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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불교인의 삶과 신앙7_스리랑카매월 음력 보름 '포야데이'에 팔계(八戒) 지키며 금욕
  • 글 · 사진 김선겸
  • 승인 2019.01.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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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불탑인 다게바. 싱할라어로 ‘다게바’는 우리나라의 불탑을 의미한다.

상좌부불교의 종주국
매월 음력 보름 ‘포야 데이’에
팔계(八戒) 지키며 금욕

스리랑카는 인도의 동남단에 위치한 섬나라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인도양의 한복판에 위치해 예로부터 해양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극찬했고, ‘신밧드의 모험’에서 신밧드가 보석을 찾아 떠난 섬 세렌디브가 바로 이곳이다. 진귀한 보석과 아름다운 해변,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어 ‘인도양의 진주’란 애칭으로 불려왔지만 불자들에게는 불교왕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불교는 종교 이상이다. 그들에게 불교는 역사이자 문화이고 삶의 일부이다. 스리랑카의 역대 왕조들이 모두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왔기에 불교는 자연스레 스리랑카의 역사와 같이해 왔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스리랑카의 예술과 문화, 건축, 전통 등이 대부분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처럼 스리랑카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불교의 영향을 받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 국민의 70% 이상이 불교 신앙

스리랑카는 오늘날 다종교 국가이지만, 국민의 70.2% 정도가 불교를 신앙한다. 주로 다수 민족인 싱할라족이 여기에 해당한다. 힌두교도는 12.6%로 주로 타밀족이다. 그 외 이슬람교도 9.7%, 가톨릭이 6.1% 등이다. 불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스리랑카에서 불교의 권위와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국가는 불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장려한다. 

불교 역사에 있어서도 스리랑카는 중요한 국가 중 하나다. 기원전 3세기 인도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스리랑카는 인도보다 더 화려하게 불교의 꽃을 피우며, 동남아시아에 불교를 전파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스리랑카를 통해 남방으로 전래된 불교는 지금까지도 동남아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리랑카가 남방 상좌부 불교의 고향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스리랑카에는 약 6,000개의 사원에서 15,000명에 달하는 승려가 생활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48년 인도 아소카왕의 아들인 마힌다(Mahinda) 스님이 승려 4명과 함께 스리랑카로 건너왔다. 이후 불교는 스리랑카의 사회와 경제, 정치 및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까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폴론나루와 불치사 유적에 남아 있는 불상.

스리랑카 불교인들은 카르마와 죽음과 윤회를 믿으며 살아간다. 그들의 삶은 대체로 단순하지만 독실한 신자들은 육식을 멀리하고, 고통과 욕망 또는 자아의식이 없는 초월적인 상태인 ‘니르바나’를 추구하기도 한다. 스리랑카 재가불자들이 생각하는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도덕적인 행동이다. 선한 마음을 갖고, 세상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 측은지심을 갖는 것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기초단계라고 믿는다. 그래서 스리랑카의 불자들은 선업을 쌓기 위한 적선과 공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간다.

얼마 전 경북 군위의 화재현장에서 독거노인을 구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우리나라 영주권을 받게 돼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기사의 주인공인 니말 씨의 행위는 공덕을 쌓기 위한 스리랑카 불자들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니말 씨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평소에도 사원에서 기도하고,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이처럼 불교적 가치관이 몸에 밴 스리랑카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길에서 눈을 마주치면 낯선 이방인에게도 달덩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타생지연(他生之緣)의 깊은 뜻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일상에 불교적 생활이 녹아 있어 스리랑카 재가불자들이 생활 속에서 예경을 올리는 대상은 사원 외에도 탑과 보리수나무 등이 있다. 이들은 집집마다 조그만 불상을 모셔 놓고 있다. 매일 새벽, 이 불상에 예불을 모시고, 그 앞에 공양물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향 · 등 · 꽃 · 과일 · 차 · 쌀 등 여섯 가지 공양물을 부처님 전에 올리는 육법공양(六法供養)은 스리랑카 불자들에게 기본적인 일상이다.

아누라다푸라의 사원유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스님들.

