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포교현장(275호)

‘자장면’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장면을 먹고 싶은 마음에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철부지도 있었으니까. 세상이 좋아져서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대중음식, 자장면. 그럼에도 ‘추억속의 자장면’만큼 맛있는 음식은 찾아보기 드물다.

대구 대성사 봉사회는 한 달에 두 번, 경내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향림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다. 바로 추억의 자장면 공양이다. 회원들은 신선한 재료를 다듬고, 밀가루를 반죽해 직접 면을 뽑아낸다. 큰 솥에서 방금 건져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타면을 소담스럽게 그릇에 담아 자장소스를 얹는다. 여기에 노란 단무지를 송송 썰어 올려 내면, 20년 전통의 대성사표 자장면이 완성된다. 따뜻한 자장면 한 그릇에는 대성사 신도들의 굳건한 신심과 자비심이 듬뿍 담겨있다.

51주년 맞은 대구신도회의 이타행

대구 대성사(주지 영제 스님)는 2018년 10월 1일 창립 51주년 법회를 봉행했다. 신도회 창립은 1967년 1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천태종 사찰도, 스님도 없었던 상황에서 은하목욕탕 대표 이구락 씨와 불자 서른 명이 대구신도회를 결성했다. 대구 불자들의 깊은 불심이 종자(種子)가 되어 대성사의 첫 싹을 틔운 것이다.

대성사 봉사회는 대구 두류공원을 배회하는 노숙자와 어르신을 대상으로 처음 자장면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신도회 창립 후 4년 뒤인 1971년, 30명의 신도는 300명이 되었고, 그 해 10월 26일 상월원각대조사를 모시고 대구 동원예식장에서 호국안보기원 대법회를 봉행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76년에는 대충대종사를 모시고 대구시민회관에서 신도 1,50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호국안보기원 대법회를 봉행한다.

신도들의 자택을 전전하며 시민회의실 · 구교회당 사옥 등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던 끝에, 1979년 11월 마침내 현 대성사가 위치한 대구시 서구 성당동 520-3번지에 신축회관 부지를 조성한다. 이후에도 꾸준히 불사가 이어져 1982년 대법당 기공식, 1983년 대법당 낙성과 함께 삼존불을 봉안했다. 1986년 부지를 확장해 연건평 888평의 신축 불교회관을 설립하고, 이듬해 창립 20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하며, 대구지역 대표사찰로서의 터전을 닦았다.

대성사가 기틀을 잡아가는 동안, 동해유치원 자모회원들이 주축이 된 ‘2세 포교 후원회’가 1993년 발족했다. 이 단체는 1995년 ‘보리봉사회’로 개칭했다가, 2008년을 전후해 ‘대성사 봉사회’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3년 자모회원 모임으로 시작한 ‘2세 포교 후원회’는 1995년 회원들이 대성사 신도들로 확대되며 ‘보리봉사회’로 개칭되었다가, 2008년을 전후해 ‘대성사 봉사회’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대성사 봉사회는 전 · 현직 신도회 간부 200여 명이 중심이 되어, 관할 소방서 코끼리봉사단 · 대구세관 · 마을부녀회 등 지역사회 봉사단과 함께 자리이타(自利利他)행을 실천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20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자장면 무료급식은 다른 사찰과는 차별화되는 대성사만의 특별한 봉사활동이다. 대성사 자장면은 대구 시내에서도 맛좋기로 유명해 동네 주민은 물론, 멀리 사는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대성사를 찾아온다.

두류공원서 노숙자 대상 첫 봉사

세월이 흘렀지만, 밀가루를 반죽해 손으로 직접 면을 뽑아내는 정성은 한결같다. 봉사 초창기 한 신도가 기계로 면을 뽑는 모습.

IMF로 모두가 힘들던 1998년, 대성사 봉사회(당시 명칭 ‘보리봉사회’)는 추석맞이 바자회에서 모인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에게 회향하기로 했다. 당시 북구지회장이던 이종옥 씨가 대성사 인근 두류공원에 머물고 있는 노숙자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보시할 것을 건의했다. 당시 대성사 주지 용암 스님은 흔쾌히 허락했다. 이야기를 들은 모든 신도들도 좋은 생각이라고 박수를 쳤다.

이종옥 씨는 이웃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자장면 전문가(?)를 초빙해 본격적으로 자장면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성사 자장면 급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주일에 한 차례씩 이웃들을 찾아갔다. 두류공원에서는 자장면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많을 때는 1500~1600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장면을 먹었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는 먹는 사람도, 준비하는 사람도 불편하고 힘들었다. 2003년 대성사에 공양실 ‘향림당’을 건립하면서 공원 대신 경내에서 자장면을 먹을 수 있게 됐다.

힘든 일을 기꺼이 맡아서 하는 봉사자들.
함께 일 해온 기간이 길다보니 눈빛만 봐도 손발이 척척 맞다.

