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귀의한 첫 군주 죽림정사를 보시하다

현재 죽림정사는 죽림이 울창하지 않다.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무덤과 잡초가 무성하다. 사진은 1956년에 복원된 죽림정사 내 연못. 부처님께서 목욕을 했고, 수행자들이 이 연못의 물을 마셨다고 전한다.

10여 년 전, 인근 앙가국을 복속시킨 마가다국은 성세(成勢)를 누리고 있었다.

수도 왕사성의 왕궁, 빔비사라왕의 집무실로 한 신하가 들어왔다. “대왕이시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왕사성 전역에 퍼지고 있습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출현 소식이 놀랍고, 반가웠다.

“우리 마가다국에서 가장 큰 교단을 이끄는 깟사빠 삼형제가 일천여 무리를 이끌고 왕사성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무리 중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는데, 삼형제 중 첫째인 우루웰라 깟사빠가 부처님이라는 소문도 있고, 그보다 한참 젊은 수행자가 부처님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대왕은 신하에게 말했다.

“부처님 일행이 언제쯤 왕사성 인근에 도착할지 알아보라.”

수행자 싯다르타와 만나다

6년 전. 빔비사라왕은 왕궁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자이나교 신자였던 대왕은 탁발을 하는 수행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길 즐겼다. 그런 대왕이 한 수행자에게 눈길을 빼앗겼다. 그 수행자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보였다. 잘 생긴 얼굴에 안색은 평온했고, 걸음걸이는 품위가 있었다. 발우를 든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진중했다. 빔비사라왕은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저기 탁발을 하는 젊은 수행자가 탁발을 한 후 어디로 가는지 조용히 따라가 보아라.”

대왕은 곁에 있던 신하에게 말했다. 신하는 돌아와 그 수행자가 빤다와 산의 동굴에 머물고 있다고 보고했다. 빔비사라왕은 그 수행자가 다른 곳으로 떠날까봐 서둘러 호위병과 함께 빤다와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동굴 앞에 다가가 정중하게 말했다.

“수행자여, 왕사성에서 그대를 보았습니다. 그대의 걸음걸이와 행동 하나하나는 품위가 있었습니다. 그대는 훌륭한 가문의 출신일 것입니다. 그대의 가문을 말해주시겠습니까?”

대왕의 정중한 질문에 수행자는 말했다.

“대왕이시여, 히말라야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부유하고, 용감합니다. 그들은 태양족의 후예로 ‘석가’라는 성(姓)을 씁니다. 저는 이 가문의 출신입니다.”

빔비사라왕은 수행자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마가다국을 다스리고 싶었다.

“수행자여, 그대에게 코끼리를 앞세운 군대와 산과 같은 재물을 드리겠습니다. 이 나라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마가다국을 다스리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수행자는 빔비사라왕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왕이시여, 저는 인간의 비참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쾌락에 대한 욕망을 뒤로한 채 수행자의 길을 걷기로 하였습니다. 수행자가 된 저는 평화로움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평화를 얻기 위해 정진하려고 합니다. 저는 반드시 깨달아 부처가 되어 모든 중생을 제도할 것입니다.”

수행자의 흔들림 없는 모습에 감동한 빔비사라왕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부탁했다.

“만약 그대가 진리를 얻어 부처가 된다면, 부디 이곳으로 와 저에게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가르침을 들려주십시오.”

대왕의 간절한 부탁에 수행자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다

빔비사라왕은 왕사성으로 오고 있는 부처님이 6년 전 빤다와산의 동굴에서 만난 수행자라고 확신했다. 태양족의 후예로 ‘석가’라는 성(姓)을 썼노라던 기품 넘치던 수행자, 그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얼마 후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과 천이백여 명에 달하는 일행이 랏티와나숲에 도착해 머물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대왕은 수많은 대신을 데리고 랏티와나숲으로 향했다. 대왕의 행렬을 본 백성들도 그 뒤를 줄이어 따랐다. 대왕이 랏티와나숲에 도착했을 때 부처님은 숲속 사당에 머물고 있었다. 이 사당은 마가다국과 앙가국 백성들의 성소로, 수행자들이 즐겨 머물던 장소였다.

빔비사라왕은 왕관과 보검을 내려놓고, 황금신발마저 벗었다. 그리고 맨발로 나아갔다. 정면에는 그가 짐작했던 수행자, 6년 만에 정각(正覺)을 이룬 부처님이 앉아 계셨다. 부처님의 옆에는 마가다국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나이 지긋한 우루웰라 깟사빠가 공손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대왕은 주저 없이 부처님 앞에 엎드려 두 발에 입을 맞추고 예배를 올렸다.

신하들과 백성들은 우루웰라 깟사빠가 아니라 젊은 수행자가 부처님이라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부처님은 대왕에게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6년 전의 약속대로 대왕에게 진리에 대해 설하셨다.

부처님은 먼저 보시에 관한 이야기, 계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후 천상에 태어나는 올바른 길에 대해 말씀하셨다. 법문을 듣던 대중들의 마음이 평안해졌을 때 비로소 부처님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설하셨다.

“모든 괴로움은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을 올바로 보고, 괴로움의 실체를 알게 되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대왕과 대왕을 따라온 수많은 신하들과 바라문들, 뭇 백성들도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다. 그리고 참된 법문에 기뻐했고, 그 자리에서 지혜의 눈을 떠 부처님께 귀의했다. 빔비사라왕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이 유일한 진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당신의 가르침은 그 무엇보다 거룩하고 훌륭합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부처님을 의지하고, 삼보를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모든 대중들과 함께 이 제자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죽림정사를 보시하다

다음 날, 부처님과 천 명의 비구들은 발우를 들고 왕사성으로 들어섰다. 백성들은 비구들의 행렬에 꽃을 뿌리며 환영했다. 대왕은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손수 황금주전자에 담긴 물을 따라 주었다. 그리고 부처님과 비구들이 고요히 공양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존귀하신 분이 머무는 곳으로 적당하지 않다. 부처님께 예경하려는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있으면서 낮에는 사람들이 오가지 않고, 밤에는 조용해서 수행을 방해받지 않는 곳이 없을까? 그래, 나의 죽림(竹林)이 적당하겠구나.’

부처님과 비구들이 공양을 마치자 대왕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갔다.

“부처님이시여, 제게 조용한 숲이 있습니다. 그곳을 승단에 바치겠습니다. 제자들과 그곳에 머무십시오.”

빔비사라왕의 말에 부처님은 이렇게 승낙하셨다.

“보시하는 사람은 탐욕을 끊을 수 있고, 인욕하는 사람은 분노에서 벗어나며, 선행을 쌓는 사람은 어리석음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추어 실천하면 해탈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가난해 보시할 수 없더라도 다른 사람의 보시를 칭찬하고 기뻐하면 보시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빔비사라왕의 대중공양을 받은 부처님은 제자들과 죽림으로 향했다.

빔비사라왕이 보시한 죽림은 교단 최초의 도량이 되었다. 부처님이 성도한 해이자, 대왕의 나이 31세 때 죽림정사를 보시한 대왕은 이후 37년 간 승단의 외호자로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노년은 비참했다. 대왕은 수다원과에 올랐지만, 자식을 빨리 얻고픈 마음에 저지른 악행의 업보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들인 아자타삿투 왕자가 데바닷타의 꼬임에 넘어가 모진 고생을 하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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