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나라의 미래이자 보배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세계 모든 국가는 청소년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지도를 위해 막대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청소년은 어린이도 아니며 성인도 아닙니다. 루소가 그의 저서 〈에밀〉에서 말한대로 ‘어린이로부터 어른으로의 이행(移行)’ 과정에 놓여 있는 게 청소년입니다. 성인으로의 이행과정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기는 주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교육을 책임져야 할 기성세대가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천태종단도 청소년에 기울이는 관심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해마다 우리 종단은 청소년 백일장과 배구대회, 수련법회, 그리고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을 상대로 한 교직원 수련법회 등을 통해 청소년 인성교육과 포교 종책 개발에 열과 성을 다해 오고 있습니다.

어느 국가와 어느 사회든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가 청소년 문제이며, 이는 시대를 불문하고 전국민의 관심사로 존재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경제적 수준과 학교의 질적 향상 등을 이루었지만 날이 갈수록 청소년 범죄가 늘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며칠 전 가해학생들의 폭력을 피해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사망한 중학생 이야기는 실로 청소년 범죄와 관련해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통계청이 경찰청 자료를 인용한 것에 따르면 만 10세에서 18세 기준의 청소년 4대 강력범죄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1만 4천여 건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는 하루 평균 9건씩 발생했다는 통계인데 이 수치도 이후에 더욱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반 범죄를 포함하면 그 수치는 10만 건 가까이 됩니다.

물론 청소년 범죄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가정폭력과 나쁜 양육환경 등이 과잉행동을 유발하고 충동장애 요인을 일으켜 범죄를 짓게 만듭니다. 영화와 만화 등 폭력과 선정적인 음란물도 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보급이 랜덤채팅으로 이어져 성범죄 발생이 쉽게 이루어지고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청소년 범죄를 비롯한 각종 청소년 문제를 단기 처방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곤란합니다. 남의 집 아이 문제라고 해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도 올바른 처신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무관심도 청소년 문제를 야기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온갖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자아(自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일입니다. 나 자신이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점과 이 소중한 나를 지키기 위해선 책임감도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야말로 시급한 교육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행위에 따라서 반드시 그 과보(果報)가 나와 나의 인연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만 존재에 대한 인식도 새로이 깨닫게 됩니다. 그래야 약한 친구들에게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고 남의 성(性)을 무참히 깨뜨리는 행동이 얼마나 잔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행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무량수경〉에서 부처님은 미륵보살과 천신과 인간 등 여러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이여, 그대들은 부모와 자식간에, 형제간에, 부부와 가족, 일가 친척 간에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며, 결코 미워하고 시샘하지 말라. 있고 없는 것을 서로 따져 탐내거나 인색하게 굴지 말며, 항상 상냥한 말과 부드럽고 화평한 얼굴로 상대하여 아예 다투지 말아야 되느니라. 혹시 다투어 분한 마음을 품게 되면, 비록 그리 큰 원한이 아닐지라도 그 쌓이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인해 다음 세상에서는 큰 원수가 되고 마느니라.(중략) 인간은 이 세상 애욕의 바다에서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가는 것이다. 즐겁고 괴로운 어떤 곳에서도 자기가 지은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는 스스로 받고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니,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느니라.”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미움보다 사랑을, 시샘보다 포용을, 인색함보다 베풂을 몸소 보여주고 가르친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따뜻하고 즐거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청소년들에게 ‘자아’를 일깨워주고 ‘과보’를 일러줘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문제의 해결은 정책적 요인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나’란 존재에 대한 인식을 깨우쳐 주는 게 앞서야 합니다.

특히 미물중생일지언정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불교의 가르침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아주 유익한 교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독립된 개체는 없습니다. 나의 해코지 하나가 단순히 그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 단 한 번의 실수가 내 인생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됩니다. ‘자아’를 찾는 사람은 존재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결코 다른 이의 존재 또한 가볍게 대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게 되면 늘 기쁨과 행복이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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