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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삼광사_'한글학교'생생한 포교현장(274호)
  • 글·사진 송욱희 기자
  • 승인 2018.09.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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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4일, 삼광사 주지 세운 스님과 함께 졸업식에서.

“늦게 배운 공부에 날새는 줄 몰라요!”
어르신 학생 초 · 중등교육기관

남들이 학교에 다닐 때 다니지 못했다는 건, 남들이 배울 때 배우지 못했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불편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글자를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남편 또는 아내에게, 자식이나 손주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다. 누군가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 손가락질 할까봐,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자신도 모르는 새 움츠러들고, 주눅 들고, 의기소침해진다. 이때 용기를 내어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한 분들, 바로 삼광사 한글학교 학생들이다.

26년 동안 3천명 입학, 2천명 졸업
가난으로 인한 문맹의 한 풀어 내

8월 22일 개학날, 받아쓰기 시험에 여념이 없는 한글학교 학생들.

광복과 한국전쟁을 전후한 세대 중에는 학교를 다니지 못해 글자를 모르는 문맹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가슴앓이를 당시 천태종 남대충 종정예하는 헤아리셨을까? 삼광사 한글학교는 1992년 4월 3일 2대 종정 남대충 대종사의 증명으로 개교했다. 첫 입학생은 290명에 달했는데, 으뜸반 · 보람반 · 슬기반 3개 반으로 나눠야 했다. 이중 1년 과정을 마친 사람은 230명이었다.

삼광사 한글학교는 개교 이후 학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이듬해 3월에는 ‘2년 과정’으로, 1994년 2월에는 다시 ‘3년 과정’으로 재편했다. 개교 이래 지금까지 입학한 인원은 모두 3,344명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빛나는 졸업장을 거머쥔 졸업생은 1,967명이다.

어르신 학생들의 호응과 달리 지역 관공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개교한지 20년이 됐을 무렵, 부산광역시 교육청과 부산진구청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4년 부산광역시 교육청 지정 ‘초등학력 인정 문자해득교육 운영기관’으로 선정돼, 초등학력인정 프로그램 1 · 2 · 3단계를 운영하고 있다. 초등 · 증등학력인정 프로그램을 수료하면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졸업과 동일한 자격이 인정된다.

삼광사 한글학교는 금년에 중등학력인정 프로그램 운영기관으로도 선정됐다. 이 과정이 신설된 데에는 현재 한글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삼광사 주지 세운 스님을 비롯한 9명 선생님의 노력이 컸다. 초등과정과 달리 중학과정을 운영하려면, 전 과목 교사들이 중등정교사자격증을 보유해, 전문교육기관으로서의 역량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국어공부 이외에도 수학 · 영어 · 한문 등에 교육시간을 배정하고, 목표의식을 갖고 학업에 임하도록 학예발표회 · 문화예술제 · 백일장 · 골든벨 대회 등 대외활동도 장려하고 있다. 또 사찰에서는 학생들이 봄 소풍 · 연등행렬 · 전시회 · 수련회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교외활동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뒤늦게 배우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학생들은 공부도, 숙제도 즐겁기만 하다.

결석한 학생 부고(訃告) 들으면
교실 전체가 큰 슬픔에 빠져

이미현 한글학교 국장은 교육 분야에 몸담은 지 27년째 되는 교육전문가다. 성인 문해교육에 뛰어든 지는 9년째다. 올해 삼광사 한글학교에 중학과정이 신설되면서 국어과목을 담당하게 됐다. 가르치는 일을 해온 경험을 살려 ‘인생이모작’으로 시작한 성인 문해교육은 이 국장에게 인생 2막을 활짝 열어줬다.

“뒤늦게 공부하게 된 사연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절에 간다.’고만 하고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배움의 기회를 놓친 분들이 공부하러 오려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서 공부해야 하죠. 끝끝내 졸업장을 받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교사들은 한글학교 학생들이 무척 진지하고 열정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연세 드신 어르신들을 상대로 가르치려다보니 처음엔 어색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르신들이야말로 배워가는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진정한 학생이었어요. 돌이켜보면 한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일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봉사하는 마음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한글학교 선생님들. ‘학생들 가르치는 보람’ 하나로 오늘도 교편을 잡는다.

그런데 간혹 예상하지 못한 일도 생긴다. 병원에 입원해 며칠을 결석한 학생의 부고 訃告를 들을 때다. 그럴 때면 교실 전체가 깊은 슬픔에 빠진다. 이런 분위기를 수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는 지식을 전달할 뿐인데, 어르신들은 지혜가 가득한 분들이라 오히려 제가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결같은 모습과 성실하게 숙제를 해오는 모습에 늘 감동하고 감사하지요. 학생들에게 더 큰 가르침을 받는 것 같아요.”

학생들을 성별로 보면 할머니 학생이 절대다수다. 당연히 교사들은 어머니뻘 학생들에게 항상 존칭과 높임말을 쓴다. 수업 내내 정중하고 부드러운 말씨와 따뜻한 미소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학생들을 존중 · 존경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사명감으로 무장한 선생님들과 훌륭한 학생이 있기에, 삼광사 한글학교가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터전이 되리라 확신하게 된다.

