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산, 그 옛 이야기(275호)

제주도 전역을 지배하는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높이는 1,950m이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은 산이 높아 산정에 서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뜻이며, 부악 · 원산 ·선산 ·두무악 ·영주산 ·부라산 ·혈망봉 ·여장군 등으로도 불려왔다. 특히 한라산은 화산활동이 잠시 멈춘 휴화산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1002년과 1007년에 분화했다는 기록과 1455년과 1670년에 지진이 발생하여 큰 피해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정상에는 백두산에 있는 천지처럼 옛날 분화구였던 곳에 백록담이라는 연못이 있다. 이 백록담 산록은 우리나라 고산식물의 보고로서 식물의 종류도 무려 1800여 종이나 되어 울창한 자연림과 더불어 광대한 초원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백록담 근처에 고승이라는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 고승은 해가 뜨면 한라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해가 지면 마을에 내려가 나무를 파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부모도 없었고 형제도 없었다. 그는 산 중턱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살았다. 나무를 하면 그것을 팔기 위해 가끔씩 장에 나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고승이 한라산 기슭의 작은 산인 산방산 근처에서 나무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은은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고승은 그 이상한 향기에 이끌려 커다란 굴 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그 굴속에서 향기가 새어나왔다. 고승이 굴속으로 들어가려는데 사뿐사뿐 발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온 몸을 안개로 휘감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동굴 옆에 서 있었다. 고승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 아가씨는 마치 선녀와 같았다.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보지 마셔요. 저는 이 산방산에 사는 산방덕이라고 합니다.”

산방덕이 입고 있는 옷이나, 얼굴로 볼 때 고기잡이를 하거나 나무를 하는 일반인 집의 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산방덕이 쓰는 말씨나 몸짓은 더할 수 없이 고귀했다. 고승은 단 한 번 만남으로 산방덕을 사랑하게 되었다. 고승은 해가 져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언제까지나 산방덕과 함께 있고 싶었다.

“낭자가 살고 있는 집이라도 알려주면…….”

고승은 아주 수줍게 말했다. 그러나 산방덕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입가에는 한가득 웃음을 달고. 고승은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산방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방산 아래까지 땅거미가 내려와 있었다.

“내일 이곳으로 오시면 저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고승은 뛸 듯이 기뻤다. 한 번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승은 한껏 웃는 낯으로 다시 물었다.

“밤이 되면 어쩌지요?”

“예?”

“밤에도 낭자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냐구요?”

아까까지 부끄러워서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던 고승은 아주 대담해졌다. 그래도 산방덕은 고승을 쳐다보며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그 고운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말했다.

“밤에는 별을 보셔요. 저는 분명 그 밤하늘에 있을 거여요.”

“낮에는요?”

“낮에는 이 산속에 피어 있는 꽃들을 보셔요. 그 꽃들 속에 저는 있을 거여요.”

고승은 산방덕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좋았다. 밤낮으로 어여쁜 산방덕을 바라볼 수가 있으니 말이다.

“어느 별이 낭자의 별인가요?”

“제주도 하늘 한가운데서 가장 반짝이는 별.”

날이 저물어 산방덕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고승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당에 나와 별을 보았다. 하늘에는 산방산의 꽃처럼 많은 별들이 반짝거렸다. 고승은 산방덕의 별을 찾을 수 없었다. 하늘에는 무수하게 많은 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승은 다음날 아침 일찍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동굴 옆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산방덕은 나타나지 않았다. 고승은 언제까지나 동굴 옆 풀밭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그 꽃들 위를 색색의 나비들이 하염없이 날고 있었다.

고승은 그 꽃들 속에서 산방덕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쳐다보아도 어느 것이 산방덕의 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절망한 고승은 무릎 위에 얼굴을 파묻고 산방덕의 얼굴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날이 점점 흐려지고 세찬 바닷바람이 휘몰아쳤다. 온 산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작은 나뭇가지들이 부러지고, 돌멩이들이 하늘을 날았다. 고승은 동굴로 몸을 피하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다.

바로 그 때 소리가 들렸다.

산방덕이었다. 산방덕은 어제와 같은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 동굴에 들어가시면 안 돼요.”

“내가 오늘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

“나한테 아내가 되어 달라는 말씀이죠?”

고승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낭군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나무를 하시면 안 됩니다.”

“……?”

고승은 멍청하게 산방덕을 쳐다봤다. 아내가 되어 주겠다는 것까지는 좋으나 산에서 나무를 하지 말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고승은 오로지 산에서 나무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무를 하지 않으면 살림은 어떻게 꾸리겠소?”

“꼭 나무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산방산에서 나는 약초를 캐다가 마당에 심으면 얼마든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알겠소. 내 약속은 꼭 지키리다.”