좋은 재료 엄선…봉사자들 손발 척척

대성사 봉사회는 매월 2 · 4주 금요일 점심이면 자장면 600~700그릇을 준비한다. 자장면 공양 하루 전날, 시장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손질하고, 밀가루를 반죽해 12시간동안 숙성시킨다.

봉사한 기간이 오래되다보니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시계 톱니바퀴처럼 적재적소에서 맡은 역할을 정확하게 해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분 음식을 한 번에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10년째 봉사하고 있는 황필수 사업위원은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거나, 면을 뽑는 기계에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대성사에서 간부 몇 년 하면 자장면 집 차려도 된다.’는 농담을 주고받곤 합니다. 몸은 힘들어도 회원들과 마음 맞춰 일하면 힘이 나지요. 오래도록 같이 일하다보니 이제는 눈빛만 봐도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좋은 마음을 내어 봉사를 묵묵히 해오고 있는 회원들이 참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자장면 만드는 일을 총괄하며 능숙하게 면을 뽑아내고 있는 김상명 씨는 6년 전 이종옥 씨의 소개로 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제 전공이 자장면입니다. 중국집에서 일한 경력은 30년 가까워요. 가장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지역 사람들이 수십만 그릇의 자장면을 먹었지만, 먹고 탈 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자장면이 전공이라는 중국집 경력 30년차 김상명 씨.

그의 당당한 목소리에서는 자장면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묻어났다.

“이 일을 오래한 사람이라도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큰 사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능숙한 저도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하면 더 위험하겠지요. 그래서 면을 뽑는 일은 항상 제가 합니다.”

바삐 움직이는 손에 박힌 굴곡진 손톱. 다른 봉사자를 위하는 따뜻한 배려와 희생정신이 무뚝뚝한 한마디 말에 묻어난다. 힘들고 궂은일을 솔선해서 맡는 그 마음이 곧 보살의 대자대비심이 아닐까.

대성사 자장면 급식은 봉사자들의 기쁨과 보람으로 20년간 이어져 왔다.

무량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마음

금요일 낮 12시. 향림당 의자에는 이미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다. 봉사자들이 하나 둘 자장면 그릇을 나르기 시작했다. 자장면을 기다리는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2008년 3월, 대구를 방문한 하와이 제322 태평양지구 소속 장병 15명이 대성사 무료급식 자원봉사에 참가해 자장면을 나르고 있다.

“국가도 자식도 나 몰라라 하는 설움 많은 사람들이 자장면 먹으러 많이 옵니다. 봉사하는 분들의 마음이 참 따뜻해요. 외로운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자장면을 베푸는 분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쓸한데, 이곳에 오면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는 장(場)이 되어 올 때마다 활력이 넘치고 기분이 좋습니다.”

“맛있는 자장면을 먹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니 배도 부르고 마음도 즐겁습니다. 3년 전부터 대성사 무료급식을 알게 됐는데, 봉사하는 분들께 고마운 이 마음을 꼭 전해주세요.”

“자장면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서 이곳에 오면 허리띠를 풀어놓고 먹습니다. 한번 올 때마다 여섯 일곱 그릇도 먹어요.”

맛있게 자장면을 먹고 난 어르신들의 표정은 한껏 밝다. 향림당을 나서면서 “잘 먹고 갑니다.”하는 인사 한마디에 이틀 동안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다는 봉사자들. 매운 양파를 썰며 흘린 눈물, 뜨거운 솥 앞에서 흘린 땀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감사 인사는 최고의 선물이다.

나와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가장 좋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봉사회. 회원들은 “청결한 환경에서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먹고 어르신들이 오래오래 건강하시면 좋겠다.”고 말한다.

10월 둘째 주 1박 2일간의 취재를 통해 대구 대성사 봉사회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봉사가 생활이 되고 일상이 된 회원들은 남을 돕는다는 상(相)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보살마하살의 삶을 실천해오고 있었다.

모든 존재가 불성(佛性)을 지녔기에, 수많은 중생은 곧 무량한 부처님이다. 인내하는 마음과 자비심으로 스무 해를 한결같이 봉사해온 회원들의 모습을 곁에서 보니, 여래(如來)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가르침을 전하라는 〈법화경〉 제10품 ‘법사품’ 구절이 떠오른다.

하늘과 땅, 해와 달은 아무 말 없이 누구보다도 깊은 법문을 들려준다. 대성사 봉사회도 여래의 방 ‘자비’에 들어가, 여래의 옷 ‘인욕’을 입고, 여래의 자리 ‘공(空)’에 앉아서 묵묵하고 꾸준히 대승보살의 삶을 살아간다.

여래를 닮은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향림당 주방 뒤편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먹었다. 김이 폴폴 나는 한 젓가락에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무량한 부처님 전에 올리는 기쁨과 정성의 맛이 났다. 세상에서 가장 수승한 음식, 제호(醍醐)의 맛이다.

2003년 건립된 대성사 향림당 무료급식소. 매월 2 · 4주 금요일이면 약 600~700명의 어르신들이 자장면을 드시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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