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집착은 말되 부지런히 살아야 삶 만족도 높아진다

<삽화=박구원>

내시경 검사는 나이가 들수록 두려운 검사 중의 하나이다. 수면내시경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수면내시경을 하다가 죽기도 하고 식물인간이 되기도 한다는 기사를 보면 왠지 찜찜해서 망설여진다. 수면 내시경을 받는 두 집단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있다. A그룹은 20분짜리 수면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처음 10분은 환자를 억지로 고통스럽게 하고, 후반 10분은 의도적으로 편하게 내시경 검사를 했다. B그룹은 반대로 처음 10분은 편하게 검사하고, 나중 10분은 환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검사를 했다. 검사가 끝나고 두 그룹에게 검사가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A그룹의 환자는 ‘괜찮다’, ‘받을 만하다’고 말했고, B그룹의 환자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모두 동일하게 절반이었는데 후반부가 편하면 전반적으로 편하다고 느낀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희곡이 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산다’는 말도 있지만 젊었을 때 고생했더라도 노후가 편하면 인생 전반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젊었을 때 아무리 편했어도 노후가 힘들면 인생 전체가 불행했노라 느껴진다. 100세 시대는 노후가 아주 긴 시기이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할까?

노후에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있다. 한국에서 20대 남녀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남녀 모두 ‘공부 좀 할 걸’이었다. 30대 남녀에게 물었더니 역시 ‘공부 좀 할 걸’이 1위였다. 20대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못 간 것을 후회하며 대학시절을 보내겠지만 30대에 가서도 후회한다니 왜 그럴까? 모든 조건이 동일한 경우, 학벌이 좋으면 봉급도 더 많고 남이 알아주는 직장에 취업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상위권 10개 대학의 졸업생 평균 봉급이 하위권 대학 졸업생 평균 봉급보다 높았다. 게다가 학벌이 좋으면 결혼할 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렇다면 40대는 어떨까? 40대 남녀 모두 여전히 ‘공부 좀 할 걸’이 1위였다. 직장생활을 할수록 학벌이 평생 꼬리를 물고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절감한 탓이 아닐까? 학벌이 좋으면 봉급도 많이 받지만 승진에도 유리하다. 50대 남녀에게 역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남자는 여전히 ‘공부 좀 할 걸’이었는데 여자는 ‘아이 공부 좀 더 시킬 걸’이었다. 사실 여자의 후회는 부모로서 자식을 더 좋은 대학에 보내지 못한 후회로서 자신의 후회가 자식을 통해 투영된 것이다. 만약 공부를 잘해도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고 돈을 잘 벌지 못한다면 이처럼 ‘공부, 공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60대가 되면 어떨까? 남녀 모두 ‘돈 좀 벌 걸’이 1위였다. 미국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가장 후회되는 일 1위는 ‘젊어서 저축 좀 할 걸’이었다. 한국 노인이나 미국 노인이나 은퇴 후에는 돈이 최고라는 것을 절감하고 후회하며 산다.

남녀를 막론하고 노년기의 고민은 1위가 건강, 2위가 경제문제였다. 한국은 자살률 1위의 국가이며, 여성보다 남성의 자살률이 2배 이상 높다.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은 급등하고 남성의 경우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얼핏 생각하면 건강이 돈보다 더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돈이 더 많으면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니 건강은 결코 돈 문제와 유리되어 있지 않다. <녹색평론>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서울대 학생들한테 부모가 언제 죽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63세라고 답했다. 63세가 은퇴해서 퇴직금 남겨주고 바로 죽는 가장 적절한 나이이기 때문이라는데 나이든 사람에게는 가슴이 섬뜩한 현실이다. 서강대 교수가 대학생들, 그러니까 베이비부머의 자녀들에게 ‘아버지한테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돈밖에 없다.’는 답이 40% 이상 나왔다.

부처님은 과연 돈에 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돈이란 더러운 것이니 멀리하라고 하셨을까? 뜻밖에도 부처님은 <별역잡아함경>에서 “벌이 온갖 꽃을 채집하듯이 밤낮으로 재물을 얻으라.”고 설하셨다. 필자는 처음에 이 구절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던 불교 경전의 내용과 너무나도 상충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곧 ‘어쩌다 한 번 말씀하신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전에서 유사한 구절을 반복해서 읽으며 의아해졌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맞는 말 아닌가?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재물을 현재에 가지면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설하셨다. 복을 얻기 때문에 돈이 많으면 좋다는 말은 누구나 실감한다. 노후에 돈이 많으면 편하게 살 수 있으며, 실제 주변 사람들은 복 받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불교를 허무주의적 · 수동적 · 소극적 종교라고 생각하지만 불교를 잘못 이해한 탓이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돈, 돈’하며 집착하면 불교적 삶이 아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대로 열심히 죽는 날까지 돈에 관심을 갖고, 돈을 벌며 사는 것이 불교적 삶이다. <나는 몇 살까지 살까?>라는 저서는 1,200명을 어렸을 때부터 80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결과다. 연구를 처음 시작했던 교수는 평생 연구하다가 제자에게 물려주고 제자는 또 제자에게 물려줘서 80년을 지속했다. 이 연구에 의하면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끊임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았다.

돈에 여유가 있다면, 구태여 일하지 않아도 노후에 편안하게 쓰고 좋은 일하며 보람차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은퇴하고 놀기만 하는 생활이 결코 건강과 삶의 만족도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우리는 새겨들어야 한다. 미국 플로리다의 은퇴촌에 사는 노인의 삶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자식에게 사업체를 물려주더라도 회사에서 청소라도 하며 빈곳이 없나 살피는 게 좋다.

만약 돈에 여유가 없다면 하루 종일 돈 벌려고 고생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돈을 벌면서 죽는 날까지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 부처님의 말씀에도 부합하지만 건강하고 만족스럽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이기도 하다. 설사 돈을 벌지 못할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건강이 허락한다면 자원봉사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윤성식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고려대와 미국 오하이오대 졸업 후 일리노이대에서 석사, UC버클리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또 동국대에서 불교학 석 · 박사를 받았다. 2004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과 국회공직자윤리위원장, 미국 텍사스대학(오스틴) 경영대학원 교수를 맡은 바 있다. 저서로 〈부처님의 부자 수업〉, 〈예측불가능한 시대에 행복하게 사는 법〉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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