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손끝에서 피어나는 마음(273호)

왕초보 딸아, 모든 길은 초행길이다.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길은 지금까지 네가 알고 있던 길이 아니다. 걸어서 걷던 길과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는 길은 전혀 다른 길이다. 걸어서 걷는 길은 한적한 오솔길이다. 운전해서 가는 길은 아프리카 밀림이다. 온갖 맹수가 득실거리는 밀림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저마다 사나운 맹수가 된다. 운전석에 앉으면 교양과 품위는 자동 삭제된다. 조심과 겸손으로 나아가면 위험하지 않지만 잠시라도 부주의와 오만이 끼어들면 사나운 맹수들의 공격을 받는다. 비굴할 정도로 조심해서 운전해라.

왕초보 딸아, 저 신호는 못 받는다. 다음 신호를 받아라. 도시의 길에는 붉은 눈, 푸른 눈을 부릅뜬 신호등이 우글거린다. 그것들은 사천왕상이다. 두려워하고 존중해라. 약간의 방심과 오기를 부리면 큰 일 난다. ‘저 신호는 받겠지.’라고 예단하지 마라. 신호등은 너 하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저 신호는 못 받는다. 다음 신호 받아야지.’라고 결심해라. 다음 신호는 꼭 온다.

왕초보 딸아, 꼼수와 술수에 귀 기울이지 마라. 주변에 잡상인 같은 훈수꾼들이 있을 것이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우기라고 하는 놈, 법규 위반 피하는 요령을 전수하는 놈, 못된 잔꾀를 훈장인양 자랑하는 놈 등등 있을 것이다. 우선은 존경스러울 것이다. 존경할 필요 없다. 그딴 건 배우지 마라. 언젠가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 자신이 판 구덩이에 자신이 빠진다.

왕초보 딸아, 차의 주인은 너다. 차가 주인이 아니다. 차는 물건이다. 너를 도와주는 물건이다. 차가 주인 되는 것을 경계해라. 왜곡된 집착으로 차의 노예가 되지 마라. 주객전도 되어 집착의 사슬에 목이 걸려 끌려 다니는 꼴을 더러 본다. 사람의 자리에 물건이, 동물이, 무형의 욕심이 떡하니 앉아있는 꼴을 많이 본다. 인간은 점점 소멸되고 얄궂은 집착이 창처럼 우뚝하다. 창은 남을 해코지 하는 무기다. 자신은 숨고 무기를 앞세운 집착들이 우글거린다.

왕초보 딸아, 안전하게 가는 것이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다. 빨리 뛰지 못하는 인간의 약점을 자동차는 너끈히 대신해준다. 그렇다 해서 보상심리에 날개를 달지 말아라. 빨리 가서 얻는 것이 별로 없다. 과속, 과식, 과욕의 결과는 참담하다. 21세기는 초과달성에 목을 매는 시대가 아니다. 안전하게, 여유롭게 주행하는 것이 최선이다. 부산에서 한양까지 걸어서 한 달 걸리던 옛날을 조롱하지 마라. 자동차로 5~6시간, 고속철로 3시간 걸리는 지금을 자랑하지 마라. 조상들은 한 달 동안 걸으면서 생각하고 사색했다. 자연 풍광과 지나는 마을의 풍습을 구경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토론했다. 때로는 위험을 만나 고생하고 극복하기도 했다. 속도와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왕초보 딸아, 초보, 초발심, 첫사랑은 동의어다. 두려움과 조심 가득한 지금의 심정이 최고의 실력이다. 처음 먹은 마음을 잃지 않아야한다. 평생 동안 수행하는 출가자도 초발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 마음을 잃지 않으면 성공한 수행이다.

첫사랑은 순수하다. 첫사랑은 아름답다. 시간은 모든 걸 녹슬게 하고 무디게 하고 타락하게 한다. 이제 막 자동차와 첫사랑에 빠진 왕초보 딸아, 지금 지닌 마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라. 운전의 왕도는 초보시절 습관을 초지일관 유지하는 것이다.

이우상

소설가. 1996년 ‘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상 수상. 1999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울음산〉 당선. 제7회 한국소설작가상(2017년), 제30회 동국문학상(2017년) 수상. 2012년 올해의 저술상 수상(숲과문화연구회). 소설〈비어 있는 날들의 행복〉 외 다수의 동화와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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