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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부처님과 로봇
  • 방귀희 〈E美지〉 발행인
  • 승인 2018.10.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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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머니즘 시대 대비
휴머니즘 견고히 구축해야
방안은 불교적 리뉴얼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과학을 발전시켰다. 과학은 상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꿈 같은 상상이 인간의 두뇌에 의해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면서 문득 문득 놀랄 때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1970년도 우리집 안방에 고이 모셔둔 TV를 켜려면 TV케이스 문을 열고, 전원을 켠 다음 채널을 돌려야 했다. 그러다 리모콘이 나와서 TV 앞으로 바싹 다가가지 않아도 쇼파에 앉아서 TV를 작동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말을 툭툭 던지기만 하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다.

세상이 너무 편해졌다.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아마도 집집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이 주인의 모든 명령을 척척 실행할 것 같다. 과학 선진국에서 휴머노이드형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앞으로의 사회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트랜스휴머니즘 사상가들은 인류가 더 확장된 능력을 갖춘 존재로 자신들을 변형시킬 것이라고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은 반면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이라고 논평하기도 하였다. 쉽게 말해 인간의 휴머니즘이 기계의 휴머니즘으로 바뀐다는 것인데 이 말은 앞으로 인간은 인간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재앙이다. 인간 스스로 만든 재난이니 인재(人災)이다. 새로운 유형의 인재를 예방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휴머니즘을 견고히 구축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휴머니즘은 불교로 리뉴얼해야 한다. 부처님은 중생 구제를 목적으로 대중 앞에 나선 것인데 중생구제가 바로 휴머니즘의 실천이다. 부처님은 중생을 가장 소중히 여기셨다. 중생 모두 부처라고 할 정도로 인간을 가치있는 존재로 보고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가르치셨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사회라는 공동체에는 지도층이 있는가 하면 소외계층이 있다. 사회에서 소외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들은 이런 저런 상처를 갖고 있는 약자이다. 우리 사회는 약자를 위해 다양한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 복지는 사회적 서비스로 재화를 지원해주는 것인데, 재화 못지 않게 필요한 지원은 휴먼서비스이다.

이 휴먼서비스는 사회적 일자리가 되기도 하여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하지만 휴먼서비스는 양질의 일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 더 문제는 휴먼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다는 것이다. 불교 관점에서 본다면 휴먼서비스야말로 최고의 보시이다.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것은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비심이 발로한다는 것은 인간을 가장 부처스럽게 만든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없어지는 우리 사회를 로봇의 서비스로 채우려하는 것은 사람을 더욱 외롭게 고립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사람을 돌보는 것은 사람이어야 한다. 10대 제자 가운데 앞을 볼 수 없는 아나율이 바느질을 할 때 실을 바늘귀에 끼워주던 부처님의 모습은 부처님이 중생을 사랑하는 방식을 잘 말해준다.

방귀희 〈E美지〉 발행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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