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74호)

마음 치유하는 녹색의 병원,
‘숲’에서 푸르게 힐링하세요!

자신의 그림자와 발자국이 싫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림자와 발자국을 떨쳐 버리려 마구 달렸다. 하지만 걸음을 빨리 할수록 발자국은 많아졌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떨어져나가지 않았다. 달리고 달리던 그 사람은 결국 기운이 빠져 죽고 말았다. 그는 그늘에 들어가면 그림자가 생기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장자> ‘잡편雜編’에 나오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일상은 녹록지 않은 무게를 가진 발자국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피곤의 그림자다. 발자국을 버릴 수 없고, 그림자를 뗄 수 없는 삶이라면 적절하게 쉬며 건강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웰빙의 시대를 넘어 힐링의 시대다. 피곤의 그림자를 버리기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바로 숲이다. 숲은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숲을 걸으며 남기는 발자국은 고단한 삶의 무게가 아닌, 새로운 용기가 된다. 지독했던 폭염도 물러가고 가을이다. 삶의 그림자와 발자국이 힘겨운 그대, 숲에서 싱싱한 에너지를 호흡해 보라.

햇살 부서지는 순백의
자작나무숲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초입. <사진=이강식 기자>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는 자작나무. 그 이유는 나무속에 기름기가 많기 때문이다. 양초가 없었던 옛날에는 자작나무[樺] 껍질로 불을 밝혔다. 이름하여 ‘화촉 樺燭’이다. 자작나무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으로도 사용될 만큼 재질이 단단하다.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1,000년이 넘은 천마도 바탕도 자작나무 껍질이다. 자작나무를 신성시하는 민족도 많고, 생명 · 축복 · 사랑의 표식으로도 쓰였다.

자작나무 최대군락지는 강원도 인제 원대리에 있다. 일명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안내소에서 자작나무숲까지는 1시간가량 걸리기 때문에 하절기(5월 3일~10월 31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동절기(12월 16일~2019년 3월 18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입산이 가능하다.

주차장 맞은편에 숲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안내소를 지나 왼쪽 길은 3코스, 오른쪽 길은 1코스다. 어느 길로 가도 1코스로 이어지는데, 임도林道 곳곳에 자작나무가 있고, 길도 평탄해 아이들과 가도 좋다. 걷다보면 전망대가 나온다. 삐죽 솟아 있는 모양새가 대숲과 비슷하다.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동해바다의 거센 파도를 닮았다.

양초가 없던 시절. 자작나무 껍질은 불을 밝히는데 쓰였다.

전망대를 지나 1코스로 접어들면 울창한 숲을 뚫고 내려온 햇살이 새하얀 자작나무의 줄기에 부딪혀 눈이 부실만큼 반짝거린다. 잘 조성된 숲길을 따라 한 걸음, 두 걸음 걷다보면 어느 새 숲을 한 바퀴 돌게 된다. 비교적 긴 코스임에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숲은 1코스(자작나무), 2코스(치유), 3코스(탐험), 4코스(위험), 5코스(힐링), 6코스(하드), 7코스(숏)로 구분하는데, 여건에 따라 둘러보면 된다.

양평 서후리숲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자작나무 숲이다. <사진=정현선 기자>

양평 서후리숲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자작나무숲이다. 30만 평의 사유림 중 10만 평에 조성했다. 산책코스는 A, B코스로 나눠져 있는데, 자작나무숲은 B코스에서 만날 수 있다. 입구에서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밖에 강원도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숲, 경북 청송 무포산 자작나무 명품 숲도 가을에 걷기 좋은 자작나무숲이다.

