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성보문화재연구소〉

3,156점을 40권에 수록
19년 걸쳐 한국불화 집대성 〈한국의 불화〉

성보문화재연구원 刊

“나는 어릴 적부터 스승이신 일섭 日燮 불모 佛母의 맥을 이어 평생 불화에 전념해오면서, 고탱화를 보존하고 보수해야 한다는 절실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소중한 불화들이 기후와 환경을 이기지 못해 풍화되고, 재난이나 도난으로 사라져가는 걸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불화들을 영구히 보존할 방책을 생각하다가 전국에 있는 흩어져 불화를 한데 모아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원을 세웠습니다. 전집으로 만들어놓으면 유실을 예방하고, 유실된 뒤에라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7년 사단법인 성보문화재연구원에서 40권의 〈한국의 불화〉 완간을 기념하는 날, 숙원을 이룬 불모 석정 石鼎 스님이 남긴 인사말씀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불교미술사상 최대의 불사, 두 번 다시 하기 힘든 한국불화의 집대성’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20여 년에 걸쳐 전국의 500여 사찰과 박물관에 흩어져 있는 불화를 조사하여 책으로 펴낸 것은 그 자체로 빛나는 결실이었고, 정부나 종단의 지원 없이 민간연구원에서 19년에 걸쳐 해낸 일이기에 더 큰 갈채를 받았다.

각 사찰의 법당에 모셔놓은 불화를 조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불화는 대부분 불상 뒤에 후불탱화로 모셔져 있어 조사와 촬영을 하려면 벽에서 떼어내야 했는데, 신앙의 대상인 불화를 옮기는 일은 사찰의 전폭적인 신뢰와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는 불화를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조사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지만, 법당에 모셔진 우리나라 불화조사의 어려움은 학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대형 괘불 掛佛을 조사할 때는 사찰 마당에 펼쳐놓고 크레인 위에 올라가서 촬영을 하곤 하였다. 현장조사는 불교미술을 전공하는 서너 명의 연구원들이 맡았는데, 대부분 초기부터 완간까지 함께했기에 불화를 조사하는 일에서부터 책의 편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꾸준한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

이 불사는 1989년 불모 석정 스님의 발원으로 시작되었다. 방대한 사업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인적 · 물적 기반이 튼튼하게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선 첫걸음을 내딛는 데 의의를 두고 시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에 통도사성보박물관 관장 범하 梵河 스님을 중심으로 하여 장충식 교수 · 태허 스님(난곡사) · 동욱 스님(보덕사)과 연구조사원들로 구성된 ‘전국불화조사단’이 발족하기에 이른다. 석정 스님이 평생 그려 모아두었던 소품들로 전시회를 열어 기금을 마련하고, 본부를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둔 불화조사의 대불사가 시작된 것이다.

초기에는 불화조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스님들이 직접 조사단에 참여함으로써 사찰과 공감대를 넓혀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佛畵匠인 석정 스님과 통도사성보박물관장이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범하 스님의 의지를 읽은 사찰에서는 적극 협조하였고, 관리 및 도난을 염려하여 별도로 보관하던 주요 불화들의 조사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7~8년에 걸쳐 조사를 하는 가운데 체계적인 불화조사와 불화집 발간을 위해 1996년에 범하 스님을 원장으로 한 성보문화재연구원을 설립하고, 석정 스님과 황수영 · 한병삼 · 정영호 · 홍윤식 · 장충식 교수 등 원로학자들로 구성된 ‘한국의 불화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아울러 〈한국의 불화〉 간행불사에 동참할 모연회원을 모집하고, 한편으로는 연구원의 총재를 맡은 석정 스님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시 개인전을 열어 기금을 마련하였다. 이에 1996년 처음으로 통도사 편과 직지사 본말사 편의 네 권을 펴낸 뒤, 해마다 꾸준한 발간이 이어져 2000년까지 1차분 20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50%를 완성한 2000년은 최대 고비가 되는 해였다. 불화를 조사하고 책으로 집대성하는 일은 출범 당시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막대한 경비와 인력이 요구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민간의 한 연구단체에서 감히 이루어내기 어려운 일이었음을 절감했으나, 힘든 여건 속에서 수차례의 고비를 극복하며 불화조사를 시작한 지 19년 만에 마침내 40권의 완간을 이루게 되었다. 불화조사와 불화집 편찬에 든 비용은 50억 원에 달하여 처음부터 그 규모를 알았더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 입을 모았다. 원력과 사명감으로 하나의 목표를 위해 꾸준히 나아간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 셈이다.

