년은 그로부터 33년 후 ‘로켓에 의한 우주 공간의 탐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로켓이론을 완성해서 우주선 발사 기술의 토대를 세운 우주공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우리 인간에게 무한 공간을 선물해준 호킹도 루게릭병으로 온몸이 마비되고 음성까지도 낼 수 없었던 중증장애인이었다. 이렇듯 장애인 과학자 덕분에 인간은 우주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800년대 후반에는 장애인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연구하며 인간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왔건만 2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장애인은 소외계층으로 살고 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애 때문에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비정상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장애가 있다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은 뉴노멀시대에는 수치스러운 행위가 되어야 한다. 뉴노멀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은 바로 불교의 세계관이다. 범아일여(梵我一如), 즉 우주와 내가 하나라는 것이다. 내 마음이 우주만큼 넓다는 뜻인데 요즘 우리의 모습은 우주가 되기엔 너무나도 작다. 네가 틀렸다고 네가 나쁘다고 서로 다투고 공격하면서 폭로에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뉴노멀시대의 가장 큰 덕목은 포용이다. 포용은 용서와 인내하는 과정이다. 용서는 넓은 마음에서 나오며, 인내는 지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용서와 인내는 인성이 좋고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포용을 할 줄 모르면 뉴노멀시대에서 인정받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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