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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반야용선을 탄 사람들
  •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장
  • 승인 2018.10.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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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 이끄는 반야용선에
망자뿐 아니라 생전예수재
동참재자도 타는 것 합당

경남의 어느 사찰에서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즐거워하는 신도들을 만났다. 생전예수재를 회향하면서, 수레를 개조해 만든 커다란 용선에 신도들을 태우고 앞뒤로 염불하는 스님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탑을 도는 의식이었다. 사찰에서는 이를 ‘용선작법’이라 불렀다. 큼지막한 용머리로 장식한 배의 앞쪽은 인로왕보살이 이끌고 뒤쪽은 지장보살이 따르며 네댓 명씩 용선을 타고 돌면, 나머지 신도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반야용선은 피안의 정토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망망대해에 비유하여 그곳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배를 상징화한 것이다. 그곳은 반야의 지혜에 의지해서 건널 수 있고,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가려면 불법의 수호자이자 물을 상징하는 용이 적합했던 셈이다.

따라서 불교건축에서 ‘법당은 곧 반야용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사바세계가 괴로움의 바다〔苦海〕라면, 법당은 중생을 태우고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법당 기둥에 서쪽을 향한 용머리를 조각하면 서방정토를 향해 고해의 사바세계를 힘껏 헤쳐 나가는 거대한 용선이 완성된다. 반야용선도가 법당의 외벽화로 즐겨 그려지는 것도 법당이 거대한 용선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특히 제천 신륵사 극락전 외벽화는 극적이고 역동적인 표현으로 눈길을 끈다. 용선은 밧줄로 작은 거룻배를 연결해 중생을 태우고 함께 파도를 헤쳐 나가는 장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인로왕보살과 관음보살ㆍ대세지보살이 장대로 열심히 노를 젓는 모습, 네 발을 드러내고 바닷길을 내달리는 용의 모습은 한 명의 중생도 놓치지 않고 신속히 인도하려는 중생구제의 모티브를 실감나게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사찰에서는 천도재를 지낼 때 크고 작은 조형물로 용선을 만들어두었다가 봉송 때 망자의 위패를 실어 나름으로써 극락왕생을 나타내기도 한다. 망자를 위한 천도재만이 아니라 사후를 준비하는 예수재에서도 반야용선이 조성되곤 하는데, 경남의 여러 사찰에서는 동참재자들이 실제 용선을 타고 경내를 도는 의식이 전승되고 있다. 망자를 위한 천도재에서 반야용선에 위패를 싣는다면, 산 자를 위한 예수재에서 동참재자가 타는 것이 어찌 합당하지 않겠는가.

흥미로운 점은 위의 사찰에서 설판재자의 경우 부처님과 왕만 탈 수 있다는 일인용 가마 연(輦)을 타도록 했으나, 이들 또한 반야용선을 더 선호하여 모두 반야용선으로 통일했다고 한다. 한국불자들에게 반야용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실감나는 대목이다.

이런 모습은 경남지역에서 전승되는 산 오구굿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산 오구굿은 망자를 위한 오구굿을 살아있을 때 치르는 것으로, 예수재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굿을 할 때 종이로 만든 반야용선에 굿의 주인공인 기주(祈主)의 위패를 실어 길을 닦아준 다음, 기주를 가마에 태워 마당을 돌며 모든 이들이 함께 극락춤을 춘다. 이때의 가마 또한 반야용선을 상징, 극락왕생의 사후를 축복하는 환희로운 의식이다.

반야용선은 경전과 염불문의 텍스트에서 뛰어나와 사찰벽화의 독자적인 모티브로 그려지더니, 입체적 조형물로 조성되는가하면 마침내 직접 재자들을 태우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민간의 심성과 한국불교의 역동적 만남이 자연스레 이루어져왔으니, 이제 살아있을 때 미리 닦는 예수재의 참뜻으로 함께 나아갈 숙제만 남은 셈이다.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장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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