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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의 숙제 ‘하심’ 새해에는 반드시 이루리.”불자의 새해 소망, 새해 다짐(276호)

얼마 전에 지인과 차 한 잔을 나누었다. 그녀는 젊은 날, 딸만 내리 넷을 낳는 바람에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았으나, 구인사 4박5일 기도를 통해 아들을 낳고, 삶의 꽃을 피우게 된 법우였다. 게다가 그 귀한 아들이 이번에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부처님의 무궁한 가피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감격해 하였다.

나도 반가워서,
“이젠 모든 것을 다 이루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겠네요.”
하자 그녀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아니에요. 진짜로 큰 숙제는 따로 남아있어요.”
하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아니, 무슨 숙제가 또 남아있어요?”
라고 되묻자 그녀는
“마흔 중반을 넘은 맏딸이 아직 시집을 못가서요. 걔 하나만 보내면 이제 내 숙제는 다 끝나는 것인데 그게 영 잘 안되네요.”
하며 어두운 얼굴로 말하였다.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였던 그녀에게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무거운 숙제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와의 차담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의 숙제는 무엇인가?’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 어깨에도 항상 숙제가 무겁게 얹혀 있었다. 숙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되었던 순간들은 있었지만, 한 가지 숙제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숙제가 다가왔고, 그 숙제를 해결했다 싶으면 또 다른 숙제가 엄청난 중압감으로 몰려오곤 하였다.

어찌 내 인생만이 그토록 많은 숙제로 점철되어 있었으랴 …….

2018년 무술년 한 해를 뒤돌아보니 해결된 숙제도 있고, 미완의 숙제, 그리고 아예 내 능력 밖의 숙제도 있었다.

40년의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은퇴자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였고, 지방에서 사업을 하던 남편도 마무리를 잘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큰 아들도 결혼하여 식구가 늘어나는 행복도 맛보게 되었고, 작은 아들도 당차게 독립시켰다. 또 구인사 수계식에서 5계(五戒)와 함께 ‘화생진(華生眞)’이란 법명도 받아 나를 새롭게 추스르는 계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게 마친 숙제는 단행본을 출간하였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200여 명의 신심 깊은 천태종 불자님들을 만나 그 분들의 신행담을 취재하여, ‘관문법보’에 실었는데 관문사 개산 20주년 기념으로 신행담 중 40편을 골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월장 주지 스님의 큰 지원 속에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은 수천 권이 법공양 도서로 신도님들께 배부되었고, 감동과 굳은 신심, 그리고 포교의 큰 장이 되었다는 반응이 쏟아져 감사하고 환희로웠다. 부처님의 크나큰 가피가 없었다면 감히 이루어 내지 못할 숙제였다고 생각한다.

새해의 숙제는 손주를 보아 할머니가 되는 것이고, 작은 아들이 결혼식을 속히 올리는 것이다. 또한 남아있는 수많은 신행담을 다시 손보아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2편을 완성하여 부처님과 상월원각대조사님의 원력을 감동으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실상 가장 큰 숙제는 내 마음의 숙제이다. 누구에게도 고백치 못하였던 내 마음자리에 대한 숙제는, 가장 크고도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부처님 말씀이나 경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이 되는 단어가 바로 ‘하심(下心)’이다. 마음자리를 잘 쓰라는 말이다. 실상 내 평생 되풀이되는 숙제의 방점은 바로 ‘하심’이었다. 그런데 하심은 내 결심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절대 아니었다.

교만함은 물론 탐진치(貪瞋痴)로 마음이 꿈틀대던 순간들이 있어 나는 종종 부끄러웠다. 사실 부처님의 제자가 된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하심이란 숙제를 완결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내 마음자리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최근에 나는 내 마음의 숙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날 하루의 점수를 백점 만점으로 해놓고, 내 마음에 걸리는 행동을 한 경우마다 점수를 깎았다. 마음이 마치 성난 황소처럼 종횡무진 날뛴 날은 점수가 하염없이 낮아, 그런 날은 7층 대불보전에서 뵙는 상월원각대조사님 앞에서 무릎 꿇어 참회하였다. 마음의 흙탕물이 부옇게 일어났던 하루를 부처님 전에 참회하면서 맑은 물로 가라앉히고 변하도록 애썼지만, 그 일은 늘 시지프스 바위처럼 같은 자리를 오르내렸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내 마음자리의 고요와 평정을 꽉 잡아, 남을 먼저 배려하는 하심의 자세로 겸손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난제가 나의 어깨에 얹혀 있다. 그러나 그 난제의 무거움은 내 마음의 약돌이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새해에는 하루하루 나의 숙제를 잘 풀어나가, 내 마음 속 깊숙이 간직되어 있을 불성(佛性)의 씨앗을 꽃피워야 하지 않겠는가? 나를 향해 혹은 내 곁의 ‘인연’들에게 묻는다.

“새해, 당신의 숙제는 무엇입니까?”

최창순

관문사 신도.
2017년 서울 재동초등학교 교감으로 정년퇴임.

글 · 최창순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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