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만의 이달의 찬불가(274호)

‘관세음의 노래’는 법정 스님 작사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는 성철 스님 법어에
중앙대 박이제 교수가 곡 붙여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기상청의 온도계는 기록 갱신을 이어갔고, 낮밤을 가리지 않는 무더위는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다. 100여 년 만의 더위라 했던가? 모두들 사는 게 어렵고 팍팍하다는 요즘, 날씨마저 심술을 부렸으니, 지난 여름은 정말 ‘고약한 여름’이었음에 틀림없다. 고약한 여름은 날씨만 그런 게 아니었다. 불교계의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 소식들도 푹푹 찌는 무더위와 함께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으리라.

이럴 때 가장 그리운 것은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이요, 저마다의 큰스님이요, 올바른 불교수행에 관한 목마름과 간절함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수의 불자들은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을 떠올렸을 것이다. 특별히 두 스님을 언급한 이유는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어린이 · 청소년 포교와 대중 불교를 역설하신 것으로 필자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두 스님은 주옥과 같은 명법문을 남긴 분으로도 기억한다. 그 가르침은 찬불가로도 만날 수 있는데,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법정 스님은 찬불가를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바로 ‘관세음의 노래’이다. 이 곡의 탄생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훈훈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1970년대 스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시대정신과 젊은 불자들의 양성이 한국불교의 희망이요, 미래”라고 말씀하시며 찬불가를 통한 포교의 중요성에 큰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노랫말을 쓴 스님은 가곡의 대가 大家로 잘 알려진 김동진 선생님께 직접 부탁해 이 노래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불리고 있는 ‘관세음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명곡으로 남아 애창되고 있다.

성철 스님의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 역시 손꼽히는 명곡 중 하나이다. 한국불교사에 있어 성철 스님은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정도로 큰 어르신이다. 그 분의 가르침을 담은 찬불가란 점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곡이다. ‘관세음의 노래’와 달리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는 스님이 직접 작사를 한 게 아니라 스님의 법문을 가사로 인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 즈음해 화제가 됐던 ‘당신의 생일입니다’라는 곡도 1986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어를 연등축제의 노래로 만든 경우다. 이외에도 법문이나 서적을 통해 알려진 큰스님의 가르침을 가사로 찬불가를 작곡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찬불가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는 본의 아니게 성철 스님께서 작사가가 되셨고, 작곡은 박이제 선생이 했다. 늘 얘기하지만 찬불가 한 곡이 탄생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고가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작사와 작곡이다. 이후에는 편곡, 가창 노래, 연주 등의 분야에서 많은 분들이 협업을 거쳐 비로소 하나 찬불가가 완성된다.

음악은 다양한 장르가 있고 활동범위가 굉장히 넓다. 그중 불교음악을 하는 전업 작곡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어느 분야든 비슷한데,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인기가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수입이 신통치 않다. 특히 불교음악 전업 작가로 활동한다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굳이 여기에 그 어려움을 토로할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의 불교음악 작가들은 아름다운 인연과 굳건한 신심으로 작품활동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를 작곡한 박이제(1956~) 선생님은 현재 중앙대학교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남 의령출신으로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지인의 소개로 도선사합창단을 지도(1986~1987)하며 본격적으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음대생 중에 불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불교합창단 지도와 작곡활동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 5년 6개월의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선생은 기대만큼 쉽게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흔히 유학을 다녀오면 멋진 자리나 활동이 보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 무렵, 유학 전에 지도했던 도선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고, 칠보사와도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본인이 뜻했던 대학 강단이나 작곡활동 쪽으로는 풀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당시 박이제 선생의 눈길을 붙잡은 한 권의 책이 있었다. 그것은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었는데, 스님의 행적과 법문이 그의 가슴에 뜨겁게 다가왔다고 한다. 인연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나름 힘들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성철 스님의 법어 한 구절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노래는 우연히 합창단이 불렀는데, 불교 합창곡집에 수록되었고, 급기야 니르바나 오케스트라와 정행 스님이 함께 한 KBS홀 공연에서 불리며 만인의 노래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게 된 후에도 그는 다수의 찬불가를 작곡해 발표했다. ‘님이시여’, ‘석불의 빈손’, ‘관세음보살님’ 등은 전국 사찰에서 불자님들이 부르는 명곡이다.

박이제 선생은 불교와의 인연에 대해 “나는 음악으로 불교를 배웠고, 노래로 수행을 합니다.”라고 덤덤하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음악 외에는 잘 모른다면서 겸손해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음악”이라며 “작품을 구상하고, 노래를 만들고, 좋은 분들과 부처님노래를 신나게 부르는 날이 바로 ‘좋은 날’”이라고 말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좋은 날’의 참 의미를 생각해 본다. 청명한 가을날, 그리운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담은 찬불가를 듣는 바로 오늘이 좋은날이 아닐까?

 

이종만

싱어송 라이터로 노래와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1995년 찬불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좋은 벗 풍경소리’를 창단해 현재까지 찬불가 제작 및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불교음악인이다. 현재 좋은 벗 풍경소리 대표, 뉴트리팝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 지휘, 조계사 회화나무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대표곡 ‘음악이 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장돌뱅이’, ‘오늘은 좋은날’, ‘길 떠나자’, ‘좋은 인연’, ‘너와 나’를 비롯해 많은 곡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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