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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학 전공하다 진로 변경 “여성 경찰이라 행복해요.”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1(276호)
2018년 12월 19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마친 후 성다혜 경장이 마포경찰서 앞에서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사진=정현선 기자>

서울 마포경찰서 성다혜 경장

“어른이 되어서 어떤 사람이 될래?”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 들어본 질문이다. 대통령, 장군, 과학자 등 나름의 꿈을 표현하면, 어른들은 기특해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질문을 하는 어른이 있을까? 그리고 나름의 꿈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청소년과 청년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역대 최악의 취업난과 고용불안 악화로 청년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가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주된 원인이겠지만, ‘어떤 분야에 흥미가 있고, 어떤 일을 잘하는지’와는 무관하게 명문대, 대기업만을 향해 달리게 한 사회의 업보적 책임은 없을까?

우리 사회에는 타인의 기준에 끌려 다니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도 있다. 행복한 꿈을 향해 한발자국씩 내딛고 있는 사람들,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청년들을 소개한다.

“연락을 받고 긴급 출동했는데, 안타깝게도 20대의 젊은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다 상대방 과실로 사고를 당해 사망하고 말았어요. 제가 접한 두 번째 사망사고였죠. 두 번째는 조금 나을 줄 알았는데, 현장사진을 찍고 피해자 유족들에게 부고 사실을 알리는 과정은 여전히 괴로웠어요. 피해자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더군요. 제가 울면 안 되는데, 피해자 아버님을 만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성다혜 경장(30, 서울 마포경찰서)은 지금까지 6년의 경찰생활 중 가장 힘겨웠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성 경장은 현재 마포경찰서 교통조사계에서 서무업무를 보고 있다. 교통조사계는 교통조사팀과 범죄수사팀으로 업무가 나뉜다. 교통조사팀은 뺑소니 · 무면허 처리 등을 담당하고, 범죄수사팀은 보험사기 · 난폭운전 관련 업무를 주로 처리한다. 성 경장은 이 두 팀의 서무 관련 업무를 모두 처리하고 있다.

 | 진로 고민하다 우연히 응시

2013년 34주간의 중앙경찰학교 교육을 마친 후
졸업식에서 동기들과 함께.(성다혜 경장은 오른쪽에서 세 번째).

 충북 청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성다혜 경장은 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경찰공무원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터라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다니던 의상학과를 휴학한 뒤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아버지가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하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오랜 방황 끝에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활동적인 성격이었다. 앞장서 학급 반장을 하기도 했고, 운동을 좋아해서 수영 · 복싱 · 요가 등 안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였다. 그녀가 진로를 고민한 건,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권유를 받은 차에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꿈을 설정한 성 경장은 단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노력했다.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청주를 떠나 대전과 서울 노량진에서 고시원 생활을 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방이 꽉 막힌 벽에서 친구들의 연락을 모두 등지고 지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2012년 12월, 당시 5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경찰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2012년 12월 겨울, 최종 합격통보를 확인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1차 필기시험 가채점을 하는데 느낌이 와서 기대를 하고 있었죠. ‘해냈다!’ 소리치며 만세를 불렀어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의상학을 공부하다가 경찰이 됐으니 주변 반응도 남달랐다.

“당시 고향 친구들에게 경찰이 됐다고 하니까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말해줬어요. 대학교 친구들은 분야가 다르다보니 굉장히 신기해하더군요.”

성다혜 경장이 2013년 중앙경찰학교 교육생 시절, 스쿠터 실습을 하고 있다.

사실 경찰은 그녀가 중학교 3학년 때 잠시 꿈꿨던 막연한 꿈에 불과했다.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집이 시골이다 보니 지나가던 경찰관 아저씨들이 순찰을 하다가 순찰차로 집이나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주시곤 했죠. 평소 경찰은 무섭다고만 생각했는데 친근하고, 멋있게 보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경찰관은 내가 이룰 수 없는 높은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룰 수 없는 높은 꿈’을 이뤄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멋있기만 한 직업은 아니었다. 경찰은 업무의 특성상 교대로 24시간 쉴 틈 없이 밤을 지새우며 일하는 특수한 직업이다. 그것은 교통조사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찰업무를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몸은 지치고 힘든데, 하면 할수록 자부심을 느끼게 되더군요. 당연히 제가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감사하다고 전화를 주시는 분도 있고, 직접 찾아와 감사를 표현해주시는 분도 있어요. 그럴 때면 ‘경찰관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2015년 2년간의 의무복무를 마친 후 경장으로 승진했다. 승진식에서 임용장을 받고 있는 성다혜 씨.

| 할머니 구하려 한강에 뛰어들어

2013년 면목파출소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매일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들며 번갈아 파출소에 오던 유명한 커플이 있었다. 직원들은 그들의 차림새를 볼 때 노숙자일 것이라 짐작했다. 어느 날, 도움이 돼 드릴까 싶어 그들을 따라나섰는데 굉장히 작은 집에 살고 있었다. 부부는 결혼사진이라고 나에게 자랑을 했는데, 내 눈에는 굉장히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였다.

