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키즈 존’ 설치 앞서
일부 어른 무례와 몰지각
고칠 방안 모색해야

〈천수경〉은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지송하는 의례용 경이다. 초심자들 중에는 이 경을 그저 천수관음보살님에게 복을 비는 경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이 경에는 대승불교의 모든 요소가 다 담겨 있어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그 깊은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천수경〉에는 ‘사방찬(四方讚)’이라는 이름의 ‘결계’가 흥미로운데, 〈천수경〉의 핵심인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끝난 뒤 바로 이어지는 다음의 구절이다.

일쇄동방결도량 이쇄남방득청량 삼쇄서방구정토 사쇄북방영안강

쇄(灑)란 물을 뿌린다는 뜻이다. 사방에 물을 뿌리는 행위는 한국의 전통 불교의례에서 예사로 치렀던 결계의식이다. 물을 뿌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 모든 곳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번뇌의 불에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역시나 번뇌의 불에 타고 있다. 그래서 동서남북 사방에 물을 뿌려 불을 끄고 청량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지대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행위가 바로 결계(結界)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구역에 금을 긋는 일이다. 그곳이 대지의 특정한 곳이어도 좋고, 허공의 어느 지점이어도 좋다. 이렇게 물을 뿌리며 게송을 외우면 그 공간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된다. 덧없고 괴롭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더럽기까지 한 예토(穢土)가 버드나무 가지에 묻힌 물을 사방에 뿌리는 행위로써 정토(淨土)가 되는 것이다. 이 결계 안쪽의 청정한 지역은 불보살님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그 곳으로 삼보님과 하늘을 비롯한 신중님들 모두 오셔서 관세음보살님 기도를 한 이 중생을 보호해주시기를 간절히 비는 것이다.

수행자 역시 결계 안쪽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으려면 참회해야 한다. 〈천수경〉에서 사방찬과 도량찬을 끝낸 뒤 서둘러 자신이 지난 잘못을 참회하는 진언을 외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참회 속에는 청정한 경계 안에서 삼보천룡의 가피를 입고서 자신이 세상을 향해서 관세음보살님처럼 구원의 손길을 내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니 〈천수경〉의 결계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도피하려는 공간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나서려는 이가 힘(가피)을 얻기 위한 공간이다.

우리 사는 세속을 보자면 전혀 다른 차원의 결계가 눈에 많이 띈다. 특정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구역이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점이나 카페와 같은 곳에 영유아와 어린이 출입을 금한다는 ‘노 키즈 존(No Kids Zone)’도 그 하나의 예다. 업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가 아닌, 아이를 돌보고 챙겨야 하는 부모의 책임이 크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업주들이 오죽했으면 그런 조치까지 취했을까 싶다.

그런데 일부 무책임한 부모로 인해 모든 아이와 부모 앞에 금을 긋고 문을 닫아 걸어도 과연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확보한 호젓한 공간에서 어른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이는 어른을 방해하는 존재임을 공표하는 세속의 결계 앞에서 아이 없는 세상이 과연 살만한 곳일지 궁금해진다.

이 세상 모든 어른도 한때 다 아이였지 않았던가. 우리가 출입금지해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 일부 어른들의 무례와 몰지각이다. 그걸 고칠 수 있는 ‘존(zone)’을 거쳐서, 남녀노소 누구나 기분 좋게 드나들 수 있는 ‘보문(普門)’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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