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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불교와 함께 통일을 그리다특집(273호)

지금, 북한의 불교

개성 영통사는 고려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출가, 수행한 유서 깊은 도량이다. 고려 왕실의 원찰로, 대각국사비와 부도 등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으며, 대한불교천태종의 지원으로 2005년 복원됐다. 사진은 2007년 열린 복원 3주년 기념법회.

북한의 유일한 불교종단인 조선불교도연맹(약칭 조불련) 중앙위원회는 해방직후인 1945년 12월 26일 평양 용화사에서 창립했다. 조불련은 전통적인 계보를 잇는 불교종단이라기보다 당시 정치적인 상황 아래 북한식 사회주의체제 속에서 탄생한 종교단체라고 부르는 게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조불련은 출범초기부터 북한체제로부터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통제를 받았다. 또한 조불련을 포함한 북한의 모든 종교단체는 현재 종교정책을 총괄하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사업부’ 제6국의 지도와 관할을 받고 있다.

조불련은 한국전쟁 기간에 활동을 중단했다가 1955년 중앙위원회를 재정비한데 이어 각 시 · 도위원회를 조직화하였다. 그 후 북한당국 차원에서 사찰의 복구와 보수, 개건을 통해 현재는 71~74개 사찰이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다. 이와 달리 개신교는 봉수교회와 칠골(반석)교회 2곳, 가톨릭은 1988년 평양에 세워진 장충성당 1곳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묘향산 보현사 만세루, 황해도 정방산 성불사 등의 복구와 수리, 평양 광법사와 정릉사 등 사찰 개건이 이뤄졌고, 1989년부터는 불학원(佛學院)을 통한 승려교육 재개와 함께 기념법회 · 탑돌이 등 불교의식도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북한의 불교는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 조불련은 조선노동당의 사회단체로 분류돼 북한불교를 대표한다. 매년 당이 제시한 과업에 대한 총화(總和) · 사업대책 등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중앙조직으로 조불련 중앙위원회를 평양에 두고, 전국 8도에 각 위원회를 조직, 이를 통해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조불련은 매년 2~3회씩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있으며, 연맹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 등 정기적인 사업을 비롯해 국제사회와의 불교교류를 담당하고 있다. 연맹원으로는 조불련 소속의 승려 300여 명과 재가신도 1만 명이 등록돼 있다.

조불련 중앙위원회의 승려들은 정당 · 사회단체의 ‘행정관리일꾼’인 사무직으로 분류된다.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는 정무원(공무원)으로서 배급은 중앙당으로부터 공급받는다. 반면에 8도의 사찰에 근무하는 승려들의 경우에는 중앙위 소속 승려들과 다르게 노동자 · 농민 · 광부 · 영화배우 · 체육인 · 봉사원 등이 포함되는 노동직으로 분류된다. 외국인이 사찰을 방문할 때 사찰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안내봉사원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국민들은 모두가 조선노동당 당원이다. 즉 인민 전체가 사회주의 체제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북한의 스님과 신도들도 당원의 신분을 지니고 있다. 과거 소련이나 동독, 현재의 쿠바 국민도 모두 공산당원이다. 흔히 “북한 주민들은 공산당 당원인가?”라는 따위의 질문이나 궁금증은 한국전쟁의 트라우마(Trauma)적 잔상이며, 분단 반세기에 걸쳐 형성된 반공이데올로기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북한사찰 순례 가능해질까?

대한불교천태종은 2005년 복원 이후 매년 개성 영통사에서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다례재를 봉행해왔다. 하지만 2008년부터 근 10년 간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상호 교류는 사실상 단절됐다. 사진은 개성 영통사 전경.

북한에서는 아직 ‘종교가 미분화(未分化)’되어 있다. 전쟁과 분단을 거치며 북한식 사회주의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종교는 제외 또는 척결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북한의 헌법 제68조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종교가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 질서를 해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면서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반종교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사실상 사찰 순례나 참배를 할 수가 없다. 각기 소속된 기관과 단체, 기업소와 협동조합 등에서 집단적으로 시행하는 혁명전적지 참관이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해당지역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산에 오르고 절을 참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집단적이거나 정기적인 사찰 참배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관할지역 소학교 등 학생들의 소풍과 집단교육을 목적으로 ‘역사박물관’으로 명명된 지역의 사찰을 방문하는 경우는 예외이다. 평안북도 묘향산 보현사를 비롯해 구월산 월정사 · 정방산 성불사 · 용악산 법운암 · 칠보산 개심사 등이 그 대표적 장소다.