부부의 집을 방문한 후 마음이 불편해, 날을 잡아 우거진 나무를 배경으로 부부의 사진을 찍어준 후 인화를 해 선물했다. 사진을 받은 부부는 해맑게 웃어 보이며 정말 좋아했다. 그때 깨달았다. ‘별일 아닌 일을 (좋은 방향으로) 특별하게 만드는 것 역시 내가 할 역할’이라고.

2014년 경찰의 날을 기념해
지역 어르신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경찰이 된 후 가장 아찔했던 기억은 ‘마포대교 재개발 갈등시위’다. 2018년 11월 15일 아현 제2구역 철거민들이 토지감정평가액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마포대교 위에서 투신하겠다며 시위를 벌였다. 여성 주민들이 많다보니 성 경장을 포함한 여경 7명이 동원됐고, 이 중 4명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 긴급상황에 대비했다.

“눈 깜짝할 새 마포대교 아래에서 시위하시던 할머니 두 분이 한강으로 뛰어들었어요. 이를 발견하고는 판단할 겨를도 없이 모두 따라서 한강으로 뛰어 들었어요. 구명조끼를 입었던 것도 아니고, 수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할머니들을 구해야 되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할머니와 함께 허우적대고 있을 때, 때마침 한강경찰대 순찰정이 와서 할머니들을 구조해드릴 수 있었어요.”

물 밖으로 나와 보니 주머니에는 휴대폰과 무전기가 그대로 들어있었다. 뒤늦게 수심이 3m가 넘는다는 것도 알았다. 물도 굉장히 차가웠는데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다. 할머니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무서운 감정도 당시는 들지 않았다. 경찰 제복에 깃든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때 처음 깨달았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가족들의 걱정은 늘었다. 그래도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주저 없이 뛰어들 것 같다고.

2013년 여름. 중랑경찰서 면목삼팔파출소에서 근무일지를 작성하고 있는 모습. 보통 기동대는 광화 · 청와대 근처의 집회 시위현장에서 경비를 서거나 상황에 따라 출동하는 일을 담당한다.

| 경찰서 법당서 마음 안정 찾아

경찰관은 한시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성 경장은 마포경찰서 내에 위치한 법당을 자주 찾는다. 그녀는 한 달에 두 번, 매주 수요일 점심에 열리는 경찰청불자회 법회에 참석하고 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명상을 하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그래서 바쁘더라도 법회에는 꼭 참석하려고 노력한단다. 법회가 끝난 후 함께 모여 먹는 저녁공양도 정말 맛있단다.

지난 해 9월 결혼식을 올린 그녀.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야기도 전했다. 서대문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2년 조금 넘게 연애를 하다가 결혼했다. 남편은 성 경장의 1년 후배로 현재 홍제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성 경장은 “이번에 운 좋게도 신랑과 같이 경사 승진심사에 통과해 승진식을 앞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경찰의 90%가 남성인 실제 현장 근무에서 남녀 간 직무의 차이가 있느냐’고 묻자 성 경장은 “여성 경찰이기 때문에 남성 경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대답했다. 물론 여성 경찰이기 때문에 느끼는 고충도 없지 않았다. 2013~14년 기동대에 근무할 당시, 나이도 어리고 여성이다 보니 교육생이냐고 따져 묻는 등 무시를 많이 받았다고.

그래도 여성이란 점에 자부심을 느낄 때가 많다. 남성 경찰에게 말하려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여성 경찰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더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편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애쓴다.

경찰 직무는 다양해서 원하는 일을 폭넓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또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자신이 원하고 능력만 키운다면 해외주재관이나 교육원 교수, 여성 청소년과, SPO(school police officer, 학교전담경찰관)과 등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요. 이런 점이 경찰의 큰 장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도 열심히 해서 중앙경찰학교 교수요원까지 해보고 싶어요.”

중앙경찰학교 교수요원을 해보고 싶다는 성 경장. 최근에는 SPO 학교폭력 상담자 자격증을 취득했다.<사진=정현선 기자>

청년 경찰다운 당찬 포부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당부 한마디.

“간혹 엄마들이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경찰서로 데려와 ‘경찰아저씨가 끌고 간다.’고 겁을 주곤 해요. 이럴 경우, 아이들이 경찰관을 무섭게 보는 편견이 생기게 되잖아요. 경찰을 친근한 이미지로 인식해야, 아이들이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경찰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다시 태어나도 경찰관을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따듯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성다혜 경장, 그녀의 꿈을 응원한다.

글 · 정현선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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