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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하는 선교는 禍를 부른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단체에 납치된 개신교 신자 23명 가운데 배형규 목사가 살해됐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도 살해할 수 있다는 이같은 만행을 자행한 탈레반 무장단체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이에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개신교 신자들이 피랍된 사건은 우리에게 선교활동의 의미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그들이 왜 이런 위험한 길을 갔느냐는 것과 꼭 그렇게 했어야만 했는가 하는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탈레반 무장단체의 행위를 용납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납치된 신자들이 소속된 분당 샘물교회측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원하지 않는 봉사활동은 중단하겠다”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원하지 않는 일을 남의 나라에 가서 하게 된 그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고백을 한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아시다시피 회교권이다. 이슬람의 가르침과 1,400년에 이르는 이슬람 역사와 함께 종족 문화 풍속을 그들 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것이 때로는 근본주의에 충실해 세계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고, 과격하게 나가고 있다고 서방적 시각으로 비판하는 관점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신이 있고, 숭배하는 지도자가 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것을 강요한다면 충돌이 생길 것은 자명하다.

내가 믿는 것과 상반되기 때문에 선교의 대상이 되고, 그것이 제대로 안되면 악마의 주술에 빠졌다고 배척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 그것은 좋은 뜻으로 선교지만 나쁘게 보면 지배논리고 문화적 공격으로 볼 수도 있다.

개신교 신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봉사하러 간 그 뜻은 엄숙할 정도로 거룩하고 숭고하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봉사로 받아들이기보다 개종을 유도하는 선교활동으로 이해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해외 파송 선교사는 170여개국에 1만6,000여명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 규모라고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사랑과 배려와 봉사로써 선교활동을 벌이는 것을 누가 외면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무모한 양적 팽창주의, 정복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실효를 거두기어렵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개신교 신자들의 아프간 방문은 여러 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봉사의 차원이든 선교의 차원이든 받아들이는 아프간 주민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해답은 명료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종교가 옳다면 상대방의 종교도 인정해주는 인식이 깔려야 한다. 내 종교만이 옳고 당신의 종교는 악마의 주술에 갇혀있어 박멸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태도는 타종교와 문화를 배척, 이적시해 끝내는 저주스런 대립과 충돌로 가게 된다.

다른 종교인을 가르치고 구원해 주겠다는 자세야말로 얼마나 건방진 우월주의인가. 세계는 다양한 종족과 문화와 전통과 그에따른 각종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거기엔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나의 것만이 옳고 당신의 것은 악마라고 하는 정의야말로 싸우자고 하는 수작밖에 되지 않는다.

평화란 나를 겸허하게 내리고 너를 존중해주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상생과 평화와 겸손, 배려와 헌신의 정신은 인류의 보편적 진리에 충실히 복속하는 종교세계라고 보여진다. 너를 부정하지 않고 나를 낮추는 3배1보 정신, 그것은 상호 이해와 소통의 정신이다. 불교가 세상을 따뜻하게 다스리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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