최근까지 북한에 살았던 사람들조차 거주하던 곳을 벗어난 지역의 사찰 등 종교시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무했다.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사찰은 가보지도 못했고, 이름을 들어본 적도 드물었다고 했다. 다만, 청소년기에 어떤 곳의 역사박물관을 한두 번 갔던 기억은 있지만 그곳 사찰이름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간혹 방송과 언론에서 회자되는 북한의 사찰과 불교소식은 거의 다 남한에 들어와서 듣거나 자료화된 내용을 학습한 경우였다.

1990년대 중반, 연이어 자연재해가 발생하면서 탈북자가 늘고, 장마당 등 사적 영역이 확대되면서 점(占)과 같은 무속적인 풍습이 늘어났을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의 사찰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아주 특별한 경우, 며칠씩 걸리더라도 주민들이 사는 지역을 벗어나서 종교적 경험을 하기도 한다. 또 매년 정초와 입시 또는 진급시기에는 지역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사찰에서 불공을 올리는 고전적인 신앙 활동까지 실행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어려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주민들의 생활 · 생존의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이탈하려는 의도적 변화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1989년 7월 평양에서 열린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일명 평양축전)을 계기로 불교 4대 명절과 기념법회가 당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해당사찰 인근 주민들이 대거 사찰법회에 참가하는 변화의 움직임도 포착된 바 있다.

해방이후 약 반세기동안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남북한 불교는 1991년 10월말 미국 LA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남북해외불교도 조국통일기원 남북합동법회’로 명명된 이날 법회를 계기로 남북 불교는 고립과 대립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 발전한다. 1995년 5월 중국 북경회담을 시작으로 1997년 4월에는 북경회담을 통해 ‘매년 부처님오신날 남북 공동발원문의 채택과 동시발표’ 등을 하기로 했다.

정부차원의 남북한 교류와 협력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3.1절 민족대회 ⇨ 6.15와 8.15 민족공동행사 ⇨ 10.3 개천절 공동행사라는 정례적인 교류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된다. 이 시기의 남북한 불교는 개성 영통사와 금강산 신계사를 공조사업을 통해 복원하면서 1990년대까지 뒤처져있던 남북교류분야에서 단숨에 맨 앞자리로 올라서며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2008년부터 10년간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대부분의 남북교류는 중단되었다. 이즈음 천태종과 조불련은 2015년 11월 3일을 기해 개성 영통사에서 합동법회를 개최하였으나 이후 상호교류는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남북한의 평화무드가 무르익어 만약 북한으로 삼사(三寺) 순례를 갈 수 있게 된다면 우선적으로 가능한 곳은 어디일까? 강원도 북부, 황해도, 평양 일원이 가능할 것이다. 동해안을 따라 신계사 · 석왕사 · 안변 보현사를 순례할 수 있고, 판문점을 지나 사리원 성불사 · 구월산 월정사 · 개성 안화사 코스도 무방하다. 천태종이 복원한 영통사를 중심으로 박연폭포를 거쳐 관음사와 안화사를 돌아보는 코스도 추천할만한 코스다. 묘향산 보현사, 내금강에 위치한 표훈사 등은 아무래도 당일 코스로는 무리가 있다. 서울에서 225km가 떨어진 평양은 정릉사 · 조불련청사 법당 · 광법사를 순례할 수 있다. 이때 모란봉에 오른다면 대동강 영명사의 지붕을 먼발치에서나마 구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적인 통일의 과정

금강산 4대 사찰로 꼽히는 신계사는 한국전쟁 때 폐하가 됐지만, 2007년 대한불교조계종의 지원 아래 남북 불자들이 힘을 모아 복원했다. 낙성 직후의 금강산 신계사 전경.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 26일 2차 정상회담으로 ‘실용주의’ 셔틀 회동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우선멈춤’ 상태에 있던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다시 눌렀다. 이 새로운 시작 직후인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는 세기의 담판 즉,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렸다. 이번 북미회담의 최대 관심사는 트럼프 미국행정부의 비핵화 원칙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를 의미하는 CVID였다.