스리랑카 어느 사원을 가더라도 육법공양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자들의 경우에는 사원의 건축비나 수리 비용 등을 보시하기도 한다. 사원을 찾아가서 하는 공양 외에도 가족의 탄생이나 죽음, 집이나 건물을 지었을 때와 같은 중요 행사 때도 스님을 초청해 음식 · 가사 · 공물(供物)을 공양한다. 스님들은 답례로 고대 팔리어 불경의 보호 게송인 삐릿(pirit)을 암송한다. 삐릿은 상좌부 불교국가에서 매우 인기 있는 의례로 불자들은 삐릿이 안락함과 가족의 평안함을 주고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믿는다. 삐릿은 고대 팔리어로 전해오기 때문에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위험으로부터 불자를 지켜주는 특별한 게송이기에 스리랑카에서는 스님이 아닌, 재가불자 중에서도 드물지 않게 암송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스리랑카 불교유적의 보고인 담불라 석굴.

이밖에 보리수와 불치사리(佛齒舍利)에 대한 숭배도 스리랑카 불자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특히 아누라다푸라의 스리마하보디사원에 있는 보리수나무와 캔디의 불치사리에 대한 숭배는 스리랑카 불교인들에게 의무와도 같다.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나무는 기원전 3세기경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인도 보드가야의 보리수 묘목을 아쇼카 왕의 딸로 비구니가 된 상가밋따 스님이 들여온 것이다. 무려 2300년 넘게 존재해 온 이 보리수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기도 하다.

3세기 이후 스리랑카의 불교인들은 이 보리수를 살아 있는 부처님을 섬기듯 귀하게 여겨왔다. 오늘날 스리랑카 전역에서 보리수나무는 특별한 상징이 되어 성물처럼 여겨지는데, 이는 모두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는 스님과 신도들에 의해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스님과 신도들은 매일 보리수에 물을 주고, 주변을 청소하고, 공양물을 올린다. 순례자들 또한 코코넛 오일을 비롯해서 꽃 · 우유죽 · 과일 등을 이 보리수에 공양하고, 주위를 돌며 기도를 한다.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중 하나로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 나무를 살아 있는 부처님을 모시듯 귀하게 여긴다.

스리랑카 불자들에게 있어서 이런 의식은 매우 큰 가치를 가진다. 스리랑카에서 보리수 숭배는 사원이나 불탑을 참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 이유는 보리수가 부처님과 그의 깨달음의 상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누라다푸라 보리수와 더불어 불치사리는 스리랑카 불자들에게 성보(聖寶)로 꼽힌다. 심지어 불치사리가 모셔져 있는 캔디의 불치사는 스리랑카 불자들에게 정신적 고향으로 불릴 정도다. 불치사는 스리랑카에서 불교인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꼭 참배해야하는 성소다. 이슬람교도가 평생에 한 번은 메카의 성지순례 의식에 참가해야 한다고 믿는 것과 같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훌륭한 석불 중 하나인 길 비하라.

본래 불치(佛齒)는 싱할라 왕조의 첫 번째 수도인 아누라다푸라에 있다가 폴론나루와를 거쳐서 캔디로 옮겨졌다. 싱할라 왕조에서 불치는 왕권의 상징이었고, 불치가 봉안된 곳은 곧 왕국의 수도였다. 따라서 수도를 옮길 때마다 불치가 옮겨졌고, 결국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던 캔디에 모셔지게 된 것이다. 불치는 캔디 불치사의 2층 법당에 모셔져 있다. 불치사는 새벽부터 황혼 무렵까지 개방하기 때문에 비교적 참배가 자유롭다. 하지만 불치가 모셔져 있는 법당은 하루에 세 번 푸자(Puja) 의식을 행할 때만 열린다. 푸자 의식이 열릴 때는 법당 안팎이 스리랑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순례자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캔디의 불치사로 들어가는 내부.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불치사를 순례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 국경일 ‘포야 데이’는 성찰의 날

스리랑카 사람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씩 특별한 휴일이 찾아온다. 바로 ‘포야 데이(Poyaday)’다. ‘포야’는 싱할라어로 보름달을 뜻하며, 스리랑카 달력으로 매월 음력 15일에 해당한다. 포야 데이는 국가공휴일이다. 이날 스리랑카 불교인들은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연등을 내걸고, 흰옷을 입고 불교 사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스님들로부터 법문을 듣는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포야 데이는 계율을 지키고,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는, 금욕과 참회의 날이다. 평소에도 스리랑카 불교인들은 ‘살생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와 같은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이를 ‘판 실(Pan Sil)’이라고 한다. 그런데 포야 데이에는 이 다섯 가지 계율 외에도 ‘높은 자리에 앉거나 눕지 말라.’, ‘가무를 즐기지 말라.’, ‘때가 아닐 때 음식을 먹지 말라.’와 같이 절제와 관련된 세 가지 계율을 더 지킨다. 이것을 ‘아타 실(Ata Sil)’이라고 한다.