머리 맑게 해주는
전나무숲

광릉 국립수목원 전나무숲. 곧게 뻗은 자태 너머 가을하늘이 높푸르다. <사진=송욱희 기자>

진한 향기와 함께 다량의 음이온을 내뿜는 전나무는 소나무처럼 사철 푸르다. 식물학자 이창복 선생은 전나무에서 젖(우유)이 나온다고 해서 ‘젖나무’라고 불렀다. 금강소나무처럼 곧게 위로 뻗은 자태와 숲에 가득한 피톤치드는 혹서 酷暑를 견딘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이름난 전나무숲은 여러 곳 있는데, 강원도 평창 진부에 위치한 밀브릿지 전나무숲도 그 중 한 곳이다. 한국전쟁 직후까지만 해도 황폐했던 이곳을 울창한 숲으로 만든 이는 김익로 전前 대제학원 이사장이다. 그는 1957년부터 50년에 걸쳐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입구에 주차 후 매표를 한 뒤, 한걸음을 떼면 전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맑아진다. 진한 전나무향은 코와 입을 거쳐 폐까지 깨끗하게 해주는 기분이 든다. 흙길을 따라 낮은 오르막길을 걸으면 왼쪽에 빽빽한 전나무숲이 펼쳐진다.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와 전나무를 담고 있는 연못도 만날 수 있다.

밀브릿지 전나무숲에는 힐링 산책길도 조성돼 있다. 산책 후에는 조선 숙종 이후 명품 약수로 알려진 방아다리 약수를 마셔보길 권한다. 이곳 외에도 전북 부안 내소사 전나무숲, 경기도 포천 광릉 수목원 내 전나무숲과 파주 소령원 전나무숲이 잘 알려져 있다.

평창 밀브릿지 전나무숲. 줄기 중간에 잎이 돋았다. <사진=이강식 기자>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나무숲

편백나무가 인체에 유익하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이 나무는 일본이 원산지인데 우리나라에는 20세기 초부터 들어와 많은 군락지를 형성했다. 40미터까지 곧게 자라는 습성과 풍부한 피톤치드 성분이 ‘숲 치유’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내뿜는 항균성 물질로 심신 안정과 면역력 증가, 심폐기능 강화와 호흡계 질환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근래 숲 치유 열풍을 주도한 핵심 요소가 바로 이 피톤치드다.

장성 축령산 편백숲. <사진=임연태 편집주간>

장성군 북일면 축령산은 우리나라 편백나무숲 1번지다. 이 숲은 임종국(1915~1987) 선생이 1956년 벌거숭이산에 편백나무를 심으며 조성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90만 평에 이르는 산골짝과 능선에 수령 60년 안팎의 아름드리 편백나무 250만 그루가 빽빽한 숲을 이뤄, ‘1번지’다운 명성을 자랑한다.

축령산은 해발 622미터로 높은 편은 아니다. 능선과 계곡도 가파르지 않다. 그럼에도 계곡에는 물이 마르지 않아 숲길을 걸으면 물소리가 귀를 씻어준다. 축령산 편백나무숲을 걷는 코스는 중앙 임도 외에 6갈래로 명명되어 있다. 하늘숲길 · 건강숲길 · 산소숲길 · 숲내음숲길 · 물소리숲길 · 맨발숲길 등 이름만 들어도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시원해진다.

축령산 편백나무숲은 걷기 코스가 많은 만큼 들머리도 모암마을 · 문암마을 · 금곡마을 · 추암마을 · 대덕마을 등 다양하다. 어느 곳을 기점으로 잡던 편하게 오를 수 있다. 주차장 등 편의시설도 양호하다. 숲을 걸을 때는 천천히 걷길 권한다. 군데군데 놓인 평상에 앉거나 누워 쉬기도 하자. 족욕시설과 맨발코스 체험은 상쾌함을 더해준다.

통영 미륵산 미래사는 효봉 · 구산 스님이 머물던 사찰이다. 이곳에 아담한 편백나무숲이 있다. 장성 축령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사찰이라는 고즈넉한 공간에 속한 미래사 편백나무숲에는 260미터 거리의 숲길이 조성돼 있다. 주차장에서 절 반대 방향으로 난 숲길의 끝자락에선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에 모셔진 다소 투박한 미륵부처님은 우리의 시름 섞인 얘기를 모두 들어줄 것만 같다. 주차장에서 위쪽으로 난 편백나무 숲길을 30분쯤 오르면 미륵산 정상에 닿는다.

