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단상(274호)

2000년 대 초. 서울에 있는 직장에 취직해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한 달 쯤 지났을까? 퇴근길에 전철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천천히 걷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100m 달리기 선수마냥 전력질주를 했다. 그 때 ‘대체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마음이 여유로워야할 퇴근 시간에 저렇게 뛸까? 곧 다음 전철이 올 텐데, 참 여유 없이 사는군.’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퇴근길.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나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뛰고 있었다. 그 날, 급한 일은 커녕 사소한 약속조차 없었는데도 말이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여유 없이 살아도 되는 건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취재 차 2박 3일 간 경북과 강원도 지역의 자작나무숲, 전나무숲, 금강소나무숲을 걸었다. 예쁘고 멋진 숲을 카메라에 담고자 숲의 내부를 꼼꼼히 살폈다. 눈은 바삐 움직였고, 발걸음은 최대한 천천히 옮겼다. 숲길을 거닐면서 ‘숲은 넉넉한 여유를 가졌다.’는 생각을 했다.

숲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린 나무가 어른 나무가 되고, 다시 씨앗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 씨앗은 다시 자라 나무가 되어 후손을 퍼뜨린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뭇 생명들이 몸을 기대어 사는 거대한 숲이 완성된다. 숲은 느리게 이뤄지지만, 그 생명력은 아주 길다. 숲처럼 우리도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 산다면, 작열하는 태양도, 거센 비바람도 보다 가뿐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는지.

인기를 끄는 ‘슬로푸드’, ‘슬로시티’, ‘슬로워크’도 궁극의 목적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 있다. 우리는 이미 바쁘게 산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고, 느리게 산다고 불행해지는 게 아님을 알고 있다. 어쩌면 ‘빠르게’만 외치다보면 삶은 짧아지고, ‘느리게(여유)’ 살다보면 삶은 길어질지 모른다.

느리게 산다는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 여유로운 삶이다. 내 마음이 여유로우면, 남을 살필 여유도 생긴다. ‘여유’는 관심과 배려로 이어져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는 ‘인생의 보물’이다. 마음 급한 당신도, 잃어버린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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