스리랑카 불교인들에게 중요한 성지 중 하나인 아담스피크 정상의 사원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즉, 스리랑카 불자들에게 포야 데이는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점검하는 소중한 시간인 셈이다. 그래서 포야 데이에는 고기나 술의 판매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평소보다 더 육체의 욕구를 절제하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부처님의 깊은 가르침을 생각하자는 취지에 국가와 국민이 일심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사실 포야 데이는 모두 부처님과 관련이 있는 날이다. △부처님이 스리랑카를 첫 번째 방문한 날 △부처님의 탄신일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된 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날 △제1차 경전 결집을 기념하는 날 △스리랑카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보리수가 인도에서 아누라다푸라에 옮겨진 날 등이 매달 포야 데이와 맞물려 있다.

스리랑카에서 포야 데이는 일 년 열두 달 모두 중요하다. 이 중에서도 5월의 웨삭 포야, 6월의 포손 포야, 7월의 에살라 포야는 특히 중요하다. 웨삭 포야는 부처님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4월 8일을 부처님의 탄신일로 기념하지만, 상좌부 불교권에서는 달이 꽉 차는 5월 보름날을 탄신일로 기념한다. 이날을 상좌부 불교권에서는 부처님이 탄생한 날인 동시에 깨달음을 얻은 날이자 열반일로 기념하고 있다. 즉, 탄생과 깨달음, 열반이 같은 날로 보는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유엔(UN, 국제연합)에서도 이날은 ‘붓다의 날’로 공식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포손 포야는 마힌다 스님에 의해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은 불교가 처음 전래된 아누라다푸라와 미힌탈레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린다. 이날 불자들은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를 찾거나, 마힌다 스님이 데바님피야 티샤 왕을 만나 불교를 전파했다는 미힌탈레 산에 올라 예불을 하고 공양물을 올린다. 에살라 포야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인도의 사르나트에 도착해서 다섯 명의 고행자에게 최초의 가르침을 설한 것과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스리랑카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렇게 포야 데이에는 스리랑카 사람들의 삶속에 깊이 스며든 불교의 정취를 흠뻑 만끽할 수 있는 날이다. 가정이나 길거리에는 불법승을 상징하는 등인 쿠두(Koodu)가 걸려 있고, 화려하게 치장한 코끼리의 거리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또한 불상 앞은 공양된 연꽃으로 장엄되고, 사원은 꽃과 공물을 공양하려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폴론나루와 왕조 시절에 부처님의 불치가 모셔져 있던 와떠다게 유적.

포야 데이에는 종교행사뿐만 아니라 자선행사도 곳곳에서 이어진다. 불자들은 단사라스(dansälas)라 불리는 노점 진열대를 만들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음료와 먹을거리를 무료로 제공한다. 사원이나 복지재단에 기부를 하는 일 또한 평소보다 빈도가 훨씬 높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 차례나 방문했다고 전해지는 나라, 스리랑카. 근대 서구 열강의 침탈을 받았을 때는 스님이 한 명도 남지 않았을 정도의 처참한 법난(法難)을 겪기도 했지만, 이웃 불교국가들의 도움으로 명맥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들에게 일 년 열두 달 이어지는 포야 데이는 스리랑카 불자들이 돈독한 불심을 지켜가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 아닐까 싶다. 거리 곳곳을 거닐다보면 낯선 이에게도 선뜻 보내는 환한 미소에 깃든 불심(佛心)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김선겸

 여행작가. 아주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1992년부터 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글과 사진을 기고했으며, 방송과 영상
코디네이터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조르바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색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당신이 몰랐던 아시아>, <프렌즈 스리랑카> 등 다수의 여행서적을 출간한 바 있다.

글 · 사진 김선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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