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전병준

돼지 대비의 설법에 국왕과 백성 머리 조아려

범여왕이 바라나시에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한 보살이 암퇘지로 있었습니다. 그는 달이 차서 새끼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어느 날 그 새끼들을 데리고 나가 움푹한 땅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바라나시 성문 가까운 어떤 마을에 할멈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목화밭에서 목화를 한 바구니 따 가지고 지팡이를 짚으며 돌아왔습니다. 암퇘지는 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죽을까 두려워하여 그 새끼들을 거기 버려두고 달아났습니다.할멈은 그 새끼들을 보고 마치 자식처럼 안아 바구니에 넣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생 자식이 없던 할멈은 형 돼지를 대비라 하고, 동생 돼지를 소비라 하며 자식처럼 길렀습니다. 그들은 차츰 자라 아주 큰 돼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이 돼지를 팔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할멈은 꼭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들은 내 사랑스러운 아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축제일이 되었습니다. 많은 술꾼들이 모여 술과 고기를 먹다가 어디 더 좋은 고기가 없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할멈 집에 아주 먹음직스런 돼지가 있음을 알고는 돈을 가지고 가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 돈을 드릴 것이니 그 돼지 한 마리를 파십시오.”

“이 세상에 아들을 파는 사람도 있습니까?”

할머니는 단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할머니, 돼지는 사람의 자식이 아니지요. 그러지 말고 파십시오.”

술꾼들은 재차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할멈은 요지부동, 그래서 그들은 할멈에게 술을 권하며 기회를 엿보기로 하였습니다.

“할머니, 당신은 그 돼지를 그처럼 귀중히 여겨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그런 턱도 안 되는 말씀 마시고, 이 돈을 가지고 다른 것을 사십시오. 이 돈이면 할머니가 원하시는 무엇이든 사실 수 있습니다.”

술꾼들은 억지로 할멈의 손에 돈을 쥐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돼지를 팔지 않겠다고 그렇게 버티던 할멈이 순순히 돈을 받으면서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아, 정 그렇다면 대비는 안 됩니다. 소비를 가져가십시오.”

“그럼 그 돼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마 저 덤불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라고 소리를 쳐 주십시오.”

“그런데 지금 소비에게 먹일 먹이가 없군요.”

술꾼들은 재빨리 먹이 한 바가지를 가져왔습니다. 할멈은 그것을 문 곁에 있는 죽통에 가득 넣어 두고 그 옆에서 있었습니다. 술꾼들은 손에 밧줄을 들고 할멈과 같이 서 있었습니다. 입에 잔뜩 침을 흘리면서. 이윽고 할멈이 대비와 소비가 있는 덤불을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소비야,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그 소리를 들은 대비는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어머니는 소비 이름을 먼저 부른 적이 없다. 언제나 내 이름을 먼저 불렀다. 그런데 지금 저렇게 소비를 부른 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어떤 무서운 일이 생긴 것이다.’

대비는 소비에게 말했습니다.

“소비야, 어머니가 너를 부르신다. 빨리 가 보고 오너라. 그러나 반드시 경계를 해야 한다.”

소비는 바로 할멈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죽통 곁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밧줄을 들고 있는 그 눈빛을 보았습니다. 소비는 탄식했습니다.

“아아, 오늘 나는 죽는구나!”

소비는 두려움에 떨며, 형 대비에게 돌아왔습니다. 대비가 소비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느냐?”

“형님, 저는 어찌해야 하는지요?”

소비는 울면서 대비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소비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대비는 천천히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소비야, 우리 어머니가 오늘까지 우리를 기른 목적이 과연 무엇이었더냐. 비로소 오늘 그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너는 무엇을 그리 고민하느냐?”

“예?”

“너는 지금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며 숨을 곳을 찾는구나. 도움 없는 너는 지금 어디로 가려느냐? 소비야, 너는 즐겁게 그 먹이를 먹어라. 우리는 살찌우기 위해 길러졌나니 밝은 물 가득한 저 곳에 뛰어들어 모든 더러운 땀과 때를 씻어라. 그리하면 맑은 향기, 다함이 없는 묘하고 향기로운 기름이 얻어지리라. 바로 이 날을 기다려 어머니는 우리를 길렀느니라.”

대비는 열 가지 바라밀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되, 자비바라밀을 제일 먼저 두고 이렇게 첫째 글귀를 읊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한 보시의 절정, 중생들이 바란다면 초개처럼 목숨을 버리라는 법문이었습니다. 그 소리는 모든 곳에 두루 퍼져 12유순의 저쪽에 있는 바라나시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곧 국왕과 대신들을 비롯해 바라나시 사람들이 모두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왕의 부하들은 그 덤불을 둘러싸고 땅을 평탄하게 한 뒤에 모래를 깔았습니다. 또한 술꾼들도 술이 깨어 밧줄을 버리고 그 묘한 법을 듣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물론 할멈도 술이 깨었습니다.이 때 소비가 말했습니다.

“내 형은 저렇게 내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연못에 뛰어들어 목욕하고 내 몸의 땀과 때를 씻어버리고 새로운 향유를 바른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들의 관습이 아닙니다. 형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걸까요?”

이 말을 듣고 대비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너는 귀 기울여 자세히 들어라.”

대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법(法, 진리)이야말로 그 맑은 못이요. 죄는 그 땀과 때라고 할 수 있다. 계율이야말로 묘하고 맑은 향기로, 그 향기는 항상 다함이 없다. 때 묻은 그 몸을 버리지 않는 이에게는 기쁨이 없다.”

대비는 이와 같이 묘한 소리로 설법하였습니다.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환호하면서 그의 소매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허공에도 그 환호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바라나시의 왕은 예로써 대비를 대우하고 할멈에게도 큰 명예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마리 돼지, 대비와 소비를 향수에 목욕시켜 옷을 입히고, 그 머리에는 화관을 씌워 바라나시로 데리고 돌아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태자의 지위에 앉히고 많은 시신(侍臣)들로 하여금 봉사하게 하였습니다. 이후 대비는 왕에게 오계를 주고 모든 바라나시 백성들과 가시국의 백성들에게 계행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재일(齋日)에는 항상 그들을 위해 설법하였습니다. 또 모든 일을 왕 대신 잘 조사해 처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조금도 삿된 법은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얼마 안 되어 왕이 죽었습니다. 대비는 그 시체를 돈독히 장사 지냈습니다. 그리고 재판한 사건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들고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 책을 보고 모든 사건을 처리하라.”

그리고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열심히 설법한 뒤에 사람들이 슬피 우는 속에서 소비와 함께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대비의 설법은 6천년 동안 그곳에서 행해졌습니다. 〈본생경〉에 의하면 그 때의 왕은 아난이요, 소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비구이며, 그 대비는 바로 전생의 부처님입니다.

이제 2019년은 바로 그 돼지의 해, 바로 부처님의 해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올 한 해 부처님 말씀처럼 즐겁게 음식을 먹고, 부지런히 살을 찌워 밝은 물 가득한 맑은 곳에 뛰어들어 모든 더러운 땀과 때를 씻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하면 반드시 맑은 향기 다함이 없는 묘하고 향기로운 기름이 얻어지겠지요? 새해는 모든 불자님의 가정이 그렇게 다함없는 묘한 법으로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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