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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예경예경의 미학, 불교의례(275호)
천태종 총본산 단양 구인사 관음전 옥불.

어떤 대상을 찬탄하고 그 대상에 예경하는 행위는 그 대상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의 표현이다. 특정 대상에 존경과 신뢰를 가지려면 가장 먼저 그 대상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호에 살펴보고자 하는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불보살님이라 할 수 있다. 불교를 신앙하지 않는 사람도 그 명호를 들어보았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다.

그런데 막상 ‘관세음보살이 누구인가?’하고 물으면,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절에 오래 다닌 불자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나 조석으로 법회 때마다 염송하는 〈천수경〉 정도를 떠올릴 뿐이다. 짐작건대 관세음보살의 자비원력을 믿고 의지하는 관음신앙이 한국불교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 분에 대해서는 ‘그 공덕이 크니 부지런히 믿고 신앙하면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 정도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누구나 알고 있고 때때로 염송하는 관세음보살, 그분은 누구인가? 먼저 명호를 새겨 보자. ‘관세음보살’, 줄여서 ‘관음보살’은 ‘세상의 고통 받는 중생들이 당신을 부르는 소리를[其音聲] 듣고[聞] 잘 살펴[觀察] 알고, 그들을 구원해주시는[救苦] 보살[菩薩]’이라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에 따라 명호도 각기 다르다. 먼저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소리를 마음으로 살펴서 듣고, 고통 받는 이에게로 오셔서 이들을 건져주시는 성스러운 분으로 성관세음보살이다. 성관세음보살은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본원(本願)으로 삼고 있으며, 관세음보살의 본신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다른 명호를 가지고 있다. 수월관음 · 양류관음 · 준제관음 등의 이칭(異稱)과 광세음보살 · 관자재보살 · 연화수보살 · 원통대사 등이 그것이다. 고통 받는 이들이 당신의 명호를 간절히 부르면, 와서 구원해 주지만 그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않는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불자들은 단지 명호를 간절히 부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불자들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염불을 입에 달고 산다.

보물 1862호 여수 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사진제공=성보문화재연구원〉

이렇듯 누구에게나 익숙한 관세음보살이지만 그분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어떤 연유일까? 중생 구제의 측면에서 보면 관세음보살의 공능은 비슷하지만 등장하는 경전에 따라 조금씩 공능과 역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은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 · 〈화엄경〉 · 〈아미타경〉 · 〈무량수경〉 · 〈관세음수기경〉 · 〈천수천안관세음보살무애대비심다라니경〉 · 〈원각경〉 등의 현교 경전과 태장계만다라를 비롯한 각종 다라니를 설하는 설주(說主)로서 밀교 계통 경전에 다양하게 등장한다. 각각의 경전에 등장하는 관세음보살은 공능의 차이뿐만 아니라, 머물고 있는 곳도 보타낙가산, 극락세계 아미타불의 좌우 등으로 조금씩 다르다.

세상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이들의 구원 청하는 소리에 손길을 내밀 수 있도록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갖기를 발원해 현현(顯現)한 분이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인데, 관세음보살의 상징으로 불리다시피 한다. 〈천수경〉의 저본이고, 천수천안과 관련된 경전인 〈천수천안관세음보살무애대비심다라니경〉에 등장하는 관세음보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이 보살은 과거에 이미 정각(正覺)을 이루어 ‘정법명왕여래’로 불렸다. 지금은 극락세계에 보처(補處)보살로 나타나신다. 미래 세상에 아미타불의 보처에 계시다가 정각을 이루는데 호는 ‘보명고현길상봉왕여래’라고 한다. 사바세계의 중생들과 인연이 있는데, 서른두 가지 모습을 나타내 교화를 한다. 본래 몸은 자금색인데 신장은 80만억 나유타 유순이다. 머리에는 육계가, 목에는 둥근 빛이 있다. 그 빛에는 오백의 화신부처님이 머무신다. 오백 보살은 몸빛으로 오도(五道)의 중생을 드러내 보이는데, 일체의 색상(色相)은 그 속에 모두 나타난다. 정상의 보천관(寶天冠)에는 부처님이 한 분 서 계시는데, 신장이 25유순이고, 미간의 백호는 일곱 보배의 빛깔이다. 그곳에서는 팔만사천의 광명이 흘러나온다. 열 손가락은 단아한데 팔만사천의 그림 무늬가 있다. 광명은 유연하여 널리 일체를 비추고, 보배 손으로 중생을 인도하신다. 단지 ‘관세음보살’의 명호만 들어도 무량한 복덕을 얻는다.

자신의 명호를 듣기만 해도 한량없는 복을 받게 하는 관세음보살, 이 같은 말씀을 듣고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으랴. 그렇다면 이분을 어떻게 찬탄할까? 관세음보살에 대한 찬탄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다음 구절이 대표적이다.

백의관음무설설 白衣觀音無說說 백의관음은 말없이 설법하고,
남순동자불문문 南巡童子不聞聞 남순동자는 들지 않고도 듣네.
병상녹양삼제하甁上綠楊三際夏 화병 위의 푸른 버들은 늘 여름이요,
암전취죽시방춘 巖前翠竹十方春 바위 앞 대나무는 어디나 봄이네.

이 구절은 관세음보살을 청해 공양 올리려고 할 때, 맞이하며 올리는 찬탄의 노래 가영(歌詠)이다. 백의관음은 흰 옷 입고 연꽃 위에 앉아계신 보살님인데, 법문을 설하지 않고 법을 설한다. 남순동자 역시 법문을 듣지 않고도 법문을 이미 다 듣는다고 하여, ‘무설설(無說說)’과 ‘불문문(不聞聞)’의 대조를 이룬다. 설하지 않고 설하고, 듣지 않고 듣는 것은 법신보살의 그것이다.

남순동자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라고 이해하면 된다. 병 속의 버드나무는 과거 · 현재 · 미래[三世]가 늘 여름이고, 바위 앞 푸른 대나무는 시방세계가 봄이라고 노래한다. 처음 두 구절에는 백의관음과 남순동자 두 인물이 등장하고 있는데 반해 뒤의 두 구절에는 병과 바위, 버드나무와 푸른 대나무 등 자연의 상태를 드러내 과거 · 현재 · 미래와 남서남북 사방과 사유와 상하의 시방(十方)에 여름과 봄으로 조화를 이룬다. 관음보살이 시공을 넘어 늘 여름과 봄이라고 하여 활발한 생명활동의 본질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을 찬탄하며 “일심으로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에게 머리 숙여 절하옵니다.”라고 예경을 올린다. 관세음보살이 홀로 모셔진 원통전 같은 독전에서는 이렇게 예경하지만, 좌우에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을 모시게 되면 관세음보살님께 두 번 절을 올리고 나서 좌우보처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을 합해서 한 번 절을 올리게 된다.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동국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계종 의례위원회 실무위원, 불교의례문화연구소 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동국대 · 금강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불교의례, 그 몸짓의 철학〉, 〈한국불교 의례체계 연구〉, 〈천수경, 의궤로 읽다〉, 〈삼밀시식행법해설〉(공저) 등을 펴냈다.

글 · 이성운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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