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일본 소도시 여행
〈마음을 두고 와도 괜찮아〉
배종훈/더블북/15,000원

〈이젠 흔들리지 않아〉, 〈유럽을 그리다〉, 〈행복한 명상 카툰〉의 저자 배종훈 씨가 일본 소도시 와카야마, 오카야마, 아키타를 다녀온 후 그 여정을 그리고 썼다. 책에는 설렘과 들뜸, 명랑함과 감탄 대신 차분한 어조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행자의 모습이 담겨있다.

저자는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온전히 자신을 위해 하루 24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직장과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실제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잠을 줄여가며 얻은 시간조차 부족해질 때면, 자유롭게 시간을 헤엄치기 위해 저자는 여행길에 오른다.

혼자 있는 시간을 ‘느긋한 외로움’으로 즐기는 순간순간은 글과 그림으로 옮겨진다. 와카야마 현의 구마노고도 순례길, 오카야마 현의 구라시키 미관지구, 아키타 현의 다자와 호수를 비롯한 일상의 소소한 사물들이 묵묵한 색감으로 페이지를 장식한다. 여행지마다 찍힌 스탬프도 현장감을 살리는 데 한몫한다.

“식당에 앉아 밥을 주문하고 주문한 식사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이미 식사 후에 할 일을 생각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바쁘고 성실하게 살지만 그것은 겨우 현재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사느라 그 삶의 의미와 가치, 꿈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찌 될지 모를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당장의 행복은 모르고 산다. 지난날 꿈꾸었던 미래의 행복한 날이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르는데, 아직은 아니라고 뒤로 미루며 살고 있다.
이젠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며 누릴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와카야마-구마노고도 (p.26)

제한된 일정 내에 되도록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여러 곳을 바쁘게 다니는 여행에 비해, 게으른 여행은 여러모로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역시 느긋한 여행자의 특권이라는 저자의 말에 ‘마음을 두고 와도 괜찮은 곳은 어디인가?’하고 생각해 본다. 

크고 화려한 도시,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어도 괜찮다. 투박한 나무 막대에 매달린 방 열쇠, 자판기에서 새롭게 발견한 젤리탄산 음료, 시장이 끝나는 길 위의 노란 간판 서점, 군밤을 싼 신문지에 그려진 물고기 그림이라도 좋다. 특별하지 않아도 자신에게만큼은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마법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순례하듯 여행하는 자에게 듣는 담담한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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