한반도 평화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가운데 남북한 불교는 통일과 그 이후를 대비한 준비과정에서 각각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그 방안으로 남북불교의 교류와 협력에는 먼저 ‘아라트(ARAT)’적인 요소가 전제돼야 한다. 아라트적 요소를 갖추기 위해서는 통일을 가정해 남한 불교계와 불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그 해답을 통해 절차를 세워야 한다.

‘아라트(ARAT)’는 1991년 9월 17일 UN에 동시 가입한 북한(DPRK)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고(Acknowledgment), 한 국가사회의 변화를 인식하며(Recognition), 그간 다르게 형성되어온 사회문화 등에서의 다름을 인정하는(Admit to) 전통적 가치(Traditional value)를 공유할 때”를 말한다. 이는 북한과 그 주민들을 교류와 협력의 실질적인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종단과 불자들의 단계적 절차이다.

그 동안 우리 불교계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이유로 통일은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부정적 인식과 태도로 일관했다. 우리만의 색안경을 낀 채 북한을 바라보거나 이야기했다. 또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나 잠재적인 색깔론도 유독 불교계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남측과 즉흥적인 비교를 통해 북한불교를 관찰하려고 했다. 반세기가 넘은 세월로 인해 낯설어진 것을 다른 것으로 잘못 인식하면서 북한의 불교의식과 문화, 심지어 음식까지도 비판하는 자세를 취하고 말았다. 또한 10여 년간의 금강산 관광 등을 통해 은연중에 우위론을 내세우며 열등감을 부추겼다.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북측 주민들의 삶의 고충과 그들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무시한 채 화려한 옷 자랑, 돈 자랑만한 셈이다.

이와 같은, 지난 시기의 교류와 협력에서 나타난 북한불교에 대한 낯선 인식을 바꾸려는 의지와 교육을 통해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의례와 의식의 접점을 찾는 부분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과정에서 남북한 불교계의 구체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크게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간 남북불교는 개성 영통사와 금강산 신계사 복원, 기념일 합동법회 등을 통해 1단계를 넘어 2단계까지 발전했지만, 신 냉전시대의 도래로 말미암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 1단계는 ‘호감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낯선 손님과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촉시도와 만남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2단계는 애프터(After) 즉, 약속을 받는 과정이다. 친구와 같은 동질감을 갖기 위해서는 이름을 부르고 편지를 주고받는 등 상호간 소식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관건이다. 1, 2단계는 의지적 결합만으로도 이루어질 수가 있다. 마지막 3단계는 통일 이후에 필요한 단계로,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법률 · 제도적인 결합으로 이 단계에서는 서로 용해되는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 남북한 불교의 결합은 곧 통합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크고 작은 애경사(哀慶事)를 같이 고민하고 함께하는 소속감, 즉 정(情)을 나누게 된다. 또한 법률적 제도와 종교적 규범까지도 포괄하게 된다.

남북교류에 있어 심리적 측면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ARAT가 갖춰졌다면, 다음 단계에서는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어져야 한다. 과거와 같이 연고권 선점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사찰 건립이나 포교[宣敎]적인 목적을 둔 일방향 교류와 지원은 가급적 지양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사찰불사를 포함한 건축 등 하드웨어적 지원은 분명히 조불련에서 원하고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건물 내부인테리어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고 결여돼 안팎의 균형이 맞은 채 교류 · 협력이 지속된다면 향후 건물만이 덩그렇게 남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 경우 사찰순례 등 불교 특화사업도 가능해질 수 있으나 가장 명분 있는 사업은 인도적 지원사업이다. 특히 식량과 의료부문으로 기생충으로 인한 청소년기의 영양불균형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사찰림 조성과 방재사업이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숲이 거의 사라진 북한에서 사찰림은 산림자원의 보고이다. 국립수목원과 같은 육종시스템에서부터 연료용 땔감과 같은 수종에 이르기까지 산림녹화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이다. 조불련과의 직접교류는 초파일 연등과 불교용품의 제작과 유통분야이다. 또한 불학원과의 의식교류와 전승, 법회의 장엄을 남북불교도들이 함께 발전시켜나가는 과정도 절실하다. 서산대사의 말씀처럼 “우리의 발자취가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조계종 통일종책연구위원 역임.

글·이지범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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