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불평등 갈수록 심화
불교의 평등 사상으로
사회적 대안 제시해야

붓다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평등을 전제한다. 엄격한 신분 제도인 카스트를 바탕으로 종교적 의식을 중시한 브라만교에 맞서 붓다는 만민평등과 해탈을 강조했다. 누구나 진리를 깨달으면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이 불교의 고갱이다.

그런데 붓다의 가르침이 1700년 가까이 녹아든 사회에서 불평등 현상이 무장 깊어가고 있다. 그것도 신분제도가 사라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수저계급론’이란 말은 어느새 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사회 계급을 나누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가 사회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수저계급론에 기성세대 일각의 반응은 ‘자조적’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세칭 ‘일류 대학’에 들어갔거나,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고 가족까지 부양하며 성공한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꼭 본인이 아니어도 주변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을 많이 보았을 터다. 지금 감옥에 있는 전 대통령 MB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말끝마다 “나도 한때는”을 되뇌면서 ‘국민 성공시대’를 부르댔다. 그들에게 수저계급이나 ‘헬 조선’을 들먹이는 젊은이들의 언행은 한낱 ‘투정’에 지나지 않을 법하다.

하지만 객관적 조건이 과거와 사뭇 다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의 현실성이 사라졌다는 진단은 이미 넘쳐난다. 문제는 청년세대에 그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딛고 있는 발판도 시나브로 무너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관리·전문·기술직 등 핵심적 중산층이던 50대 남성 가운데 60대가 되어서도 자기 계층을 유지하는 비율은 26.8%에 그친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60대의 70.7%가 소득과 직업이 불안정한 계층으로 집계된 것은 은퇴했기에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40대 핵심적 중산층도 32.8%가 50대에 탈락하는 현상은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부모의 경제적 위기가 청년실업에 직면한 자녀 세대의 위기와 중첩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중산층의 이중 위기’로 볼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면 더는 계층 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0명 중 단 2명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들춰보아도 빈곤탈출 비율은 22.6%로 낮다. 이는 동일한 현상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결과로 한국 사회가 계급사회로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청년 세대의 어려움은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수저계급’이라 명토박고 있음에도 ‘계급’이란 말을 우스개로 넘기거나 개개인 탓으로 돌린다면, 나라의 내일을 책임질 세대의 좌절감은 자칫 분노로 표출될 수 있다.

나날이 또렷해가는 사회 불평등을 치유할 사상이 붓다의 가르침에 일관하고 있다는 깨우침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불교 인구가 크게 줄었다는 개탄이 나오고 있어 더 그렇다. 붓다의 가르침에 담긴 ‘만민평등 사상’을 ‘구두선’으로 여겨온 것은 아닌지 진솔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회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평등의 사상이 오롯이 담긴 불교가 사회적 대안을 벅벅이 제시해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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