선비의 기개 보여주는
금강소나무숲

대관련 자연휴양림 금강소나무숲. 아름드리 소나무의 기상이 예사롭지 않다. <사진=이강식 기자>

옛 선비들은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서서 푸르름을 보여주는 소나무를 ‘절개’의 상징으로 여겼다.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등장할 만큼 한민족과 역사를 함께해온 ‘민족의 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나무 중에서도 금강소나무[金剛松]는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역에 분포돼 있는데, 줄기가 붉고 곧게 자란다. 일반 소나무보다 단단해 궁궐 · 사찰건축물의 부재로 많이 사용됐다. 목조 문화재 보수를 위해 특별히 육성 · 관리되는 귀한 소나무다. 일제강점기에는 목재용으로 대량 벌채됐는데, 당시 경북 봉화 춘양역에서 서울로 보냈다고 해서 ‘춘양목’으로도 불린다.

금강소나무 최대 군락지는 경북 울진이다. 이곳은 산림청이 국비로 조성한 1호 숲길. 일곱 코스

(1구간, 2구간, 3구간 3-1구간, 4구간, 5구간, 가족탐방로)가 일반에 공개돼 있다. 금강송관리사를 지나 숲길을 오르면 양쪽으로 금강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호젓하게 숲을 거닐다가 땀방울이 맺힐 때쯤 멈춰서면,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짙은 솔향과 함께 땀을 식혀준다. 곧게 뻗은 금강송 군락의 웅장한 자태와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한 첩의 보약이다. 1일 탐방 인원을 80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안내센터 또는 한국등산 · 트레킹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예약(무료)을 해야 한다.

이외에 대관령자연휴양림, 화진포 금강소나무숲에서도 진한 솔향을 맡을 수 있다. 대관령자연휴양림은 별도 예약 없이 숲길을 걸을 수 있다.

세상 시름 잊게 하는
대나무숲

담양 죽녹원의 대숲 사이로 하늘이 조그맣게 보인다. <사진=임연태 편집주간>

나무하면 떠오르는 피톤치드. 그럼 어떤 나무가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을까? 여름철을 기준으로 측백나무는 100g당 1.3㎖이다. 소나무 1.4, 삼나무 4.0, 구상나무 4.8, 편백나무 5.5 순이다. 그렇다면 대나무는 어떨까? 무려 편백나무의 두 배가 넘는다. 대나무는 다량의 음이온을 방출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산소를 발생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전남 담양 죽녹원은 대나무 숲길걷기의 명소다. 담양은 우리나라 대나무의 최대 산지다. 그 전통을 배경으로 2005년 개원한 죽녹원은 31만㎡에 △운수대통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철학자의 길 등 8개 대숲길 코스로 이루어졌다. 길은 완만하고, 대숲 그늘에 들어서면 어둑할 정도로 대나무의 키가 크다. 후문 쪽에는 담양 지역의 이름난 정자인 면앙정 · 식영정 · 송강정의 원형을 본떠 지어 놓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첫 코스가 운수대통길이다. 운수대통을 기원하며 20미터쯤 걸으면 대나무 숲길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봉황루에 오르면 담양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면 댓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죽녹원의 모든 길은 어디로 가든 다 이어져 미아가 될 일은 없다. 자유로이 걸으며 마음을 쉬고 더러 만나는 정자와 의자에서 몸을 쉬면 된다. 그야말로 죽장망혜竹杖芒鞋의 마음으로 유유자적하다보면 한결 가벼워진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정자와 가사문학의 고장 담양, 그 가운데 조선 전기의 학자 양산보 梁山甫(1503~1557)의 원림 소쇄원 瀟灑園(명승 제40호)도 대숲이 좋기로 유명하다. 양쪽으로 빼곡한 대숲 사이로 들어가면 한 폭의 그림 같은 소쇄원 풍경이 펼쳐진다. 광풍각에 앉아 대숲에서 들리는 댓바람 소리를 듣노라면 세상 모든 시름을 잊게 된다.

죽녹원을 거닐다 만나는 정자와 의자에서 잠시 몸을 쉬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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