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월간금강 기획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新변상도로 읽는 부처님말씀(275호)
  • 글·편집부 그림·신진환
  • 승인 2018.11.29 11:26
  • 댓글 0
삼베에 천연안료, 천연염료. 70 X 95cm

유마거사, 병을 앓다

유마거사는 발지국 바이살리에 사는 대부호다. 그는 불교에 깊이 통달했고, 삼계에 대한 집착을 여의었으며, 처자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청정한 행을 닦는데 한시도 게으르지 않았다.

가난한 이에게 재물을 나눠주고, 이교도에게 바른 가르침을 일러 주었으며,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술집과 노름판에도 끼어들었으나 정기(精氣)를 흩뜨리지 않았다. 이렇게 이르는 곳마다 명쾌한 토론과 법문으로 묘법을 전하는 일에 힘썼다.

그런 그가 병으로 몸져누웠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가게 됐다. 부처님께서도 유마거사가 병으로 누웠다는 소식에 십대제자에게 병문안을 다녀오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한결같이 ‘병문안 자격이 없다.’고 사양했다. 그들은 앞서 유마거사로부터 수행과 설법 등에 대해 호된 지적과 질책을 받은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존은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에게 권유했다. 문수보살 역시 유마거사를 상대하기에는 법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부처님의 말씀에 마지못해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이런 결정이 알려지자 수많은 보살과 천신들이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법담(法談)을 듣고자 동행했다.

보살이 아픈 이유

문수보살은 유마의 거처에 도착해 부처님께서 하신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유마거사와 다음과 같이 얘기를 주고받았다.

“유마거사시여, 그대의 병은 어떤 것입니까?”

“모양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몸에서 생긴 것입니까? 마음에서 생긴 것입니까?”

“몸을 벗어났기에 몸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벗어났기에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몸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네 가지 요소[四大]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것에 탈이 난 것입니까?”

“세상에 어리석음이 남아 있는 게, 그리고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는 게 저의 병고(病苦)의 원인입니다. 이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제 병고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즉, 중생에게 아픔이 남아 있는 한 제 아픔도 계속 될 것입니다. 만약 중생들이 병고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제 병도 씻은 듯이 낫겠지요.

비유를 하자면 어떤 부잣집 외아들이 병으로 눕자 그 부모들도 크게 상심한 나머지 덩달아 병으로 눕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외아들의 병이 낫지 않는 한 그 부모의 병도 낫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문수보살이시여, 보살이 기꺼이 윤회 가운데 뛰어드는 것은 오직 중생을 위해서이며, 제가 아픈 것도 그곳에 원인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중생들이 병고에서 벗어나는 날, 비로소 보살의 병도 씻은 듯이 나을 것입니다. 제가 아픈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지요? 이와 같이 보살의 아픔은 바로 대자비가 그 원인입니다.”

문수보살과 유마거사의 대화가 이어졌다.

“보살이 앓는 병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대상을 좇는 것이 원인입니다. 무엇이든 좇는 것이 있는 한 병의 원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엇을 좇는 것일까요?”

“세상 모두가 그 대상입니다.”

“병의 원인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실천해야 하겠습니까?”

유마거사는 그 실천방법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좇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보지 않는다는 것은 대상을 좇지 않는다는 말이고, 내 안의 주관과 외부의 객관으로부터 훌쩍 벗어난다는 말이니 그러기에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문수보살이시여, 병에 걸린 보살은 모름지기 이와 같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깊이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모든 보살이 앓는 병이란 바로 이러한 것일진대 혹시 이와 다르다면 그 기나긴 수행은 아무런 보람도 없겠지요.

병에 걸린 보살은 자신의 병이 진실한 것이 아니고, 실재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중생의 병 역시 진실한 것이 아니고,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꿰뚫어 알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꿰뚫어 알았을 때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킴에 있어 오직 공덕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곤란합니다. 밖으로부터 우연하게 얽혀드는 번뇌를 애써 벗어나 중생을 위해 자비심을 일으키는 일은 공덕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곤란합니다.”

삼베에 천연안료, 천연염료. 70 X 95cm

불이(不二)의 법문

문수보살과 유마거사의 질의응답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자리에 동석한 여러 보살들도 함께 의견을 주고받았다. 대화가 막바지로 치달을 때 유마거사가 문수보살을 비롯한 대중들에게 물었다.

“불이(不二)법문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여러 보살들이 견해를 밝혔다.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 후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의 차례가 되었다.

“그대들의 말씀이 비록 훌륭하긴 하지만, 이러한 말에는 아직 둘이라는 관념이 남아 있습니다. 어떠한 것도 논하지 않고 말로써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하여 나타내 보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문수보살은 이렇게 대답한 후 유마거사의 생각을 물었다.

“우리의 생각은 이렇습니다만, 유마거사께서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말에 주위에 있던 보살들은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해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유마거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묵묵부답이었다. 한동안 정적이 감돈 후 문수보살이 감탄을 자아내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훌륭하구나. 문자도 없고 말도 없는 이것이야말로 불이의 법문에 들어가는 길이로다.”

이 같은 말을 듣고 문수를 뒤따라온 수천의 보살과 천신들이 그 자리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진리를 깨달았다.

신진환

불교미술 작가. 금강산 신계사 복원 불사 벽화조성(2007), 제3회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향전 전체 대상(2009), 제36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2011), 제27회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 우수상(2013), 제2회 용성문화제 ‘올해의 불교미술인상’(2018)을 수상했다. 매년 국내외에서 다양한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금년에는 터키 앙카라 아트페어와 이스탄불 아트페어(AB갤러리 초대), 뉴욕 알재단 초대 옥션전, 홍콩 아트페어(Regina Gallery 초대)에 참가했다.

글·편집부 그림·신진환  ggbn@ggbn.co.kr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글·편집부 그림·신진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