고승은 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선선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고승은 선녀같이 아름다운 산방덕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산방덕의 당부가 있었지만 고승은 자기가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예쁜 낭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술이 화근이었다. 결국 고승은 약초를 팔기 위해 장에 간 날 그만 자신이 산방덕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말았다. 소문은 금방 날개라도 돋친 듯 제주도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정욕에 눈이 먼 사또가 몰래 고승의 집을 정탐하였다. 아! 사또는 탄성을 질렀다. 그는 바로 관청으로 돌아와 고승에게 관가로 오라는 분부를 내렸다. 죄명은 산방산의 약초를 함부로 캐다가 마당에 심었다는 것이었다. 산에서 약초를 캐는 것은 죄가 되지 않았지만, 사또 마음대로 고승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렇게 큰 죄를 짓고서도 허구한 날 술만 퍼 마시는 너를 용서할 수가 없다.”

“아이고 사또,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저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할 것입니다.”

“오 그래. 정말로 네가 뉘우친다면 아주 방법이 없는것은 아니지.”

사또의 눈꼬리가 간사스럽게 옆으로 찢어졌다.

“그렇다면, 네 아내를 관가에 바칠 수 있겠느냐?”

“예?”

사또는 아주 음흉하게 웃었다.

“왜 싫으냐?”

“그것이 아니오라 제 아내가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아서…….”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너만 나하고의 약속을 지켜준다면 모든 뒤처리는 내가 하마!”

집으로 돌아온 고승은 산방덕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바른대로 말씀을 하셔야 방도를 세우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고승은 입을 열었다.

“당신을 관가에 바치지 않으면 나를 죽이겠다고…….”

“아니 뭐요? 그래서 약조를 하셨습니까?”

“나를 죽이겠다는데 난들…….”

산방덕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만 난 갈 수가 없습니다. 난 이 산방산을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고승의 태도가 아주 달라졌다.

“당신이 관가에 가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니까. 모름지기 지어미는 지아비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하거늘, 그까짓 관가에 가서 일 좀 하는 것을 싫어하다니. 당신이 제 발로 가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라도 관가에 끌고 갈 테니 알아서 해!”

산방덕은 소리를 지르는 고승 옆에서 말없이 눈물만 지었다. 고승은 처음 만났을 때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고승과 산방덕이 관가에 가는 일로 옥신각신 하는 사이 며칠이 지나갔다.

사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여 고승을 즉각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는 강제로 산방덕을 끌고 오라고 분부를 하였다. 그러나 아전들이 고승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산방덕은 자취조차 없었다. 물론 마당 가득했던 약초들도 온 데 간 데가 없었다. 아전들은 분명히 근방의 숲 속에 있을 것이라 여겨 샅샅이 뒤졌으나, 산방덕의 모습은 끝내 찾을 길이 없었다.

감옥에 갇힌 고승은 그제야 지난 일을 후회하였다. 산방덕이 자기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린 일, 매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일, 자기가 한 잘못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고승은 눈물을 흘리며 산방덕을 불렀다.

바로 그 날 밤, 고승과 사또의 꿈에 산방덕이 나타났다.

“나는 저 산방산의 여신, 산방덕이오. 여기서 내려다 본 인간세계가 하도 곱고 아름다워 보이기에 굴속에서 나와 인간과 인연을 맺었더니, 인간세계는 너무도 추악하기에 그만 다시 굴속으로 들어왔소. 이제 다시는 나가지 않으리라. 앞으로 사또 그대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벌을 내릴 것이니 알아서 하라!”

산방덕은 그렇게 다짐하면서 고승을 향해 서럽게 울었다.

“서방님, 부디 평안히 사시옵소서. 처음 마음은 서방님이 이 세상 하직하는 날까지 함께 하기로 하였으나 이제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서방님을 탓할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비록 서방님과 함께 하지는 못하오나 저는 낮이나 밤이나 서방님을 생각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겠사옵니다. 부디 …….”

“여보, 내가 잘못했소! 여보, 산방덕!”

그러나 고승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산방덕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튿날 아침 사또는 크게 깨닫고 고승을 풀어주었다.

고승은 울면서 산방산으로 올라갔다. 산속으로는 길게 길이 뚫려 있었다. 산방덕을 처음 만난 그 동굴 쪽으로. 그 동굴에서는 산방덕의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굴속에서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고승은 동굴 앞에 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잘못했소. 내가 …….”

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고승은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래로 보이는 자신의 오두막을 쳐다보았다. 한 때 산방덕과 함께 다정하게 살던 집을 바라보자 더욱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고승은 입술을 깨물었다. 산방덕 없이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동굴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고승은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 들어가면 영영 나오지 못하는 그 동굴로 들어갔다.

그 후 아무도 고승이나 산방덕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이 굴을 산방덕이 살았던 굴이라하여 산방굴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지금도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은 산방산의 여신 산방덕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전해진다.

우봉규

작가.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됐다. 2001년과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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