“아프다가도 학교 오면 안 아파”
“은행가서 돈 찾을 수 있어 좋아”

지난 8월 22일은 활기찬 개학날이었다. 첫 수업이 끝난 뒤 만난 어르신 학생들의 얘기다.

“여든 된 할매, 누가 그리 좋아하겠노? 그래도 학교에 오면 다들 반겨주지. 학교 오는 날에는 얼굴도 공들여 씻고, 좋은 옷 골라 입고 옵니다.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지만, 함께 공부하면 최고로(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즐겁습니다.”

“난 다른 거 없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면 ‘극락’이랑 ‘지옥’ 팻말이 붙어있을 거잖아. 팻말 글씨 잘보고, 극락으로 가서 이미 돌아가신 부모 · 가족 · 친구들 모두 만나고 싶어.”

“공부가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이제는 내 이름을 직접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혼자 은행가서 돈을 찾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한 글자 한 글자 배우는 재미에 옵니다. 지겨우면 못 와요. 공부가 너무 재미있고, 방학이 너무 지루했어요.”

“숙제를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몰라요. (옛날에는) 머스마들만 공부시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딸들은 줄줄이 공부를 못시켰죠.”

“경로당에서 어울려도 나만 글을 모르는 것 같고, 누가 알고 무시할까봐 겁이 났어요. 이제는 같이 노래 부를 때도 수월하지요. 숙제할 때 집에서도 며느리와 딸이 잘 가르쳐줘서 좋습니다.”

“몸이 아픈데, 신기하게 학교만 오면 안 아픕디다. 개학해서 다시 선생님, 친구들 다 만나니 좋고 반갑습니다.”

“멍하니 텔레비전 보고 수다를 떨었을 시간에, 이젠 집에 오면 상을 딱 펴놓고 숙제부터 하게 돼요.”

“절에는 오래 다녔는데 공부하는 곳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3년 전 친구 따라 입학해서 이제는 구구단도 배우고, 거꾸로도 외울 수 있어요. 그래도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남편도 공부하러 잘 다녀오라고 하고, 학교 간 사이에 집안일도 싹 해놓아요. 평생 처음으로 호강이라는 걸 해봅니다.”

부산진구가 매년 실시하는 골든벨 대회에 참여한 한글학교 학생들.

한글 배워 선생님에 감사편지 쓰고파
여름방학에 〈법화경〉 2번 사경하기도

개학한 게 좋은지, 공부하는 게 좋은지 다들 생기 있는 목소리로 한 마디씩 거든다. 비온 뒤 갠 하늘처럼 얼굴이 맑게 빛난다. 할머니 학생들은 한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면 무얼 가장 먼저 하고 싶을까?

제일 먼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주신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배우지 못해 맺힌 가슴 속 응어리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신 선생님께 편지를 써 드리고 싶단다.

말로는 차마 전할 수 없었던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모진 세월 거치며 서러운 일, 억울한 일, 속상한 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서 생긴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써 내려가고 싶다고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채는 손주에게 실감나는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 불심이 깊은 불자들은 불경을 줄줄 읽고, 사경 寫經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방학내내 〈묘법연화경〉을 두 번이나 사경하신 분도 계셨다. 바로 중학반에 다니는 강일선 불자다.

여름방학동안 〈묘법연화경〉 사경을 2번 성만한 강일선 불자.

“방학하자마자 하루 몇 시간씩 〈법화경〉 사경을 했어요. 사경을 하니 글씨도 좋아지고, 한글도 익히고, 부처님 말씀까지 새기게 돼 일거삼득이에요.”

강일선 씨는 한글학교에 입학한 일이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배우지 못한 나이든 벗들이 함께 모여 공부를 하는데, 다들 배움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요.

반 분위기는 화목하고, 정이 넘쳐요. 정말 잘 왔다고 생각해요. 이번 생에에 제일 잘한 선택이라고 자신합니다.”

배움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는 교실은 언제나 희망과 활기로 넘친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다들 부끄럽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수업에 집중하는 눈길과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씨에는 학생들의 열정과 인생이 녹아있다. 주름진 손끝으로 써내려간 한 문장, 한 문장은 세상 제일 가는 시인의 솜씨고, 여느 작가 못지않은 솜씨임에 틀림없다.

삼광사 한글학교는 2대 종정 남대충 대종사의 증명으로 1992년 4월 3일 개교했다. 사진은 1994년 2월 28일 제2회 졸업식 기념촬영.
한 학생이 시화전에 낼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 속에는 한글을 배우는 기쁨이 담겨 있다.
학생들은 부처님의 큰 은혜에 감사하며 수업 시작 전 삼귀의, 수업이 끝나면 사홍서원을 발원한다.
교과서 한권을 짝꿍과 함께 보며 공부하고 있다. 배움이 즐거운 이유에는 화목하고 정이 넘치는 교실 분위기도 한몫한다.

글·사진 송욱희 기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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