불화조사를 위해 연구원들이 전국의 사찰을 누비는 가운데 아찔한 후일담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1996년 9월 불화조사팀이 강원도 지역 불화를 조사하고 있을 때 일어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다. 당시 군에서는 ‘진돗개1’을 발령하고 강원 전역에 통합방위태세를 선포하여 25명의 공비를 일망타진했으나, 군인과 민간인 등 아군의 피해도 18명이나 발생하였다. 공비들은 정선 · 평창 · 고성 일대의 칠성산 · 오대산 · 향로봉 등 산악지역을 누비고 다녔는데, 당시 불화조사팀은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이들이 다닌 산을 무방비상태로 헤매며 암자를 찾아다녔던 것이다. 조사를 마치고 마을에 내려와서야 며칠간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었음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부처님의 가호에 감사드렸다.

 

〈한국의 불화〉에는 전국 476개 사찰과 14개 박물관에 소장된 1910년 이전의 전통불화 3,156점이 수록되어 있다. 불화는 벽화 壁畵 · 탱화(幀畵 · 경화 經畵 · 變相圖와 단청 丹靑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 가운데 예배의 대상으로 모시기 위해 벽에 걸도록 만든 탱화가 한국불화의 주류를 이루어 일반적으로 불화라 하면 탱화를 뜻하며, 〈한국의 불화〉에 실린 작품도 모두 탱화이다. 특히 고려불화는 화려한 색채와 문양, 유려한 필선 등 아름답고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일부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외에 있어, 국내에는 주로 조선후기에 조성된 작품이 남아있다. 불화를 그리는 화승 畵僧을 불모라 하는데, 이들이 지역적 근거지를 가지고 화파를 형성하여 활동한 것은 조선후기 불화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책은 25개 교구 본말사별로 소장 불화의 수에 따라 1권~3권씩 펴내고 대학박물관 · 사립박물관 · 국공립박물관과 보유편을 합해 전체 4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화의 내용은 유형과 예경의식절차에 따라 후불탱 後佛幀 · 괘불 掛佛 · 보살탱 菩薩幀 · 신중탱 神衆幀 · 각부탱 各部幀 · 각단탱 各壇幀 · 진영 眞影 · 도량장엄 道場莊嚴 등으로 분류해 수록하였다. 중요한 불화의 경우 전도뿐만 아니라 부분도를 풍부하게 실어서 우리불화의 세부적인 아름다움을 조명하고, 불화를 조성하는 이들이 전통불화의 제작기법을 참조할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부처님의 상호는 물론 아름답고 섬세한 장엄과 문양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어, 보는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배대상으로 불단에 모셔지거나 비장되는 불화를 일반인이 접하기란 지극히 힘든 일이다. 법당의 불화는 대개 불상에 가려져 있어 한 폭의 불화를 온전히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화를 조성하고 연구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불화를 소장하고 감상할 수 있게 된 점은 불교문화와 신앙의 측면에서도 기록될 만한 업적이라 하겠다.

아울러 불화에는 하단에 붉은 칸을 마련하고 화기 畵記를 적어두는데, 풍화되어 알아보기 힘든 화기의 전문을 판독하여 함께 수록함으로써 학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화기에는 조성연대와 조성목적은 물론 불화를 조성하는 데 참여했던 스님들, 시주자 명단과 보시물목, 계 契와 관련된 내용 등이 담겨 있어 화원연구는 물론 당시의 신앙형태와 사원경제의 한 단면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불화연구가 도상과 화원을 중심으로 한 미술사적 접근이 주를 이루었다면, 도상 외의 기초자료가 담긴 화기를 모두 제공함으로써 불화연구의 폭과 깊이를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 사업을 계기로 정부에서 깊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성보문화재연구원에서는 ‘사찰벽화’와 ‘대형불화(괘불)’의 조사 및 보고서 발간으로 우리불화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조사가 이어지게 되었다.

세계미술사에 우뚝한 〈한국의 불화〉 집대성이라는 대장정을 이루어낸 두 기둥은 석정 스님과 범하 스님이다. 우리불화를 지키고 보존하겠다는 원력으로 추진해온 두 스님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분은 안타깝게 입적하셨지만 불화를 아끼고 성보를 수호하는 그 열정은 〈한국의 불화〉에 새겨져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장. 불교민속으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동방문화대학원대 연구교수, 중앙대 외래교수, 조계종 성보보존위원, 한국불교민속학회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존엄한 죽음의 문화사〉(모시는사람들, 2015), 〈한국불교의 일생의례〉(민족사, 2012),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민속원, 2009) 등이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