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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불교의 추모문화 ‘백중’
  •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18.08.2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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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 천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 잡힐 때
새 신행문화 자리매김

백중은 조상을 위해 재를 올리거나 제사를 지내는 추모문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란분경〉에 의거 ‘우란분절’이라고 하거나 도교의 삼원사상에 의거 백중(百中)이라고도 하며, 갖가지 과일 등 백종(百種)을 차려놓고 재를 베푼다는 의미 등이 혼효되어 있다. 귀일(鬼日), 망혼일(亡魂日) 등도 백중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

귀신이라고 할 때의 귀(鬼)나, 망혼이라고 할 때의 혼(魂)은 백중의 의미와 불교의 역할을 알려준다. 귀와 혼은 신(神)과 영(靈)으로 승화되지 못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조상문화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프레타(preta)’가 되는데 후손이 조령제를 지내주면 ‘피트리(pitri)’가 되어 선조의 나라에 안착하지만 제사를 받지 못하면 아귀라고 하였다.

또 중국에서도 죽은 이를 귀라고 하며, 제사 지낼 후손이 없는 귀를 위해 나라에서 합동으로 수륙재를 지냈다. 유가에서도 죽은 조상이 대상(大祥, 두 해째 지내는 제사)을 지나면 조상신이 되어 제사를 받으며 후손을 보살핀다고 한다.

요즘은 날짜를 역산해 칠칠재로 백중천도재를 지낸다. 칠칠재의 원 개념은 새로 고인이 된 이[新故亡人]가 중음에 머무는 49일 동안 매일 경전을 염송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승가에 재를 올리고 불전에 공양하여, 신고망인이 업장을 소멸하고 좋은 곳에 날 수 있도록 공덕을 지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백중은 지옥에 빠진 이를 건져 올려[薦] 선처에 나도록[度] 청정한 승중에게 재를 올리는 것이다.

〈우란분경〉에 의하면 ‘안거와 자자를 마친 500인의 청정한 스님들에게 재를 올리라.’고 하였다. 오백승재 천승재 만승재 하는 반승의식이 다 여기에 의거한다.

신고망인을 위한 칠칠재 형식에 백중의 승재 형식이 혼합된 백중의 천도재가 근래에 들어와 새로운 신행문화로 뿌리내리고 있다. 다수 사찰에서는 삼칠일기도 형식으로 백중을 보내기도 한다. 근래의 백중기도에는 우란분재를, 신고망인의 중음기간 동안 경전 독송과 매칠일마다 재공(齋供)하는 칠칠재형식으로 봉행돼도 괜찮은가? 매년 혹은 한 해에 몇 차례 선망조상을 천도해야 하는가? 천도의 대상이 왜 매번 지옥에 가 있어야 하는가? 하는 등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질문의 핵심은 ‘천도’라고 할 수 있다.

조상님들이 알게 모르게 죄를 많이 지었다 하더라도 49재 등의 천도를 통해 극락에 갔는데, 백중 때 지옥에 가 있다고 한다면 천도 공덕이 없거나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불교는 영험 없는 종교가 되고 만다. 불자들은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지만.

결국 현재의 ‘천도’에 대한 이해나 설명 등은 적합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해서 ‘천도’에 대해 ‘지옥에 빠진 이들을 건져 올려 선처에 나게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천신(薦新)하고 선처로 건너가게(度彼岸)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사하고 추모하는 의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백중의 칠칠재천도재는 얼핏 보면 불교 윤회설과 상충돼 보이기도 하지만 전통의 효사상과 추모문화로 재해석해서 때마다 천도도량을 열고 재수를 올려 조상님께 공덕을 지어주는 추선공양과 윗대 조상과 부모님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또 본래 의미의 하나인 일하는 이들이 쉬는 날로 정착돼야 한다. 그럴 때 백중은 새로운 불교 신행문화로 자리매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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